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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05호-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관한 스케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12. 18. 11:53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관한 스케치


 news  letter No.605 2019/12/17   

 

 

 


11월 어느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앞에서 택시를 타고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을 가자고 했다. 택시 기사님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처음 들어본다고 했다. 서소문공원이라고 하자 그제서야 서소문 천주교 성지를 말하는 거냐고 다시 물었다. 서울의 천주교 성지는 거의 다 안다고 한 기사님이었지만 서소문에 박물관이 생긴 건 몰랐다고 했다. 어쩌다 보니 공원 건너편에 내리게 되어 서울 한복판에서 철도 건널목을 건너는 낯선 경험을 하고 공원을 찾아갔다. 방향과 길에 대한 감각이 무뎌서 누구나 쉽게 찾는 입구도 잘 못 찾는 편인데 서소문역사공원이라는 큰 글씨와 그보다 더 큰 13이라는 숫자가 바로 눈에 띄었다. 13이 무슨 숫자인가 하고 들여다보니, 서울천주교순례길코스 17개 중 13번째라는 뜻이었다. 안내판에는 명동대성당에서 시작해서 절두산 순교 성지에서 끝나는 총 17개의 서울천주교순례길 코스가 지도와 함께 표시되어 있었다. 조선 시대의 사형터 서소문 밖 네거리가 천주교 성지가 된 것은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19세기에 이곳에서 순교했기 때문이다, 이름이 밝혀진 순교자만 98명이며 그 중 이승훈 베드로와 정하상 바오로 등을 포함해서 44명은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등의 내용이 안내판에 같이 적혀있었다.

11월의 날씨치고 추운 편은 아니었지만 공원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공원 입구 근처에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은 언뜻 보기에는 그냥 높은 구조물 같았으나, 그 모양이 세 개의 목칼형틀을 형상화 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챈 후에는 기분이 묘해졌다. 공원 건너편에는 현향탑과 마주보고 브라운스톤 서울이라는 아파트 건물이 서 있었다. 과거의 사형터와 목칼형틀 모습의 구조물을 내려다보는 아파트에 살면 어떤 기분이 들까 잠시 생각했다. 공원을 계속 걸어가니 성당 제단 모양의 조형물과 벤치 위 노숙자 예수 조각상이 보였다. 2011년 천주교가 서소문공원 성지화 작업을 시작하기 전 1990년대 말부터 이곳은 한동안 수많은 노숙자들이 기거하던 곳이었다. 조각상의 작가는 노숙자가 예수인 것을 발견한 순간의 충격과 이로 인한 사색을 의도했다고 했다. 그런데 노숙자가 사라지고 깨끗이 정리된 공원에 놓인 노숙자 조각상은, 신은 사라지고(혹은 신을 죽이고) 잘 정돈된 신전 안에 놓인 신상 같은 느낌이었다.

