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드와 한국사회, 한국 개신교
news letter No.606 2019/12/24
I.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는 그랑플라스(Grand-Place)로 불리는 광장이 있다. 이름 그대로 큰 광장이다. 동서 110미터에 남북 70미터 크기로, 13세기에 대형시장이 생기면서 형성된 브뤼셀의 중심지다. 그랑플라스는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등재 이유 중 하나가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이다. 현재 남아 있는 석조건물과 광장은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400년을 거치면서 증축과 개축의 과정이 있었다. 그중 15세기에 세워진 시청사 건물을 빼고는, 상당수의 건물이 길드하우스(Guild House)였다.
이들 길드는 자신들의 길드하우스를 정교한 조각과 화려한 금장식으로 도배하면서 경제력을 과시했다. 자본의 힘을 드러내는 건물에서, 9번 푸주한 길드하우스에서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선언을 썼다. 길드가 사라진 현재, 이 건물들에는 식당과 은행, 호텔, 카페, 기념품과 초콜릿을 파는 가게가 들어서 있다.
길드는 중세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여러 도시에서 상공업자들이 결성한 직업별 조합이다. 원래의 설립 목적은 그리스도교의 우애 정신에 입각한 동업자간의 상부상조였다. 각 길드는 정관을 제정하고, 기본 규칙 준수를 의무화하면서, 구성원들을 관리하고 보호하고 도움을 주었다. 이들은 수호성인에게 제단을 바치거나 교구 교회 안에 소성당 건립을 후원하는 종교 활동을 하기도 했다. 즉 길드는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장인들이 집단의 이해관계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결집한 조합이었다.
상인 길드는 13세기에 들어서 봉건 영주의 권력을 어느 정도 견제할 수 있었으며, 도시의 경제 발전과 자치권 획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중에는 시참사회를 장악해 도시의 행정권을 장악하기도 했다. 이후 장인 길드를 결성한 수공업자들이 상인 길드와 경쟁하면서 도제제도를 만들었다. 길드는 자신들의 이익과 권리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교역과 생산을 독점했으며, 비조합원들에 대해 매우 배타적이고 폐쇄적이었다. 이들 길드는 산업혁명 전까지 유럽의 생산력을 추동했다.
르네상스와 종교개혁기를 거치면서 중세 길드의 영향력은 줄어들었다. 16세기의 중상주의 정책으로 새로운 시장이 확대되고 거대한 자본이 출현하면서 수공업 길드는 점차 약해졌다. 17세기에는 자본기업가의 등장으로 상인길드가 약화되고, 기술혁신에 따라 수공업기술의 지위가 흔들렸다. 길드 연맹체 가운데 하나였던 한자동맹이 이 시기에 와해되면서 길드는 역사의 무대에서 점차 사라졌다.
II. 서구 역사에서 길드의 흔적을 살피다가 오늘날 한국사회도 일종의 길드 사회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의료인, 법조인, 사업가, 학인, 정치인, 언론인, 농업인, 예술인, 체육인, 종교인 등의 직군이 일종의 유사 길드를 구성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40년간 한국사회가 산업화를 거치면서 확장될 때, 여러 분야에서 직업군에 따라 일종의 유사 길드를 확고히 형성한 것은 아닌가? 현재의 한국사회는 기득권을 지닌 유사 길드들의 합종연횡에 의해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중세의 길드는 구성원간의 과도한 경쟁을 규제하고 교역권을 독점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하고 유지하기 위해 도시 행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14세기 피렌체에는 21개의 길드가 있었는데, 돈과 권력은 7개의 대형 길드(법률가, 모직업자, 비단상인, 의류업자, 은행업자, 의사와 약재상, 가죽모피업자)에 집중되었다. 사실상 피렌체는 이들 대형 길드 구성원에 의해 움직였으며, 길드의 각종 혜택과 특권은 대물림되었다. 결혼과 같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해 경제적 정치적 특권을 독점적으로 지한 이들 길드는 일종의 ‘유사(quasi) 상속제도’였다.
길드를 효율적으로 유지하는 방식은 구성원의 자격 제한과 엄격한 통과의례였다. 오늘날의 유사 길드에서는 일반적으로 자격증이 구성원의 경계를 구분 짓지만, 자격증의 획득 과정에는 혈연과 지연, 학연 등 온갖 네트워크가 함께 작동한다. 물론 길드 구성원의 자격 기준은 길드에 따라 상대적으로 느슨하거나 엄격할 수는 있다.
