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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민족종교,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망하다
news letter No.820 2024/3/5
작년 12월 한국민족종교협의회가 민족종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민족사 차원에서 새롭게 조망하는 《역사 속에서 되짚어 본 민족종교》(편집인 윤승용, 국판 407쪽)라는 책을 2년간의 긴 작업 끝에 발간하였다. 이 책은 한국 민족종교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의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한국종교사나 민족사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학계에서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100여 개 민족종교 교단을 선정해 1년 6개월 동안 현장 조사를 통해 집필 전문위원들이 시기별, 계통별 체계를 잡아 정리한 성과물이다. 성격상 학술서적이라기보다는 한국 민족종교의 발전을 위한 정책보고서에 가깝다. 중요한 내용은 과거와 현재의 민족종교들을 조망하고 있으며, 조사 대상을 기존의 민족종교 범주를 넘어 민족문화의 차원에서 한국 민족종교의 개념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자주적 개벽파의 민족종교와 문명적 개화파의 기독교 간의 거리를 좁히고자 하는 미래 제언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은 한국의 민족종교를 시기별로는 개항기의 민족종교 창립기, 일제강점기의 일제투쟁기, 분단정착기의 민족종교 재건기, 산업화기의 민족종교 적응기, 민주화기의 민족종교 재사회화기, 200년 이후 세계화기의 민족종교 다변화기로 구분하여 서술하였다. 계통별로는 동학계, 증산계, 정역계, 각세도계, 물법계 등 신앙형식과 신앙내용이 모두 민족적인 ‘자생형 민족종교’, 신불교계, 신유교계, 신도교계, 신기독교계, 무교계 등 신앙형식은 한계가 있더라도 신앙내용이 민족적인 ‘전통종교나 기성종교’의 ‘분파형 민족종교’, 연정원, 국선도, 단학선원, 마음수련원과 같이 민족적 신앙형식이나 신앙내용과는 거리가 있으나 민족종교의 수련전통을 현대적으로 담아낸 ‘기수련단체’, 그리고 태국지하구국종교연합, 증산교단통정원, 동도교, 마음의 광장, 동학종단협의회 등 민족문화 창달과 민족정신을 함양하고자 종교들이 연합한 ‘민족종교연합단체’들을 조사 정리하고 있다.
한편, 한국의 민족종교는 힌두교나 신도와 같은 자연발생적인 민족종교와는 전연 다르다. 한국인의 자생종교로서 천하관을 전제한 민족공동체를 상정하고 인류구원을 위해 한민족이 먼저 구원사업에 앞장설 것을 주창한다. 인간해방을 지향하는 근대적 창립종교이긴 하지만, 우리 삶의 현장인 민족공동체를 우선하는 종교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늘신앙(敬天)과 풍류도(風流徒)와 같은 고유한 신앙형식은 물론이고 신앙내용도 인류역사의 주체로 한민족을 상정하고, 선맥(仙脈)과 무맥(巫脈)의 전통적 종교성을 계승하며, 그리고 세상의 개벽과 같은 민족의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려는 미래 비전을 담고 있다. 더불어 민족 역사의 고난에 대한 신정론(神正論)적 해석을 제시하고, 민족의 미래 영광을 약속하는 종교들이다. 그리하여 한국의 민족종교는 우주적 차원에서 한민족의 미래를 그리며 민족문화의 보존과 창달, 그리고 인륜도덕을 기반으로 한 3.1운동과 같은 인류평화에도 지대한 역할을 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민족종교 중에는 그간 사라지거나 현재 명맥 유지에 그치고 있는 종단이 적지 않아 한민족의 삶의 역사나 정신문화 보존 차원에서도, 관련 교단의 실태 파악과 기록보존이 필요하다는 학계 의견이 적지 않았다. 이 책은 그에 대한 응답이다.
