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778호-달라이 라마의 ‘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5. 16. 14:05

달라이 라마의 ‘혀’

 

 news letter No.778 2023/5/16

 

 

                   
           

      올해 2월 티베트의 14대 달라이 라마가 강연 중 한 소년과 대화하며 보인 행동이 뒤늦게 문제로 떠올랐다. 4월, 언론은 소년의 입술에 키스한 후 ‘혀를 빨라(suck my tongue)’며 자신의 혀를 내밀고 있는 티베트 망명 지도자의 모습을 보도했다. 티베트의 문제에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 한국의 주류 언론들에서조차 뉴스로 다루었다. 한국은 달라이 라마의 방문이 허용되지 않는 대표적인 나라로 꼽힌다.
       이러한 행동을 성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아동 성추행의 측면에서 보는 입장이 다수였다. 한국 인터넷 댓글에서도 실망과 혐오 표현이 많았다. 지난 시기 JMS 목사 등이 종교적 후광을 이용하여 신도들에게 가한 성폭력과 연관시키기도 했다. 중국에서는 골칫거리의 ‘실수’와 ‘스캔들’이 가져오는 파장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인터넷 금지어였던 ‘달라이 라마’가 해제되는 ‘검색의 자유기’를 잠시 누렸다. 달라이 라마 사무소에서는 “소년과 가족에게 사과하고 그 행동을 지금은 후회하고 있다”는 입장을 냈다. 티베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달라이 라마 측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으로 사과문을 통하여 사건을 오보하고 오해한 쪽에 힘을 실어 준 것을 꼽기도 한다. 지난 4주간 티베트인들의 입장에서 나온 중요한 반박을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 내게 떠오르는 생각을 적어보고 싶다.

