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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 투어리즘에 대한 잔상
         : 순례지가 된 어느 영국 축구경기장


news letter No.781 2023/6/6





       ‘다크 투어리즘’(dark tourism)이란 일반적으로 죽음이나 고통과 연관된 장소를 찾는 의도된(deliberate) 행위를 말하며, 보다 구체적으로는 유명인의 갑작스러운 죽음, 대규모 참사/재해, 집단학살 등의 비극적 사건이 발생한 장소에서 ‘의미 있는’ 혹은 ‘특별한’ 경험을 하려는 행위나 관광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다크 투어리즘’은 해당 용어가 시사하듯 동시대의 관광산업이 하나의 틈새시장으로 주목하면서 상업적으로 개발/이용되는 경향이 강하나, 비극적 사건이나 참사의 희생자를 기리는 현상은 대부분 대중의 자발적인 행동으로부터 시작된다. 여기에는 리버풀 FC의 홈구장인 안필드(Anfield) 경기장으로의 ‘순례’도 포함된다.

 

 


       1989년 4월 15일, 잉글랜드 축구협회(FA)컵을 놓고 영국 프로축구팀 리버풀 FC와 노팅엄 포레스트 FC의 준결승 경기가 열린 셰필드의 힐즈버러(Hillsborough) 스타디움에서는 94명이 압사하고 700명 넘게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했으며, 사망자의 1/3은 스무 살 이하의 젊은이들이었다. 이 경기를 위해 당일 수천 명의 리버풀 팬들이 셰필드로 향하였고 이들이 도로정체로 연착하면서 경기 시작 전에 한꺼번에 경기장으로 몰린 게 시작이었다. 검표소에서 극심한 병목 현상이 벌어진 상황에서 경찰은 출구로 사용하던 일부 문을 개방하였고, 이로 인해 몰려드는 관중은 더는 통제되지 않았다. 경기장 양 측면에는 다소 여유 공간이 있었지만, 인파는 좁은 터널을 따라 이미 초만원이던 중앙구역으로 몰리면서, 결국 경기 시작 5분 만에 펜스가 무너지며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더 나아가 유족들과 리버풀 팬들에게 슬픔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경찰이 이 참사를 술 취한 리버풀 훌리건들이 경기장에 난입해 벌어진 우발적 사고로 발표하고, 황색언론(the Sun)은 이를 따라 기사를 작성하면서 여론을 호도한 것이었다. 그 결과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없이 1991년 법원은 힐스버러 참사를 단순한 사고로 규정지었다. 이에 유족들은 리버풀 팬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지원 단체를 꾸려 20년간 줄기차게 재조사를 요구했으며, 결국 2010년 출범한 ‘힐즈버러 독립조사위원회’는 2012년 395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내고 경찰 및 관련 기관의 대비 부족과 허술한 대응을 참사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러한 유족들의 끈질긴 문제 제기에 법원은 2년이 넘는 심리 끝에 2016년 힐즈버러 참사 책임이 경찰의 부족한 대처에 있다고 평결했다. 다시 말해, 영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사과함으로써 사건 발생 27년 만에 망자들의 명예가 회복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힐즈버러 참사 후에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대규모 행렬이 리버풀 FC의 홈구장 안필드로 이어졌고, 이후 이곳에는 희생자 96명의 이름과 나이가 각인되고 그 중앙에는 희생자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다는, ‘꺼지지 않는 불꽃(eternal flame)’이 있는 추모비가 세워졌다. 매년 4월 15일 안필드에서는 구단 차원에서 - 유족들의 결정으로 2020년 31회를 마지막으로 - 추모제가 열렸으며, 현재도 여전히 안필드는 리버풀 시민과 팬들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순례지로서 기능하고 있다. 영국 사회학자 데이비(Grace Davie)는 힐즈버러 비극에 대한 당시 수많은 개인의 자발적인 결정과 행위는 슬픔 속에서 본질적인 연대를 확인하는 것이었으며, 이는 말뿐이 아니라 행동으로 표현되는 독특한 종교성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이는 당시 여러 매체가 안필드를 - 리버풀 성공회 대성당과 리버풀 메트로폴리탄 대성당에 이어 - 제3의 리버풀 대성당으로 표현하였으며, 예를 들어 《리버풀 에코(Liverpool Echo)》 1991년 4월 28일 추모판에서 “세계에서 가장 큰 축구장이 힐스버러 사망자를 추모하기 위해 약 백만 명의 순례자들이 모이면서 세 번째 성당이 되었다.”라고 기술한 것에서도 확인된다. 무엇보다 데이비는 이와 같은 순례 현상에는 – 외부인은 공감하기 어려운 – 가족/연대 의식, 상호 지원, 함께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핵심적 요소이기에 리버풀이 아닌 다른 영국의 지역에서는 불가능했을 것이라 강조한다. 즉 리버풀은 영국에서도 종교인(기독교인)의 비율이 높을뿐더러 - 2001년 처음 실행된 종교에 관한 리버풀 인구조사에서 거의 80%가 기독교인이라고 응답 – 영국에 팽배한 소극적인 종교성과는 차별되는 매우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종교성을 보여주는데, 그 중심에는 젊은 남성 노동자 계급의 축구 동아리가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종교와 축구는 리버풀 시민을 강하게 결속시키는 역할을 하면서 종교와 축구는 서로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Believing without Belonging. A Liverpool Case Study,” Archives des sciences sociales des religions 81, 1993, p.80, pp.82f).

