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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283호-종교학과 신(神)(윤용복)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3. 11. 18. 18:02

 

 

                                   종교학과 신(神)




2013.10.8

 

 

종교를 이해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그 종교의 신앙대상을 살펴보는 것이다. 대부분 종교에서 신(神)이란 존재는 신앙의 대상이며, 신도들은 그 신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신에 대한 믿음을 지닌 종교에서 신이란 그 종교의 핵심적 현상의 하나이며, 각 종교 신도들이 보여주는 신앙의 모습은 자신들이 믿는 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에 따라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은 어떤 존재들일까? 다시 말한다면 사람들이 신이라고 부르며 믿고 있는 존재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인식되고 있을까? 궁극적 실재를 신이라고 부르는가, 아니면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존재, 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는가? 사실 이러한 기준들은 모호하다. 종교에 따라 이들 모두가 신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예로 든다면 궁극적 실재가 바로 하느님을 뜻하므로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힌두교의 궁극적 실재인 브라흐만이나 노장의 도(道)는 신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물론 궁극적 실재를 신으로 분류한 경우도 없지 않다). 인간의 능력을 초월한, 예를 들어 영원히 죽지 않는 존재를 신이라고 부를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에서 사후에 영생을 얻은 사람은 앞으로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그들은 신이 아니다. 살아있는 인간을 신으로 믿는 사례들도 있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신에 대한 관념은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 살펴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한편 종교를 믿는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사람들은 어떤 존재를 상정해서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 마치 모두가 신이 어떤 존재인지 합의된 것처럼 여기고 있다. 그것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교이거나,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종교이거나 간에 모두 마찬가지인 듯하다. 그러나 앞에서도 알 수 있듯이 사실상 모두가 인정하는 공통된 신에 대한 개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각 종교에서 신이라고 부르는 존재들의 모습은 다양하며, 또한 신들에 대한 호칭도 서로 다르다. 흔히 종교정의의 어려움은 종교가 다양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종교가 다양하다는 것은 이렇듯 신에 대한 다양한 관점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다양한 종교현상들이란 사람들이 신을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따라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을 인식할까? 신을 인식하는 과정은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종교에서 신을 이해하는 출발점은 신에 대한 경험으로부터 비롯된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 신도들이 인식하는 알라에 대한 관점은 무함마드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그들은 무함마드의 경험을 전해 듣고 그의 가르침에 따른 종교행위를 하며, 그것에서 벗어나는 행위는 바른 종교행위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무함마드의 경험이란 유대기독교적 세계관과 아랍인들의 사유의 맥락, 즉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 있었던 문화와 세계관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것은 다른 종교들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사회에서 신이라고 부를 경우에는 한국의 문화적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 일반적이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 우리는 god의 번역어로서의 신에 대해 더 익숙해져 있다. 물론 그런 것은 신이라는 용어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종교연구에서는 그런 용어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신이라는 하나의 개념만 언급했을 따름이다.

 

많은 서구 학자들이 종교마다의 공통점을 찾기 위해 궁극적 실재니, 성스런 힘이니 하고 부르지만 실상 그런 것이 얼마나 각 종교의 공통점을 알려줄 수 있을까? 종교마다 초월적 존재, 또는 성스런 힘에 대해 부르는 명칭은 지극히 다양하다는 것을 보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종교학의 가장 기본적 입장은 믿는 자의 관점에서 그들의 신앙을 조망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가령 불교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관점에서 존중해줘야 할 것이다. 비록 필자도 보살이나 행동하는 붇다는 신적 존재라고 부르고 싶지만 그것은 내 주장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것일 뿐이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우주적 규범은 신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만 그 규범에 순응하려 할 뿐 우주적 규범에 대해서는 어떠한 종교적 의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격적 신의 존재를 믿는 종교에서는 그 신들에 대한 의례를 행하고 있을 뿐이다. 이 같이 우주적 규범을 따르는 종교와 신의 존재를 믿는 종교 간에는 건널 수 없는 문화적 간격이 존재한다. 따라서 인간의 종교적 삶이나 경험을 전제하지 않는 한 각 종교의 공통점을 찾기란 정말 힘든 일이다.


 

 

윤용복_
한국학중앙연구원
yoonyongb@hanmail.net
논문으로 <대한성공회의 종교교육>, <중국 흑룡강성의 한국종교>, <근대 가톨릭에서의 종교 담론 : <가톨릭 청년>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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