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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16호-민간유교라는 개념에 대한 단상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3. 3. 19:39

민간유교라는 개념에 대한 단상


 news  letter No.616 2020/3/3   

 

 

 


민간유교라는 말을 쓰면서 민간유학이라고 쓰는 게 나을지 잠시 망설였다.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실천하는 대다수의 중국인 학자들이 ‘민간유학’이라는 용어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영어로 표현할 때도 folk Confucianism과 popular Confucianism 중에 어떤 것이 적절할까 망설여진다. 앞서 말한 대다수의 중국인 학자들은 영문 초록에 folk Confucian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만, 민간종교라는 카테고리 중의 한 흐름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popular Confucianism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과 타이완의 학계에서는 그 이외의 지역에서 민간종교(popular religion)라고 일컫는 카테고리에 대하여 대체로 ‘민간신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중국어권에서 인식하는 ‘민간종교’는 ‘민간비밀교파’에 해당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중국과 타이완 학계에서는 민간의 보통사람들이 믿고 실천하며 향유하는 유교적 현상들을 ‘민간유교’라고 일컫는 것을 꺼리고, 영문으로도 ‘popular Confucianism’이라는 용어를 꺼리는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다.

천롱졔(陳榮捷, Wing-tsit Chan)는 1952년에 《근대 중국종교의 동향(Religious Trends in Modern China)》이라는 저서에서 유교(제1장)와 불교(제2-3장)의 상황을 다룬 다음, ‘대중의 종교(the religion of the masses)’라는 제목의 제4장에서 도교 및 재리교ㆍ백련교ㆍ귀일도 등의 전통적인 종교조직과 20세기에 생겨난 새로운 종교결사 등을 언급하였다. 또한 양칭쿤(楊慶堃, C.K. Yang)이 《중국 사회 속의 종교(The Religions in Chinese Society)》(1961)에서 제도종교(institutional religion)와 분산형 종교(diffused religion)라는 개념 틀을 도입하면서 ‘민간신앙(popular cults)’의 비중과 의미를 강조한 이래, 중국종교를 유ㆍ불ㆍ도 삼교로 설명해왔던 기존의 교과서적 방식에 더하여 ‘민간종교’라는 또 하나의 영역이 중국종교를 이해하는 데에 필수적인 것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들은 ‘민간종교(popular religion)’가 아닌 ‘대중의 종교’ 및 ‘민간신앙’ 등의 용어를 사용했지만, 20세기 중반에 영어로 출판된 이 두 권의 중국종교 관련 저서는 세계의 학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끼쳤고, 유ㆍ불ㆍ도 삼교와는 다른 중요하고도 특수한 중국종교의 한 파트로서 점차 민간종교가 부각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유ㆍ불ㆍ도 삼교와 ‘민간’의 결합은 어떠한가? ‘민간불교’나 ‘민간도교’는 한국어에서는 흔히 사용되는데, 중국어에서는 ‘민간불교’는 상대적으로 빈도수가 높지만 ‘민간도교’라는 용어는 비교적 드물게 사용되고 있다. 근현대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말하자면, 불교의 경우 민간불교와 그 외의 불교 현상을 구분하여 볼 필요가 있지만, 도교의 경우는 애초에 ‘민간’이라는 수식어가 불필요하다고 여겨서 그런 것이 아닐까 추측한다.1) 이에 비하면 ‘민간’과 ‘유교’의 결합은 상당히 어색하게 느껴진다. 유교란 대체로 남성 지식인층이 주도해온 전통으로서, 석전의례에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고 조상제사 역시 여성은 배제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popular Confucianism’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학자는 아마도 현대신유학(New Confucianism)의 거두였던 모우종산(牟宗三)의 대표적인 제자 중 한 사람인 류슈셴(劉述先, 1934-2016)일 것이다. 그는 영어로 쓴 논문에서 ‘popular Confucianism’이라는 용어를 썼고, 이를 중국어로 발표하면서 ‘민간의 유가(民間的儒家)’라고 번역하였다. 그는 유가란 지나치게 복합적인 현상이므로 정신적 유가(spiritual Confucianism)ㆍ정치화된 유가(politicized Confucianism)ㆍ민간의 유가(popular Confucianism)로 나누어볼 것을 제안하였는데, 그 가운데 민간의 유가에 대하여 “민간 차원에서 작용하는 신앙과 관습으로서, 가정과 교육의 가치를 중시하고 근로와 절제의 생활방식을 지키며, 도교나 불교의 영향 및 귀신을 믿는 미신과 뒤섞여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2) 그 역시 ‘민간유교(民間儒敎)’라는 용어는 피했던 셈이다.