 

 



       그렇다고 이글의 목적이 다크 투어리즘 현상으로 힐즈버러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 현상을 분석하는 데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해당 현상을 조사하면서 우리의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 그리고 가깝게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이 서로 겹치면서 필자의 가슴이 무거웠기에 이에 대해 무언가 쓰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이 세 참사는 모두 희생자의 상당수가 젊은이 혹은 청소년이라는 공통점 외에도, 과연 현대사회가 급작스럽고 (필연적으로) 비극적인 대규모의 재난을 대처해나갈 능력이 있는가를 물어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사회구성원들의 트라우마 극복을 위해 공개적인 애도와 기억작업이 지니는 사회심리적 효과, 대규모 재난으로 훼손된 사회적 신뢰와 정의가 복구되는 과정의 중요성 등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비극적 사건에 대한 원인 해명에 대한 요구와 집단적 애도는 종종 주류세력에 대한 정치적 저항으로 받아들여져 이에 대하여 공권력의 통제와 억압이 가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맥락에서 아직도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위한 기억/추모 공간은 진도 팽목항과 목포 신항 사이에서 부유하고 있으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위한 추모의 발길은 어느새인가 갈 곳을 잃어버렸다. 여기서 우리가 리버풀의 한 축구장이 부러운 것은 시민들의 공개적인 애도 행위가 보여주는 단단한 연대의식에 대한 부러움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지지, 단결, 동지애의 메시지를 전하는 - 원래는 “Carousel(회전목마)”이라는 1945년도 뮤지컬에 나온 노래였던 - 리버풀 FC의 응원가이자 1989년 힐즈버러 참사 후 리버풀의 역사에 더욱 깊이 새겨졌고, 무엇보다 힐스버러 희생자를 상기시키는 “YOU’LL NEVER WALK ALONE”(당신은 결코 혼자 걸어가지 않을 것이다)의 전반부 가사를 소개하고자 한다.

 

 

       When you walk through a storm, Hold your head up high
       폭풍 속을 걸어갈 때는 고개를 들고 걸으세요.

       And don't be afraid of the dark
       그리고 어둠을 무서워하지 마세요.

       At the end of the storm is a golden sky
       폭풍이 끝난 뒤엔 황금빛 하늘이 있답니다.

       And the sweet silver song of a lark
       종달새의 아름다운 은빛 노래와 함께


       Walk on through the wind
       바람을 헤치고 걸어가세요.

       Walk on through the rain
       비를 헤치며 걸어가세요.

       Though your dreams be tossed and blown
       당신의 꿈들이 좌절되거나 무너지더라도

       Walk on, walk on
       걸어가세요, 계속해서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한국의 현 종교지원정책과 문화자본주의〉, 〈한국 불교계의 ‘마음치유’ 사업과 종교영역의 재편성〉, 〈한국 신종교의 조직구조〉, 〈현대사회 성물(聖物)의 유통방식에 대하여〉,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신자유주의 사회의 종교를 묻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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