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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446호-이세신궁과 한국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6. 11. 30. 16:51

 

이세신궁과 한국

 



 

 

 

 

 

 news letter No.446 2016/11/29

 

 

 

미에(三重)현의 조그만 시골 해안가 마을인 이세 소재 이세신궁(伊勢神宮)은 명실상부 일본 신도(神道)의 지성소이자 황실의 수호신전으로 기능해왔다. 이는 그곳에 천황가의 조상신이라고 말해지는 태양의 여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일본에는 약 12만개소의 신사가 산재해 있는데, 이세신궁은 고래로 이 모든 신사를 대표하는 센터로서 종교적, 정치적, 문화적인 제측면에 걸쳐 일본사를 관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한마디로 이세신궁은 일본의 주요한 역사적 흐름이 집약된 종교=정치복합체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이세신궁을 대여섯 차례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그곳에서 물씬 풍겨 나오는 일본적인, 너무나 일본적인 내음을 깊이 느끼곤 했다. 일본 신사를 돌아다닌 것도 벌써 15,6년이 훌쩍 넘고 있다. 많은 일본 학자들은 신사와 신도야말로 가장 일본적인 전통문화라고 말한다. 때문에 신사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거기서 나는 한국을 만나게 되었는데, 아직 이세신궁만은 순수하게 일본적인 장소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근래 나는 이세신궁까지도 과거 한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근거로 다음 몇 가지를 들 수 있겠다:


① 『삼국사기』에 ‘신궁’이라는 호칭 및 미혼 왕녀가 아마테라스를 제사지내는 재궁(齋宮)제도의 원형이라 할 만한 제사제도가 등장한다. ② 재궁제도가 확립된 것은 덴무(天武)천황조부터인데, 덴무천황은 그 출신이 신라 왕족이라는 설이 있을 만큼 신라와 가까운 천황이었다. ③ 20년에 한 번씩 본전 등을 허물고 새로 짓는 신궁식년천궁 때 한국계 자(尺)를 사용한다. ④ 아마테라스를 모신 이세신궁 내궁의 별궁인 쓰키요미노미야(月読宮)는 교토 마쓰노오(松尾)대사 근방의 쓰키요미(月読)신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건너온 도래신을 모신 신사일 가능성이 크다. ⑤ 내궁 뒤쪽의 이스즈강 상류에 있는 광대한 원생림은 예로부터 고라이비로(高麗広)라 불리고 있는데, 그곳은 이세신궁 관계자들과 한국계 도래인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⑥ 이세신궁의 신전(神田) 옆에는 내궁 섭사 오쓰치미오야(大土御祖)신사와 구니쓰미오야(國津御祖)신사가 나란히 서있다. 조상신을 모시는 이 신사들은 원래의 이세신궁 본사 즉 원궁(元宮)일 가능성이 크다. 이곳에는 신궁 역대 니의(禰宜) 신직들의 묘지가 있는 산이 있는데, 그 산은 가라가미산(韓神山)이라 불린다. 그 산 위에는 지금도 작은 원분 위에 가라가미사(韓神社)라는 소사가 있다. 원궁이 있는 곳에 가라가미산 및 가라가미사라는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은 이세지역이 원래 한국계 도래인들이 모여살던 곳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다. ⑦ 『속일본기』기사에 의하면 791년 이세국 등의 백성들이 소를 죽여 가라가미(漢神)에게 제사지내는 것을 금했다고 나온다. 이는 8세기말에 한반도에서 유래한 가라가미신앙이 이세지역에 널리 분포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⑧ 이세신궁의 기원은 『일본서기』 스진(崇神)천황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10대 스진천황의 이름은 ‘미마키이리비코이니에’(御間城入彦五十瓊殖)로 가야(미마나)에서 도래한 왕족이라는 설이 있다. 이 스진천황과 아마테라스의 어령인 거울이 일심동체로서 궁전에 있었다고 「지유기대신궁의식장」(止由氣大神宮儀式帳)에 적혀 있다. 이로 보건대 이세신궁의 원형은 한반도에서 건너온 기마민족 왕조의 조상신을 모신 신사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세신궁의 기원이 한국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개연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오늘날 이세신궁이 보여주는 가장 일본적인 색채는 조금도 손상 받지 않는다. 언제부터인가 일본인들은 이세신궁을 비롯한 신사에다 그들만의 빛깔을 그려 넣고 가꾸어 왔다. 거기에는 일찍이 우리가 잃어버린 삼국시대 또는 그 이전 고대종교의 흔적들이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일본 신사에서 그 흔적들을 발굴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지워져버린 한국 고대종교사의 작은 조각이나마 되찾을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에게 큰 수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세신궁을 비롯한 많은 신사들이 한반도와 깊은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도 감추려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 결과 많은 세월에 걸쳐 한국의 흔적 지우기, 덧칠하기, 찢어내기, 뒤집기, 바꿔치기 등이 행해져 왔지만, 아무리해도 지워지지 않는 역사가 있게 마련이다. 이세신궁과 한국의 관계를 묻는다는 것은 그런 역사의 기억을 복원하는 일과 결코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 복원에 있어 덧칠을 벗겨내고 찢겨져나간 조각들을 주워 모으며 전도된 것들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은 비단 학문의 장뿐만 아니라 언제 어디서나 필연적으로 요청되는 작업이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도 그런 작업이 한창 진행 중에 있지 않은가.



박규태_
한양대학교 교수
논문으로 〈현대일본종교와‘마음’(心)의 문제-‘고코로나오시’와 심리통어기법에서 마인드컨트롤까지-〉,〈고대 오사카의 백제계 신사와 사원연구〉등이 있고, 저역서로 《일본문화사》,《신도,일본 태생의 종교시스템》,《일본정신의 풍경》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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