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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 기독교와 한국 기독교사
news letter No.821 2024/3/12
1.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중층적이고 다원적으로 축적된 종교전통을 가진 역사적 공동체이다. 선맥(僊脈)과 무맥(巫脈)의 종교적 심성을 바탕으로 유교, 불교, 도교 등의 전통종교, 근대에 발현한 동학(천도교),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 민족(신)종교, 외래종교인 천주교와 개신교 등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한국 종교문화의 맥락에서 근대에 ‘수용’된 천주교와 개신교는 짧은 기간에 종교 내·외적인 요인으로 폭발적인 양적 확장을 통해 불교와 더불어 주류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한국 기독교(그리스도교)에는 천주교와 개신교 등 두 유형의 기독교만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한국 기독교 문화에는 천주교와 개신교에 의해 추방당해 망각되고 있으며, 민족종교마저 외면하고 있는 ‘이도 저도 아닌’ 기독교 문화가 존재한다. 바로 ‘자생성 기독교’이다. ‘자생성 기독교’는 기독교 문화와의 만남을 매개체로 한국의 역사적 정황에서 자생한 토종 기독교를 말한다. ‘자생성 기독교’는 기독교의 주류에 포함되지 못한 채 ‘이단’ 기독교 혹은 ‘사이비 종교’라는 선입관념으로 ‘계륵’같이 취급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 기독교 역사는 서구에서 전래된 천주교와 개신교의 한국 전개사로 서술하는 경향을 초래하였다. 천주교 학자는 천주교 중심의 호교론적 서술로, 개신교 학자는 천주교를 개신교의 전개를 위한 전사(前史)로 기술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한국 기독교사가 주체적으로 자생한 기독교 현상을 배제한 채 서구 기독교의 전래사 혹은 확장사로 이해되는 맥락착오적인 서술을 너무나 당연시하고 한다. 과연 자생성 기독교 문화를 배척하고 푸대접한 한국 기독교사가 온전한 ‘한국 기독교사’일까?
2. 천주교형 기독교는 로마 교황을 정점으로 주교-사제 등의 위계질서로서 천주교 중심의 포괄주의적 선교정책을 가진 세계적인 종교조직이다. 한국에 ‘수용’된 천주교는 성리학적 사회에 전례 논쟁을 야기하며 전통문화를 무시하고, 일제 강점기에 노골적인 친일 행적 등으로 민족적 수난에 동참하지 않는 제국성 종교로서의 속성을 드러냈다. 제2바티칸공의회를 계기로 한국 전통종교와 문화에 대한 토착화와 종교 간 대화를 주도적으로 선도하며 일제 강점기의 친일 행적에 대한 참회와 반성을 하는 등 유연한 선교정책으로 전환한다. 그러나 친일인명사전에 기록된 천주교의 친일 행적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반발은 역사적 참회의 진실성에 의구심을 품게 만든다. 또한 역사적 현장을 ‘천주교 서울 순례길’로 독점(?)하려는 종교적 시도, 천진암의 성지화 등으로 촉발된 불교계와의 갈등 등은 여전히 한국 역사와 종교전통을 존중하지 않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국 천주교는 로마 교황청이 반포한 《교회법전》을 집행하는 ‘제국성 천주교’로 기능하고 있다.
3. 개신교형 기독교는 천주교의 종교적 부패를 극복하기 위해 탄생하였으며, 일정 부분 천주교와 교리적 신학을 공유하며 창시자의 신앙 노선을 중심으로 교파교회의 정체성을 가진다. 천주교와 전혀 다른 종교적 맥락으로 수용된 개신교와 마찬가지로 개신교의 교파교회도 서로 다른 역사적 맥락으로 한국 종교사에 등장한다. 감리교회는 토착화 신학을, 기독교 장로교회는 민중신학을 전개하며 다양한 ‘상황’ 신학을 만들었으나 이들이 담론적 실험에 그치는 한편 개신교의 주류교단들은 여전히 한국 종교전통을 배타적인 태도로 대하고 있다. 또한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와 친일 행적, 제주 4.3 사건에 대한 역사적 과오, 그리고 비성서적이고 반신학적이기도 한 교회세습과 교회매매에 대한 책임의식 결여는 개신교 이익공동체의 ‘침묵의 카르텔’이 작동하는 현장이다. ‘오직 성서만으로(Sola Scriptura)’를 내세운 한국 개신교는 새로운 성서해석은커녕 서구에서 이식된 ‘복음과 신학’을 확산하는데 함몰된 ‘사대성 개신교’로서 기능하고 있다.
4. 토종형 기독교 문화는 신사참배 등 민족의 수난기에 동참하지 못한 친일 행적, 외국 선교사의 독선적 선교행태, 교회의 권위적인 경직된 교권, 한국 종교전통을 포용하지 못한 채 서구 기독교의 우월주의를 내세우며 성서의 정신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는 제국성 천주교와 사대성 개신교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데서 탄생한다. 이로 인해 해방 후 토종형 기독교 문화는 한국(민족) 중심의 인류 구원을 표방하는 경향이 강하다. 2대에 걸쳐 항일 독립운동을 한 정도교, 대한신민단을 결성하여 항일무장 독립투쟁을 한 대한성리교, 예수 정신이 상실된 교회 현실을 비판하고 세워진 예수교회, 한국 신령파의 신학을 정초한 이스라엘 수도원, 기독교의 영성을 온몸으로 실천한 이세종, 한준명과 류영모, 조선산 무교회 운동의 주역인 김교신과 최태용, 한국적 기도원의 효시로 호국기독교의 면모를 가진 용문산 기도원, 한국 경전해석의 전통을 계승하여 성서를 새롭게 해석한 변찬린의 《성경의 원리》 4부작 등은 ‘자생성 기독교’ 문화를 대표하는 사례이다. 토종 기독교 문화는 한국의 종교적 심성을 확산하고 보편성을 획득하는 과정의 ‘자생성 기독교’ 문화로 기능하고 있다.
5. 한국의 세 유형의 기독교는 한국의 종교적 심성에 안착된 전통종교로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한국적 기독교로 거듭나기 위해 생성 중인 역사적 종교이다. 따라서 한국 기독교사는 서구에서 전래된 천주교와 개신교의 한국 확산사로만 서술되어서는 안 된다. 한국의 종교적 심성에 바탕을 두고 제국성 천주교, 사대성 개신교, 자생성 기독교가 트라이앵글처럼 융합해 가는 ‘한국 기독교사’로 서술되어야 한다. 앞으로 한국 기독교사 서술자는 한국의 다원적 종교전통을 존중한 바탕 위에 기독교 신학의 ‘침묵의 카르텔’을 해체하고, 그동안 홀대하였던 ‘자생성 기독교’에 대한 인식 전회를 통한 전면적인 서술을 하여야 한다. 한국의 종교지평에서 바라본 ‘한국 기독교사’의 온전한 서술이 있어야 한국 종교사도 올바르게 쓰일 것이다. 한국 종교계가 당면한 역사적 과제이다.
이호재_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
주요 저서로 〈선맥과 풍류해석학으로 본 한국 종교와 한국교회〉, 〈포스트종교운동: 자본신앙과 건물종교를 넘어〉, 〈한밝변찬린 : 한국종교사상가〉 등을 비롯하여 중국 종교와 한국 종교에 대한 국내외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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