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거룩한 상상’과 ‘상식’ 사이에서 news letter No.809 2023/12/19 종교, 빌런이 되다 벌써 2023년이 끝나가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이 올 한 해 역시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이 도처에서 많이 일어났던 것 같다. 올해 여름 미국에서 일어난 애틀랜타의 살인 사건도 그중의 하나이다. 이 글은 이 사건으로 인해 촉발된 단상이다. “종교는 왜 상식을 벗어나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허용(혹은 양산)하는가?”라는 의문이 그 핵심이다. 이창동 감독의 2007년도 개봉작 〈밀양〉은 여주인공 신애 역을 맡은 배우 전도연에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이창동 감독에게는 각본상을 안겨주었다. 영화에서는 신애가 아이의 유괴와 죽음이라는 비극 속에서도 종교에 귀의하며 꿋꿋하게 삶을 지탱한다. 그런 ..
조선통신사와 절벽 위의 관음당 news letter No.808 2023/12/12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의 『역사를 위한 변명』에는 다음과 같은 인상적인 구절이 있다. “좋은 역사가는 전설 속의 오우거를 닮았다. 인간의 살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라면 그는 자기 먹이가 거기에 있음을 알고 있다.” 인간을 잡아먹는 괴물인 오우거가 사람 냄새로 먹잇감을 찾듯이, 좋은 역사가는 산더미 같은 문헌 속에서도 인간의 역사를 서술하기 위한 자료를 찾아낸다는 것이다. 종교학자의 생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얼핏 보기에 종교와는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자료들 속에서도 종교사적 정보의 냄새를 맡고 군침을 흘리는 포식자들이다. 몇 가지 계기가 겹쳐서 지난 몇 달간 조선통신사 기록을 검토하게 되었다. 기대..
외부자의 시선으로 시작된 신화 연구, 그 이후 news letter No.807 2023/12/5 올해는 주목할 만한 종교학 서적이 잇따라 출판되는 반가운 일이 있었다. 지난 4월에는 유기쁨 선생님의 《애니미즘과 현대세계: 다시 상상하는 세계의 생명성》, 이어 7월에는 방원일 선생님의 《개신교 선교사와 한국종교의 만남》이 간행되었다. 이미 두 책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있었고, 여기서는 그러한 평가와는 별도로 개인 공부와 관련하여 신화 연구에 이 책들이 길라잡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피력하고 싶다. 《애니미즘과 현대세계》는 고전 종교학의 애니미즘에 대한 이해, 더 나아가 애니미즘 개념을 새롭게 사유하고 해석하여 저자는 인류가 직면한 생태적 위기에서 이 세계와 다시 연결되는 길을 모색하였다...
사랑이 이기지 못하는 것도 있을까: 영화 〈납치〉(2023)에 관하여 news letter No.806 2023/11/28 팬데믹 상황에서 영화제들이 대폭 축소되거나 온라인 위주로 진행되어 현장을 찾아갈 수 없었지만, 올해 들어 많은 영화제가 정상화되어 비로소 몇몇 영화제의 현장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깊은 인상을 받았던 영화 한 편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보았던 〈납치〉라는 영화다. (Rapito [Kidnapped]: 마르코 벨로키오 감독, 이탈리아 등 3개국, 2020년, 125분. 2023년 5월 칸영화제 공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초청. 2024년 국내 개봉 예정) 〈납치〉는 19세기 중반 이탈리아에서 있었던 ‘모르타라 사건’(Mortara Case)을 소재로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