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이럴 때 종교학 강의라니
news letter No.618 2020/3/17
(이 글은 비대면으로 진행된 필자의 인간과 종교 강의 인사말이다. 종교에 대한 말을 꺼내기 쉽지 않은 상황에서 마음에 쌓인 감정을 담아, 얼굴 모르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본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 거리를 두고 특별하게 만나고 있습니다. 얼굴을 마주하지 못한 채 학기를 시작하는 일은 경험해보지도 생각해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사회 활동이 정지하다시피 한 지금, 경제를 비롯한 우리 일상의 여러 영역은 타격을 입고 변화가 불가피합니다. 종교 역시 그러합니다. 종교사적으로 꼽힐만한 사건들이 이어지고 있어, 아마 코로나19가 지나간 이후 종교계 모습도 많이 바뀔 겁니다.
학생들은 아마 종교에 대해 알아보겠다는 생각으로 수강 신청을 했겠지만, 한두 달 지난 지금 시점에 그 관심은 높아진 정도가 아니라 폭발할 지경이 되었을 겁니다. 부담스러운 관심입니다. 무릇 수업이라면 종교계 흐름에 대해 정리된 견해를 전달해주어야 할 텐데, 일단은 상황이 정리되기를 기다려보아야 한다는 뻔한 소리가 제 첫 반응입니다. 고통스러운 변화의 시기에, 종교학 강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 여간 답답한 것이 아닙니다. 왜 하필 지금인가? 그래도 마음을 추슬러 몇 마디 하고 싶습니다. 왜 지금이 종교계의 큰 변화의 시기인지, 학생들의 호기심과 종교학 강의 내용이 어디서 만나고 엇나가는지를 정리해두는 것이 수업 시작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학생들의 관심은 온통 신천지일 테지만, 이건 신천지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종교하기의 방식에 큰 영향을 주고, 종교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을 크게 바꿀 것입니다. 유사 이래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었습니다. 불교는 생로병사의 고통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시작되었고, 기독교도 병을 물리치고 사람을 살리는 예수의 행적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예로는, 온 세상이 괴질운수(怪疾運數)에 빠져 있을 때 ‘다시 개벽’을 부르짖은 동학(東學)이 있습니다. 종교의 전통적인 역할은 치병(治病)입니다. 그러나 이제 종교는 사람을 살리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의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조직 특성이 바이러스 전파와 맞물리며 최악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기성 종교의 문제도 적지 않습니다. 천주교 성지순례, 수련회, 성가대, 교회 예배를 통해 집단 감염이 일어났습니다. 지금 일반 사회에서 종교는 거대한 바이러스 숙주로 보일 뿐입니다. 지금 종교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그 최선은 방역 당국에 적극 협조하는 것으로, 천주교와 불교가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종교가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에 대해 더 엄격한 경계가 그어질 것입니다.
종교는 함께 모임의 경험을 기반으로 하는 조직인데, 현재는 이 경험이 중단된 상황입니다. 대학 교육만 해도 평생 안해 본 온라인 교육을 한다고 강사들이 부산을 피우고 있는데, 이 경험은 분명 앞으로 강의에 영향을 줄 겁니다. 종교계 역시 미사, 법회, 예배가 없는 한두 달을 경험한 후 어떻게 달라질까요?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겠지만, 그 파급력은 상상 이상일 거라고 보입니다. 종교에서 물리적 공간과 동질적 공동체보다 문화적 거점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해지는 날이 앞당겨지지 않을까요?
신천지 이야기도 간단히 하고 넘어가죠. 종말론 해석을 통해 신도를 모으던 지도자가 “이러한 일이 있을 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습니다.”라며 자기 조직 보호에만 골몰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신천지가 전국민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는 상황은 너무나 이해할 만합니다. 그런데 우리 수업에서는 이른바 사이비 문제를 ‘신종교’라는 명칭 아래 다룰 것이고, 무조건적인 비난이 아니라 그들을 종교로서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를 배울 겁니다. 사회적 정서와 다소 다르기에 당황할 수도 있지만, 수업의 기조는 비난과 비판을 구분하자는 평범한 내용입니다. 한 집단을 정통과 이단이라는 특정 종교의 기준으로 분류하고 비난하는 것을 사회적 판단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의 행위가 공동체의 합의된 가치를 위배하는 것인지에 따라 좋은 종교와 나쁜 종교를 구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신천지에 대한 비판은 이전의 사이비 담론에 비해 분명히 발전된 모습을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 대한 비판은 그들의 믿음 내용이 아니라 그들이 한 행위, 즉 조직 은폐와 방역 비협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과 종교’라는 우리 수업에서 반복해서 이야기될 기조는 종교 역시 인간이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하는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고 종교 역시 그러합니다. 이번 사태를 겪으면서 그 생각을 더 이어가게 됩니다.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입니다. 세속과 종교를 구분하는 견해가 존재하고, 그 견해는 종교에 특권적인 자리를 부여하는데 일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태는 종교가 해당 사회에서 존재하는 것이고,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적극적으로 힘으로 모아야 함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종교를 실천하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더 명확해질 것을 기대하며 이번 학기 강의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원일_
서울대학교 강사
논문으로 <혼합현상에 관한 이론적 고찰>, <원시유일신 이론의 전개와 영향>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자연 상징》, 《자리 잡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