천주교 성지 개발 사업으로 2019년 6월 개관한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입구는 공원에서 그리 쉽게 보이지 않았다. 박물관은 지상이 아닌 지하에 위치하며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 역시 가까이 가지 않는 한 쉽게 눈에 띄지 않기 때문이다. 지상을 공원 형태의 오픈 스페이스로 두고 지하에 박물관을 짓는 방식은 추모와 기억의 현재적 의미를 구현해내고자 했던 서구의 건축물에서 자주 사용되었던 방식이기도 하다.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지하 1층에서부터 지하 3층에 위치하며 그 중 지하 2층과 지하 3층에 전시장과 경당, 콘솔레이션 홀, 하늘광장 등 박물관의 메인공간이 있다. 평일 오후라 그런지 방문객은 그리 많지 않았고, 지하 2층 경당에서 미사가 있던 날이라 천주교 신자들이 좀 보이긴 했지만 모든 방문객들이 성지 순례의 느낌으로 이곳을 찾은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하 1층 입구의 <순교 십자가>, 벽면의 <순교자의 길> 등을 지나가면 이곳에서 어떤 전시가 이뤄져도 이 공간을 천주교의 성지와 분리시켜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기획 전시실과 경당이 있는 지하 2층을 지나 지하 3층으로 내려가면 한편은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으로 이어지며, 또다른 한편은 박물관 상설전시실로 이어진다. 정사각형 구조의 어두운 콘솔레이션 홀은 이름처럼 위안을 주는 공간을 표방한다. 음악을 들으며 벽면에 투사되는 이미지를 보며 어둠 속에 앉아 명상하거나 쉬게끔 의도된 이 공간은 언뜻 보기엔 박물관 한켠의 휴식 공간 같지만 그러나 사실상 이 박물관/성지의 가장 핵심 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어두운 공간, 천장 한 곳에 매달린 기둥같은 사각형의 지상 채광창으로부터 수직으로 빛이 내려오게끔 되어있고, 바로 그 빛이 비추는 바닥 밑에 다섯명의 성인의 유해가 묻혀있기 때문이다. 분명 어둠 속에서 한 곳에만 빛이 쏟아지는 구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직접 가까이 가서 그 빛이 비추는 바닥의 구조물이 유해함부조라는 것을 확인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이 공간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벽면에 투영된 이미지들을 보며 위안의 시간을 갖는 사람들 중 자신이 천주교의 성스러운 공간 메커니즘 중심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으리라 생각되었다. 언뜻 보기에 지하 3층의 이 콘솔레이션 홀과 그 옆으로 이어지는 하늘 광장은 미적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진 것처럼 보이며, 반대편의 역사 전시관은 각종 문서와 기록 등을 통해 종교적 의미를 담아 낸 공간으로 구성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실상 특정종교의 가장 큰 종교적 의미를 구현하는 공간은 이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 공원을 포함한- 이를 둘러싼 주변 구조물, 조형물이다. 이 곳이 마치 범종교적 혹은 탈종교적 미적 체험 공간처럼 구성되었다는 점에는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같은 날 서소문역사성지박물관에 가기 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박찬경 작가의 <모임Gathering>이라는 전시를 보았다. 박찬경 작가는 전시의 일부인 <작은 미술관>에서 미술관이라는 장소와 절, 산신각 등의 민간 신앙의 장소들을 나란히 놓았다. 전시 소개글에서 그는 한국에 미술관이 생기기 이전 사람들이 미술을 접하는 중요한 장소는 절이나 산신각과 같은 종교의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제 사람들은 역으로 미술관 안에서 종교와 의례 공간의 흔적을 본다. 병풍으로 둘러싸이고 비디오 작품과 다양한 설치물, 곳곳의 사찰에서 찍은 그림들이 걸려 있는 박찬경의 전시장은 마치 이질적인 존재들이 모여서 저마다의 무엇인가를 애도하고 기원하는 종교 의례의 장소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렇지만 전시의 마지막 공간에 설치된 <5 전시실> 의 국립현대미술관 건축모형과 원래 국군기무사였던 이 장소에 국립현대미술관이 세워지는 과정의 일부를 담은 비디오 작품은, 이 장소의 이질적인 역사적 층위, 다양한 힘들의 상충과 갈등을 다시금 자각하게끔 만든다.

현재의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박물관은 한 장소를 역사 유적지화하려는 서울시의 의도와 이 장소를 성지화하려는 특정 종교-천주교의 의도가 결합된 산물이다. 그 와중에 이 장소의 복합적인 역사적 의미를 상기시키며, 이곳을 천주교만의 성지로 만드는 것에 강하게 반발한 사람들의 항의와 투쟁도 있었다. 현재의 박물관 전시실에서는 이러한 점을 의식한 듯 천도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의 자료들도 전시해놓고 이곳이 천주교사 박물관이라기보다는 조선후기 역사 박물관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러나 여전히 이 공간을 지배하는 중점적인 기억은 천주교의 것이다. 한 종교의 성지가 한 도시의 역사 박물관이 되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특정 종교 경험을 넘어선 미적 체험의 공간으로 구성되는 과정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 부딪히고 있는 역사의 여러 층위와 힘들의 교차는 이 공간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하고 생각해봐야 할 것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말해준다.

 




최화선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 논문으로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기”: 점술의 사유와 이미지 사유>, <이미지와 응시:고대 그리스도교의 시각적 신심(visual piety)>,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 남장여자 수도자들과 젠더 지형>, <기억과 감각: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의 순례와 전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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