한국의 민족종교는 개항기 도탄에 빠진 민중들에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시했으며, 일제강점기에서 나라 잃은 서러움을 달래고 민족정신을 일깨우고 수많은 민족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민족분단의 질곡 속에서도 민족의 고난과 운명을 걱정하며 민족정신과 민족문화를 지키는 역할을 다해 왔다. 심지어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임지현, 소나무, 1999)’라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휘몰아치고 있는 지금도 민족분단을 극복하고자 이전의 저항적 전통을 되새기며, 자신의 고유한 생명력을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민족분단과 인간의 개별화를 토대로 하는 산업화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금, 한국 민족종교의 지형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져 있다. 냉전으로 인한 민족분단 이후 ‘자생형 민족종교’들이 쇠퇴하고 ‘분파형 민족종교’들이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민족종교의 수련전통을 현대적으로 담아낸 ‘기수련단체’가 흥행하고 있다. 민족종교의 신앙형식과 신앙내용도 너무 많이 달라지고 있다. 신앙형식은 기독교와 불교와 같은 형식을 취하며 신앙내용도 민족공동체보다는 분단국가의 정당성을 우선하는 반쪽짜리 민족종교들이 늘어가고 있다. 이 책은 이 같은 민족종교의 지형 변화에 의거하여 고유한 신앙형식과 신앙내용을 중심으로 규정해 온 현재의 ‘자생형 민족종교’ 중심의 개념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든 종교는 인류애와 선교만을 강조하는 세계종교와 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이슬람과 같은 이른바 세계종교가 아니면 무언가 부족한 종교라고 인식한다. 종교라고 한다면 현장의 문화와 현실 특수성보다는 구원의 보편성만 강조하는 이상적 종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신앙 현장에서는 이른바 세계종교라고 해서 다 좋은 종교가 아니다. 과거 중화적 의식을 가진 종교나 서구적 패권의식에 매몰된 종교도 있고, 그에 비해 서구적 신앙양식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민족문화 창달에 충실한 종교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미 우리 사회 지배종교의 하나로 정착한 기독교와 그것에서 분파된 한국적 기독교들도 이제는 민족종교 범주에서 굳이 배제할 필요가 있는지를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이미 1970년대 이후 우리사회에서 민족불교, 민족유교, 민족교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 바도 있고, 한국문화와 융화되어 한국적 종교로 꽃피운 종교도 적지 않다. 특히, 한국인이 창립한 기독교 일부에서는 해원과 개벽을 강조하고 신명과 같은 한국의 종교성을 대폭 흡수한 경우도 적지 않다. 동학의 인내천(人乃天)에 유비하여 가내천(家乃天)을 주장하기도 하고 주역(周易)이나 명심보감(明心寶鑑)을 주요 경전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이들은 비록 종교 내부에서는 이단으로 치부되고 있지만 한반도가 재림예수나 메시아의 강림지이고, 인류 문명의 최종 집결지이며, 한민족은 세계 문명을 주도할 주역이 된다고 하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종교의 진리가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인간 삶의 현장을 떠나서는 종교적 의미를 찾기 힘들다. 현장을 떠난 관념적이고 교조적인 종교는 도리어 인간의 현실적인 삶을 황폐화한다. 그리고 한국의 종교문화 전통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재해석되기 때문에 삶의 현실과 동떨어진 민족의 고유 실체를 주장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전통은 계승되어야 하지만 한국인의 삶 내용과 더불어 끊임없이 재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지금까지 종교의 신앙형식만 보고 ‘민족종교’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해 온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민족종교 개념을 전통적인 신앙양식에만 기준을 둘 것이 아니라 현장의 입장에서 해당 종교가 얼마나 인류평화와 더불어 한민족의 문화정체성, 민족통합성, 민족자치를 수용하고 있는지 그 신앙 내용을 고려해 판가름할 필요가 있다. 어떻든 한국 종교문화에 불교인 혹은 기독교인만 있고 한국인이 없다면, 그것은 민족적 차원에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래 민족종교의 발전을 위해서도 우리 사회가 다양한 신앙을 가지되, 종교인 모두가 민족의 구성원이 될 수 있는 길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논문으로는 <한국종교의 이상세계론, 그 연구를 위한 시론>, <현대종교와 民族主義: 유신시대 (1972-1979)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종교지형변화>, <동아사아 종교의 근대화과 그 한계- 동아시아의 민중종교를 중심으로->, <민주화시대 불교개혁운동과 그 한계>, <한국 신종교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와 과제>. <한국민족종교의 기본사상-단군, 개벽, 신명> 등이 있고, 편·저서로는 《한국 신종교와 개벽사상》,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책임편집),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책임편집),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책임편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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