필자가 민간유교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은 2015년 민간유학을 연구한다는 중국의 한 연구자로부터 한국에 와서 자신의 연구를 확장시키고자 하는 의향을 들었을 때였다. 일부 중국학 연구자들이 유학의 민간화에 관해 언급하곤 했지만, 그때 비로소 한국의 민간유교에 대하여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녀의 연구 과제에 흥미를 느껴서 추진하다가 중국 측의 문제로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민간유교’는 언젠가는 다루어보고 싶은 도전적인 과제로 남아 있었다. 필자는 지난해 말에 비로소 이 과제에 손을 대기 시작하였는데, 조금 정리가 되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더 큰 문제들에 부딪치고 있다. 예를 들면, ‘민간유교’ 담론을 세 가지―①‘현대 중국의 바람직한 유교의 양상’으로서의 민간유교 담론3) ②‘민간종교적 성격의 유교’라는 함의를 가진 민간유교 담론 ③기존의 유교사 전통에서 민간친화적인 유교, 혹은 엘리트 지식인이나 관료가 아닌 민간의 일반인으로서 유교의 교리를 학습하고 유교적 문화를 누리는 주체가 되었던 이들의 학문적 성취 등을 가리키는 민간유교 담론―로 구분해보니, 이 세 부류가 상호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중첩되는 요소들도 있지만, 너무나 복잡하게 얽혀서 잘 보이지 않던 민간유교의 가닥이 잡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동시에 민간유교는 신종교나 종교결사 등의 문제와도 얽혀 있으며, 중국과 타이완의 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와 서구나 홍콩 학자들이 사용하는 용어 사이의 불일치로 인한 문제들도 적지 않다.4) 용어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연 어떤 신종교를 민간유교종파라고 할 수 있으며, 어떤 사람들이 민간유교인들인가? 필립 클라트(Philip Clart)는 신자들이 유교를 중심적인 신념이라고 고백하면 민간유교라고 말하지만, 한국의 신종교인 갱정유도의 경우, 내부인들은 유교계 신종교로 분류되는 것을 거부하는데 《한국신종교사전》(2018)에서도 갱정유도는 여전히 유교계 신종교로 분류되어 있다. 갈 길이 태산이지만 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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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국에서는 ‘민중불교’라는 용어의 빈도수가 높지만 중국어권에서는 비교적 드물고, ‘民衆佛敎信仰’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곤 한다. 도교의 경우 ‘民衆道敎’라는 용어가 한국과 일본에서는 자주 사용되는데, 중국어권에서 하나의 개념어로 사용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2) 류슈셴은 〈儒學的理想與實際: 近時東亞發展之成就與限制之反省〉(《儒家思想意涵之現代闡釋論集》, (中央研究院中國文哲研究所, 2000)에서 이 글은 본래 《Understanding Confucian Philosophy: Classical and Sung-Ming》(Westport, Conn. and London: Greenwood Press and Praeger Publishers, 1998)에 실린 내용이라고 밝히고 있다.

3) 필자는 ①에 해당되는 내용이 현대 중국에서 특히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민간유교 담론이라고 여겨서, 먼저 이에 관한 논문(〈현대 중국의 민간유학에 대한 연구〉)을 발표하였다. ‘민간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유는 그 글에서 다루는 중국의 학자들이 거의 예외 없이 ‘民間儒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중국어권에서 민간종교는 주로 민간비밀교파를 의미하는데, 이를 일본의 중국 연구자들은 ‘종교결사’라고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이연승_
서울대학교 교수
논문으로〈서구의 유교종교론〉,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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