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164호-현대에 신화는 죽었는가?(송현주)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1. 7. 8. 16:14

현대에 신화는 죽었는가?

2011.6.28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신화’만큼 상품성 있는 담론도 드물 것이다. 어느 시점부터 과거 의 ‘신화’를 담은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인문학 시장에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신화가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본질을 드러내는 중요한 속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되기도 하면서, 다양한 방면에서 신화를 문화상품화하려는 노력들이 기획되고 있다.

이런 신화 담론의 확장에는 물론 우리사회의 인문적 지식의 확대의 측면도 없지 않겠지만, 다른 한편으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와 ‘신화’의 연관의 측면은 없는 것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신화 담론과 상품이 단순히 과거의 신화적 지식에 대한 갈구만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는 ‘현대’라는 시간적 범위 안에 생성된 신화를 ‘현대’라는 맥락에서의 신화’, 즉 ‘현대 신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과연 ‘현대’와 ‘신화’가 공존할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물론 ‘신화’ 담론의 구조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전통적 의미의 신화 개념에 충실하게 따른다면 이런 회의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카렌 암스트롱은 《신화의 역사》에서 19세기와 20세기에 걸쳐 일어난 인류역사의 가장 큰 변화중 하나가 바로 ‘신화의 죽음’이었다고 강조한다. 현대 로고스 중심의 서구사회의 등장이 신화적 상상력의 종말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과거 우주와 밀접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인간이 이제는 우주 안의 고립된 작은 존재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한다. 신화를 상실한 오늘날 현대인은 신성에 대한 감각이 사라졌으며,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직시할 수 있는 능력도 잃었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신화’의 상실로 나타난 20세기는 일종의 ‘집단자살’ 현상을 낳았다. 1차 세계대전과 아우슈비츠의 대량살육은 신화의 종말, 다시 말하면 ‘실패한 신화’인 셈이다. 이들 현대의 실패한 신화에는 고전적 신화에 있던 연민의 정신이나 모든 생명의 신성함에 대한 경외, 중용정신 등이 들어있지 않았다. 파괴적인 인종차별과 민족주의, 파벌주의, 이기주의를 조장하는 편협한 신화일 뿐이었다.

신화와 현대 문화 현상을 결합시킨 롤랑 바르트 역시 ‘현대’에서 전통적 의미의 ‘신화’의 종말을 이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신화학(Mythologies)》(1957년)에서 롤랑 바르트는 대중문화 속에 숨겨진 지배계급의 가치와 이익을 유지하고 증진시키는데 기여하는 사고와 실천의 세계를 ‘신화’라고 불렀다. 신화는 ‘역사적인 것을 마치 자연적인 것처럼 바꾸어놓는 것’이다. 프랑스국기에 경례하는 한 흑인병사의 사진은 단순히 프랑스의 위대함을 선전하고 애국심을 고취하는 것 이상으로 정치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식민지 출신도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을 ‘사실화’하여 현실에 만연한 차별을 은폐하는 신화를 그려내고 있다는 것이다.

신화는 이처럼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조작과정에 힘입어 효력을 발휘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의미가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믿음이나 가치’가 되며, 이렇게 통용되는 속설이 바로 신화라고 한다.

‘현대신화=이데올로기’라고 본 바르트 역시 ‘현대’를 고대의 신성하고 자연스런 신화의 상실의 시대로 표현한 암스트롱과 그 생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현대는 신성에 대한 경험, 자연에 대한 존엄과 경외심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신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특히 오늘날 대중문화(비록 이데올로기라 할지라도)는 신화의 생산, 유통, 소비의 주요한 공간으로 제공되고 있고, 우리의 삶은 그 공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피시위크에 의하면 대중문화는 대중의 ‘신’과 ‘이야기’를 영웅과 아이콘을 통해 그려내는 신화적 구조를 갖고 있다. 보드리야르는 ‘현대 사회의 풍요로움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광고가 진위(眞僞)를 초월한 신화’라고 규정한다. 존재의 근원과 운명 등과 같은 인간의 공통 관심사를 드러내고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신화의 기능이라 한다면 오늘날 대중문화가 바로 그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대중문화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의 꿈을 담은 이야기’라는 점에서 대중문화를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신화’라 할 수 있다.

‘현대’와 ‘신화’의 부정합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신화를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공동체적 이상향이 있는 한, 인간이 궁극적으로 귀환하려는 자연과 신성함이 존재하는 한 ‘신화’의 부정은 인간 그 자체의 부정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현대의 신화’라는 말을 유명하게 만든 칼 융이 1958년 출판한 《현대의 신화-하늘에서 보이는 것들에 관하여》에서 쓴 것처럼, 신화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의식너머의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접근해오는 자기 원형의 모습과 소리’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songcloud@naver.com


주요 논문으로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현대 한국불교에불의 성격에 관한 연구>등이 있고,저서로《봉암

사결사와 현대 한국불교》,《근대 한국 종교문화의 재구성》(공저)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