또한 중세 길드가 그러했듯이, 오늘날 유사 길드도 동일한 자격증을 갖추고 동일한 직종에 종사한다고 해서 저절로 회원권을 얻는 것은 아니다. 중세 길드는 도제제도를 통해 장인 휘하에 직인과 도제를 두면서 구성원을 심사하고 제한하고 통제했다. 이와 비슷하게 한국의 유사 길드들도 기존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해 보다 엄격한 회원 관리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학문의 길에 들어선 학인이라고 저절로 학인 길드에 편입되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 학문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자격증을 지닌 학인일지라도, 핵심은 종신교수직의 유무다. 학위로 통칭되는 자격증의 여부와 관계없이 종신교수직의 획득 과정은 또 다른 엄격한 통과의례다. 종종 내부 구성원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그 통과의례를 제한하고 통과의례를 거치지 못한 동종 직인은 비구성원으로 간주되어 배제된다. 이처럼 동종 직인을 비구성원으로 간주하는 차별과 배제는 다른 유사 길드에서도 형식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여전히 존재한다.
III. 한국 개신교회도 이런 배제와 차별을 통한 유사 길드의 특권 지키기 경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40년 동안 한국 개신교회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위해 다양한 조직과 체제를 만들어 냈다. 그 조직과 체제에서 한국 개신교회는 때로는 느슨한 형태로 때로는 엄격한 형식으로 배제와 차별을 작동시킨다.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한다고 해서 개신교 목회자 길드에 저절로 편입되는 것은 아니다. 안수 받고 목회자가 되었다고 해서, 또는 안수 받지 않고 단독으로 목회를 한다고 해서, 목회자 길드의 구성원이 되고 특정 목회자 집단이 누리는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그런 특혜는 안수와 해외에서의 공부, 혈연 등의 특정 조건이 교차하는 대형교회 목회자 길드에만 해당된다.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길드는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성하며 특혜와 혜택을 대물림한다. 하지만 한국 개신교의 행태는 전망이 그다지 밝지 않다. 중세 길드가 걸어간 길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14세기 이래 중세 길드는 상황 변화를 겪는다. 독립 사업장을 소유하지 못한 직인이 많아졌고, 이들은 직인 길드에 저항한다. 직인 길드는 이 저항 세력에 대한 반작용으로 기득권을 지키려고 더욱 보수적인 노선으로 나갔다. 가입 조건을 강력히 제한하면서 외부인의 진입을 막고 지역 독점권을 더욱 강화했다. 그 결과 공생과 내부의 평등을 강조하던 길드가 양극화되면서 갈등이 더 심해졌다. 길드 안에서 특권 집단이 등장했으며 일부 길드가 귀족화되었다. 길드는 원래 시민적 이상을 가진 곳이었지만, 더 이상 시민적 이상이 지배하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한국 개신교회는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의 양극화, 안수 받은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사제중심주의,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한 교회 세습, 목회자 길드와 장로 길드의 긴장 등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독점권의 상실, 과당 경쟁,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 산업지형의 변화 등 중세 길드가 말기에 겪은 상황과 비슷한 맥락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종교 사회의 성격상 그리스도교가 서구에서 오랫동안 누리던 독점적 지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개별교회 우선주의로 인해 동역자로서의 공생과 협력보다는 무한 경쟁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신학적으로 목회적으로 보수 근본주의화 하는 상황에서, 혜택을 독점하려는 특정 대형교회들의 시도는 개신교 길드 안팎에서 심각한 파열음을 내고 있다.
특정 집단의 특권 독점과 대물림을 개신교 길드 안팎에서의 개혁을 통해 한국 개신교가 스스로 갱신해 나갈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한국 개신교회는 중세 길드처럼 보수화의 길을 가다 역사적 흐름에 매몰될 것인지? 성탄절 전날, 예수가 신의 특권을 버리고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성탄절을 맞이해서, 한국 개신교회가 스스로 물어야 할 질문이다.
신재식_
호남신학대학교 교수
저서로 《예수와 다윈의 동행》,《종교전쟁》(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그리스도교에서 본 마음과 몸: 정경을 중심으로>, <한국개신교의 현재와 미래>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