우리에게 ‘새로운 자명함’이란 무엇일까? news letter No.792 2023/8/22 최근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듬성듬성 공부하여 글을 써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분야의 전공자에게는 상식적인 것조차 나에겐 완전히 낯선 내용이 많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관련 연구서나 논문들을 계속 검색하고 구하여 쌓아놓고도 결국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는 못하는 미련함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그로부터의 구원은 항상 그렇듯이 제출 마감일로부터 왔는데, 그 억지스러운 구원 이후의 잔해물(?)을 정리하면서 들춰봤던 『근대일본의 대학과 종교』라는 책에 대한 생각을 ‘작정하고 두서없이’ 늘어놓으려 한다.1) 3인의 편자 중 대표인 에지마 나오토시(江島尙俊)의 서문을 읽고 흥미가 생겨서 찾아보니 그는 학부에서 기계항공..
믿음의 플라세보 효과 news letter No.791 2023/8/15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말 어느 겨울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방언’을 할 수 있었다. 이상한 말이었고 내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는 언어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따라 방언이 나름의 패턴을 보인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날의 기도는 나에게 찾아온 심한 감기몸살을 물리치기 위한 일종의 치병기도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약국에서 약을 사먹거나 병원에 갔을텐데, 그때가 마침 부흥회 기간이었는지, 이번 만큼은 왠지 기도로 병마를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찬바람이 들이치는 창문을 열어둔 것도 기왕 기도로 물리치는 마당에 ‘다 덤벼!’하는 심정이..
리(理): 인간과 자연의 접점 news letter No.790 2023/8/8 동아시아 성리학의 핵심 개념인 리(理)는 흔히 원리(principle)나 패턴(pattern)으로 번역된다. 그런데 이러한 이해에 대한 이의도 제기되고 있다. 1986년에 윌러드 피터슨은 성리학의 리를 ‘coherence’(어우러짐)로 번역할 것을 제안하였다. 이후에 브룩 지포린은 피터슨의 아이디어를 중국철학사 전체로 확장시켰다. 2012~2013년에 나온 Li(理) 연구서 2부작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시카고대학 신학대학원에서 행한 강연에서 주자학의 리 개념을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그 요지는 다음과 같다. 물었다: “마른 나무에도 리가 있습니까?” 답했다: “사물이 있으면 리가 있다. 하늘은 붓을 만들지 않았다. 사람이 토끼..
에드워드 호퍼의 빛의 시선이 머문 길 위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789 2023/8/1 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는 독일 철학이 실패했다고 하면서 그 비유로 당대의 독일 학계의 동료들이 쓴 글들이 그에게 부담스러울 정도의 묵직한 삶을 요구하기에 너무 익힌 채소 내지 고기와 같다고 보고 자신의 글과 인성이 그 맛이 풍성하면서도 가볍고 섬세한 만족감을 통해 정갈하게 기운을 북돋는 맛있는 리소토(risotto)와 같기를 바랐다고 한다. 한편 이처럼 니체에게 부담스러웠던 헤겔(George Wilhelm Friedrich Hegel)이나 칸트(Immanuel Kant)의 논리를 당대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lio Ficino)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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