    첫 번째로, 미디어에서 전체 맥락을 보지 않고 일부만 떼어서 선정적으로 보도하는 태도가 문제였다. 해당 비디오 전체를 보면 안아 달라고 온 아이를 달라이 라마가 내치지 않고 귀여워하고 축복하는 모습에서 나온 행동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어머니와 소년은 이후 인터뷰를 통하여 불쾌함이 없었다고 말했다. 미디어가 편파적 방식으로 표면적 사항을 문제의 본질로 삼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달라이 라마의 행동을 해명하는 가장 설득력 있는 해석은 문화상대주의적 관점이다. 티베트 조부모들은 손주를 귀엽게 여기는 행동으로서 입을 맞추고, 자신의 입에서 손주의 입으로 직접 음식을 건네준다고 한다. 음식을 다 건네고 더 줄 것이 없으면, ‘Che Le Sa’라고 하는데 이 말은 이제 “내 혀를 먹으라(eat my tongue)”는 뜻이다. 내 입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줄 수 있다는 의미이고, 달라이 라마는 소년에게 이런 관습에서 혀를 빨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입맞춤과 혀 빨기/먹기는 성적 감정이 응축된 태도로만 제한될 수 없다. 불교적 관점에서 오히려 그런 행동을 선정적으로 보는 인간의 마음을 ‘맑고 깨끗하게’ 하자는 주장도 있다. 이와 더불어 달라이 라마가 티베트인들에게 익숙한 말을 영어로 표현했을 때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상황, 즉 비영어권 사용자가 영어를 사용할 경우 문화 간 번역의 어려움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망명 티베트인들이 사는 장소들을 중심으로 ‘아이스탠드위드달라이라마(#IStandWithDalaiLama)’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미디어가 ‘혀’를 성적인 테두리 안에서만 보는 서구의 시선으로 문제 아닌 것을 ‘문제’로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달라이 라마의 행동은 티베트 문화에서는 자연스럽다. 그런 행동을 지적하고 교정하려 들지 말라, 교육받고 교정해야 할 대상은 티베트 문화에 무지한 언론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온라인 사이트(
https://istandwithdalailama.com/)가 열렸다. 문제가 된 전체 비디오, 관련 티베트 관습에 대한 문화적 설명, 다양한 단체들의 지지 성명, 그리고 티베트인들의 시각을 모은 비디오 자료들이 있다.
       이 외에 해당 비디오가 이슈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티베트 연구자들이 신속하게 입장을 발표했다. (
https://tsamtruk.com/2023/04/22/academic-scholars-of-tibetan-studies-call-on-the-media-for-careful-investigation-over-the-dalai-lama-incident-statement/) 연구자들은 이번 사건이 미투 운동, 그리고 실제로 심각하게 존재하는 종교의 성폭력과 연관되는 방식을 경계했다. 이런 미디어의 보도와 시각을 티베트와 히말라야 공동체, 그리고 티베트 불교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하고, 글로벌 뉴스 종사자들에게 민감한 문제에 대해서 편견과 선정성 대신 충분한 조사를 하라고 촉구했다. 티베트 지역과 불교 전공자 중 평소에 엄밀한 종교연구자들로 생각했던 학자들도 포함되어 있어 같은 종교학 전공자로서 생각하게 하는 지점이 생긴다. 혹자는 티베트가 지나치게 이상화되어 있다고 비판하기도 하지만 이 지역 문화에 대한 보호는 정당성을 지닌다. 현재 부당하게 지배를 받고 있고, 소멸할지도 모르는 문화에 대해서는 동시대 인간으로서 차가운 거리를 두기 쉽지 않다. 종교학자가 비평가가 되어야지 보호자가 되면 안된다(Russell T. McCutcheon, Critics Not Caretakers)고 한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비평자이면서 동시에 보호자(critics and caretakers)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몇 가지 생각이 두서없이 스쳐 지나갔다. 우선 종교적 깨달음이 세속 인권의 영역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한스 큉 같은 사람들은 종교들의 공통집합을 통해서 세계 윤리를 만들려고 했지만, 예컨대 오늘날의 성인지감수성은 급격하게 ‘배워야’ 하는 윤리적 영역이다. 배우지 않으면 ‘깨달음’에 가까운 사람마저 자칫 이번 사건처럼 ‘성추행’이나 젠더 차별적이 될 수 있다.1) 달라이 라마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은 문화에서 왔다. 오늘날 강조되는 인권의 국제적 표준은 전통 종교와 멀어지고 있는가? 속세의 규율에서 자유로운 ‘깨달은 이’의 ‘미친 지혜(crazy wisdom)’는 용납되지 않나?
       그 다음으로 드는 생각. 농담과 장난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될 수 있을까? 사실 달라이 라마는 천주교 데스몬드 투투(Desmond Tutu) 대주교와의 만남에서 입술을 삐쭉 내밀고, 두 사람은 입을 맞추었다. 천진난만한 장난은 종교를 넘나드는 영적 지도자들의 우정과 가식 없는 행동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이번에 아이에게 하는 행동은 문제시되었다. 달라이 라마 측의 사과문에서 그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악의 없이 장난을 치는 것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인들에게 가장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에게도 이제 선을 넘지 않는 장난이 요구된다. 그런데 농담과 장난은 종종 아슬아슬한 선을 타고 있다. ‘정치적 올바름’과 각종 감수성이 필수 매너가 된 요즘, 발언할 때마다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불편하지 않을까?” 자기 검열하다가 결국 논쟁이 없을 최소 사항만을, 김빠진 방식으로 말하고 끝내는 경험을 한다.
     달라이 라마의 혀, 그의 행동과 말 한마디가 세계 언론을 타고 즉각 전 세계인들의 흥분을 사기도, 또 그에 반발한 티베트인들을 거리로 뛰어나오게도 한다. 달라이 라마는 티베트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사후에 티베트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우려를 가지고 다가올 미래를 본다.


---------------------------------------------------
1) 이와 관련하여 2015년과 2019년 달라이 라마의 BBC 인터뷰도 같은 선상에서 다루어 볼 수 있다. 2015년 인터뷰에서 미래에는 여성이 달라이 라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럴 경우 “여성은 더 매력적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큰 쓸모가 없다(Female must be attractive, otherwise it’s not much use).”라고 해서 논의를 빚은 적이 있다. 4년 후의 인터뷰에서 기자가 다시 물었을 때 “여성 달라이 라마가 나온다면 조금 더 매력적이어야 한다. 지루하게 보이면 사람들이 그녀 얼굴 보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내적 아름다움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외모 또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https://www.youtube.com/watch?v=aXSlpy7Ku9c) 즉, 이 점에 대해서는 입장 변화가 없다.

 

 

 

 

 

 

 

 

 

 

 

 

 

 

 

 

 

최정화_
서울대학교
종교학의 역사와 방법론 위주로 공부하였고, 최근 논문으로 〈기울어진 세속주의: 독일의 통일국가 만들기 과정에서 세속주의가 작동되는 방식〉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