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779호-정견(正見)과 분별(分別) 사이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3. 5. 23. 18:54

정견(正見)과 분별(分別) 사이

 

 news letter No.779 2023/5/23



   
                 
           

      매스컴에 널리 보도가 되었듯이, 2023년 3월 20일 전북 전주의 한 성당에서 열린 ‘전국사제비상시국회의’의 결정에 따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발족하였고, 4월 10일부터 8월 16일까지 교구를 돌아가며 매주 ‘월요시국기도회’를 열기로 하였다. 또 4월 6일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들의 시국선언에 이어서 5월 4일에는 개신교 목회자 1,000여 명의 이름으로 시국선언을 발표하였다. 한편 불교계는 5월 1일부터 ‘범불교 비상시국선언’에 동참 연명을 받기 시작하였고, 5월 8일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스님들이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 중단을 촉구하며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시위를 하였고, 출가 및 재가의 불자들이 5월 20일 서울광장에서 ‘윤석열 퇴진’ 등을 요구하는 ‘1차 야단법석’을 예고하였다.

    그런데 이 글의 목적은 종교계의 해당 소식을 거듭 알리려는 것이 아니고, 시국선언 자체에 대한 종교인들 사이의 반응을 살피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과거 어느 때보다도 공공연하게 종교와 정치가 뒤죽박죽으로 엮여서 많은 사람이 깊은 우려를 하고 있는데, 또 한편에서는 시국선언과 같은 현실참여를 아예 부정적으로 보는 종교인구가 적지 않을 것이다. 수년 전에 우리 사회 종교인들의 정치적 성향에 관한 졸고(拙稿)를 발표한 적도 있기는 하지만, 실은 필자가 속한 불교단체의 회원들 단톡방에서 최근 시국선언 등에 관한 공지가 떴을 때 나타난 반응이 이 글을 쓰도록 만든 셈이다.

      그동안 나름대로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라고 자부하던 불교단체의 회원 단톡방에 정치 · 시국 이야기는 아예 하지 말기를 바라는 글이 오른 것은 다소 의외였다. 물론, 가족친지끼리 사적인 밥상머리에서도 ‘정치’는 예민한 화제이고, 더 이상 부담 없는 얘깃거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근래의 우리네 사정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불과 7년 전 탄핵정국의 촛불집회에 동참하였고 15년 전 시국법회에서는 앞장을 섰다고도 볼 수 있는 단체인데, 그 사이 회원 불자들의 정치 · 사회적 성향이 달라졌을까, 혹시 그때는 집회 참여를 반대하는 회원들의 목소리가 작아서 묻혔던 것일까, 혹은 최근의 시국법회 등이 옳지 않은 선택일까, 현재 상황의 불자로서는 과연 무엇이 옳은 판단일까, 저간의 사정이 궁금하다.

      아래 인용은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승려로서 종단 내부의 문제뿐만 아니라 시국 현안에 대해서도 분명한 주장을 표출하고 있는 허정 스님(지리산 백장암)의 글인데, 스님들이 시국법회를 이끄는 일에 대해서 반대하는 불자들에게 전하는 내용이 되겠다. 출가든 재가든 불자 이전에 개인의 정치적 취향은 자유로운 선택사항이므로 서로의 판단과 기대가 불일치 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불자로서의 판단이라면 그 의미를 점검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오래전부터 인연 있는 보살님이 내게 전화를 걸어와서, “수행자는 시비를 놓고 조용히 공부해야 한다. 정치에 참여하여 번거롭게 살지 말고 일신 편안하게 사는 게 좋다”는 충고를 하였다.....시비를 놓고 혹은 시비분별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그동안 많이 듣던 말이다. 마치 불자들은 그것이 요긴한 수행의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런데 시비를 내려놓는 게 불교일까....(중략)....‘시비를 내려놓으라’는 말이 승려들과 불자들을 멍청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불교를 오해하게 만들고 있다. 부처님은 옳고 그른 것을 처음부터 지속적으로 말한다. ‘바른 견해’와 ‘삿된 견해’를 설명하는 것이 그것이다. 정작 종교인이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이 결탁해서 서로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다. 이것은 소수의 이익을 위해서 승가 구성원 혹은 사회 구성원이 불행해지는 일이다. 여기에서 바른 정치참여와 삿된 정치참여를 구분하는 눈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비를 구분도 못 하면서 무조건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거나 무조건 시비를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다."

