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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경자년을 맞이하여
우리의 기구(조직)도 인격체인가?
news letter No.607 2019/12/31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감회는 각별하고 또 다양한 느낌을 노출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신년을 맞이하는 우리는 지난 한해를 돌이켜 보며 앞으로 올 일들에 대한 새로운 기대나 기약을 하게 된다. 그런데 개인이 아닌, 조직이나 기구의 경우에는 송구영신이 무엇을 의미할까?
불교를 전공하는 나는 언제인가 “불교의 생애(The Life of Buddhism)”란 책 제목을 접하고 무심할 수가 없었다. “부처님의 생애(The Life of Buddha)”를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닐까 짐작했으나 아니었다. “부처님의 역사(The History of Buddha)”라는 표현도 접한 적이 있는데 “불교의 역사(The History of Buddhism)”를 잘못 표기했으리라 짐작했으나 이 역시 잘못 표기 된 것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낯설어 보이는 이러한 표현들은 우리가 이제껏 당연하게 여기거나 통속적으로 다루어 온 것들을 달리 보고 새롭게 접근할 필요 때문에 작위적으로 만든 말들이었다.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것 혹은 우리에게 이미 어필하고 있었지만 우리의 고정된 시각이 묵살했던 점을, 표현을 달리하고 개념의 틀을 바꿈으로써 새롭게 들추어내려는 도발적 시도들이었던 것이다. 곧 우리의 고착된 틀을 깨고 달리 보자는 표제들이었던 셈이다.
개인의 경우 각자의 생애 이야기가 있는 동시에 그 개인을 객체화시킨 역사적 측면이 존재한다. “부처님의 생애”만이 아니라 “부처님의 역사”가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사물/사상(事象)의 경우에도 객체화된 측면과 동시에 그 나름의 유기적 생명이 흐르는 생애가 있다. “불교의 역사”만이 아니라 “불교의 생애”가 가능한 것은 이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연구소는 작년에 30주년 기념식을 치렀다. 이제 우리는 성년식을 치룬 이 기구의 생명력과 인격성에 대해 새롭게 각성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본다. 구성원들의 단순한 집합이 연구소가 아니고 연구소의 업적이 연구소의 목적이기만 한 것도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든 것의 총화가 한국종교문화연구소는 아닌 것이다.
우리 구성원들의 집합을 넘어서며 우리 각자의 생각과 활동을 넘어선, 독자적 생명력을 지닌 것이 연구소이며 나름의 생애를 지닌 것이 연구소이다. 우리 각자는 연구소와 개별적인 파트너십의 관계를 지닐 뿐이다. 어느 누구도 연구소를 전횡할 수 없고 어느 개인의 비전이 연구소의 비전일 수도 없다. 우리는 연구소에 대해 겸허해야 한다.
이제껏 우리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듭해 왔고, 미래에 대한 뚜렷한 전망을 제시하지 못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러한 역부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파트너십을 통해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 협력해 왔다.
우리는 종교를 연구하는 종교학도다. 그런데 종교가 담겨있는 곳은 우리의 생활현장이고 우리의 역사다. 통속적으로 말하는 불국토에 불교가 담겨있고 하늘나라에 기독교가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는 우리의 삶의 현장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우리는 종교를 담고 있는 삶의 현장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고 무엇을 사유했나? 교리적 도그마의 해석에 자신을 감추고 이상화시키지는 않았는지, 역사적 사실의 나열에 머물지 않았는지 반성할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동터오는 경자((庚子)년을 맞이하여 연구소와 나와의 관계, 그리고 파트너십에서 빚어질 새로운 일들을 생각해본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주요 논문으로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불교에서의 인권이란무엇인가?>, <백교회통-교상판석의 근대적 적용> 등이 있고, 역서로《성스러움의 해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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