      윗글의 취지에 필자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덧붙여서 개인적 소회(所懷)를 말하자면, 불자들은 국가사회의 정치영역에서만이 아니라 신행활동이나 대인관계에서도 모종의 ‘시시비비’가 벌어지는 상황이 될 경우, 막연한 두려움과 혐오감 즉 ‘갈등 포비아(phobia)’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무턱대고 화합과 관용을 말하거나, 걸핏하면 “시비분별(是非分別) 하지 마라”, “따지지 말고 한 생각 내려놓으라”고 말하는 불자들이 있다. 이유 여하간에 갈등할 문제는 덮어놓고 사이좋은 척하라는 뜻이거나, 본인도 정작 실행할 수 없으면서 남에게 뜬구름 잡는 조언을 하는 경우가 될 수 있다. 부처가 되기 전까지 우리 범부중생이 무조건 시비분별을 멈춰야 할 이유와, 그렇게 우리의 시비분별이 멈춰질 가능성이 있기나 한 것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인도 청년 고타마 싯달타의 철저한 시비지심(是非之心)이야말로 깨달음으로 향해가는 출발선이 아니었던가. 당대 전통인 바라문교의(婆羅門敎義)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새롭게 유행하던 여러 가지 사조(思潮)들에 대해서도 조목조목 이의를 제기하고, 생로병사 희노애락 우비고뇌(生老病死 喜怒哀樂 憂悲苦惱)하는 세간사의 시시비비를 대중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설파하신 내용을 모은 것이 바로 불교경전이 아니던가. 구도자 싯달타는 시시비비의 끝판왕으로서 세간사를 통달요해(通達了解)하고 그 이치[法]에 따라 수행을 한 결과,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이루고 ‘세간해’(世間解)1)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이 아니던가.

       세간을 바로 아는 지혜를 강조하는 불교에서 믿음[信]이란 초발심의 원천이고 더불어 가르침에 대한 이해[解]와 실천수행[行]과 체득[證]의 단계를 갖춰서 궁극의 깨달음에 이르는 것으로 설명된다. 그러한 지혜[prajñā 般若]는 세간사 대상을 “꿰뚫어 안다”는 뜻인데, 비록 인식[samjñā 想]과 알음알이[vijñāna 識]가 모두 다 ‘아는’ 성질을 가졌지만, 대상을 알아보는 그 깊이에 따라서 상(想) - 식(識) - 통찰지[慧, 般若]로 나누는 것이다.2) 불교는 이처럼 세상사를 단순히 앎과, 세상사의 속성[無常 · 無我 등]까지 자세히 앎과, 세상사를 통찰하여 도(mārga 道)에 이르는 궁극적 앎을 세밀히 구별할 정도로 ‘세상사 바로 알기’에 중점을 두고 출발한다.

       또한, 불자의 기본수행 덕목으로 널리 알려진 팔정도(八正道) 가운데 첫 번째가 정견(正見)이다. 불자가 자기 주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 가운데서 무상(無常) · 무아(無我) · 고(苦) · 인과(因果) · 연기(緣起)의 이치를 바로 보려 하지 않고, 달리 무엇을 본다고 하겠는가. 무참히 가족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 무단히 일자리를 잃고 절망하는 사람들, 그나마 호소할 창구가 사라져 낙담하는 사람들....지금 여기 세간살이에서 고통의 연기법(緣起法)을 정견-통찰하지 않는다면, 불교가 지혜와 자비의 종교라는 말을 내세울 수도 없다. 더욱이 정견은, 정사유(正思惟) · 정어(正語) · 정업(正業) · 정명(正命) · 정정진(正精進) · 정념(正念) · 정정(正定)과 함께하는 수행법이므로, 불자로서 보고 듣고 아는 바에 따르자면 결국 실천하는 행동으로 나아가게 되는 순리(順理)를 외면할 이유가 마땅히 없는 것이다.

       마침 불기(佛紀) 2567년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다. 불자라면 법회에서 한 번쯤 따라 불러보았을 찬불가 후렴구 “정진하세 정진하세, 물러남이 없는 정진, 우리도 부처님같이, 우리도 부처님같이”를 되새기며, 부처님처럼 정진하기를 바라는 불자들의 통찰지혜와 자비수행이 성숙하여, 부디 이 땅에 널리 상생과 공영(共榮)의 기운이 견고해지기를 기원한다.


---------------------------------------------------
1) 如來十號 : 여래(如來) · 응공(應供) · 정변지(正遍知) · 명행족(明行足) · 선서(善逝) · 세간해(世間解) · 무상사(無上士) · 조어장부(調御丈夫) · 천인사(天人師) · 불세존(佛世尊)
2) 붓다고사 스님 지음, 대림 스님 역, 『청정도론』 제2권(초기불전연구원, 2005), pp. 402-404.

 

 

 

 

 

 

 



       

  

      

 


이혜숙_
계간 불교평론 편집위원장, 국제참여불교네트웤(INEB) 집행위원
논문으로 <종교사회복지의 권력화에 대한 고찰>, <한국 종교계의 정치적 이념성향 연구를 위한 제언>, <시민사회 공론장 확립을 위한 불교계 역할>, <구조적 폭력과 분노, 그 불교적 대응>등이 있고, 저서로 《아시아의 종교분쟁과 평화》(공저), 《임상사회복지이론》(공저),《종교사회복지》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