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s letter No.440 2016/10/18
올해 정월, 한 경매에 출품예정이었던 《삼국유사》 권2 <기이(紀異)>편이 도난품이라는 의혹이 제기됐다. 경매회사측은 경매 하루 전날에 매우 이례적으로 그것에 대한 경매를 즉각 중단하고 문화재청에 소유권 확인을 요청했다. 서울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 조사결과 이 책은 1999년 대전의 한 교수가 도난당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장물업자인 경매의뢰인은 이 책을 입수하여 15년의 공소시효를 기다린 끝에 경매에 내놓았다가 경찰에 덜미가 잡혔다. 그는 문화재보호법에서 은닉죄는 은닉상태가 끝나는 순간부터 공소시효를 계산한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이 책은 결국 원소장자가 사망해버려 그의 유족이 회수하는 것으로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이 뉴스로 보도될 때, 한 방송에서는 기이편이 어떤 책인지 소개하는 코너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 방송기자는 <기이>편은 고조선부터 후삼국까지의 기이한 역사이야기를 담은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알려진 대로 《삼국유사》는 5권 9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의 편명으로는 두 번째에 해당하는 <기이>편은 권1에 이어 권2에까지 그 내용이 이어지므로 분량 면에서도 비중이 상당히 크다. 우리는 이 책의 내용을 논하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이 책이 ‘이야기’ 형식으로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가 삶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경험을 표현한 이야기의 형식을 통해서이다. 삶 자체가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것은 언제나 이야기의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의 삶은 마치 수많은 점들과 같은 경험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혼돈 그 자체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을 처음, 중간, 끝이 있는 이야기 형태로 만들게 되면 파편 같은 경험은 질서정연한 구조에 위치하게 된다. 우리의 경험은 이야기로 표현되면서 인식할 수 있는 하나의 실재가 된다.
《삼국유사》 <기이>편 이야기들은 그 편명에서 알 수 있듯이 뭔가 ‘다른’ 것에 관한 기록이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의 경험과 결코 단절된 것이 아니다. 일연은 이러한 경험을 기이(奇異)하고 괴상망측한 것과 구별하여 신이(神異)라고 개념화하였다. 인간의 신이 경험에 관한 이야기는 삼국유사 전편을 관통하며 일관되게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이를 기록한다’라는 뜻으로 풀이되는 <기이>편을 별도의 편명으로 두었다. 게다가 마치 <기이>편 이야기의 논란을 예견했다는 듯이 서문을 통해서 그 서술의 준거에 대해 중국의 사례를 열거해가며 정당성을 부여하였다.
20세기 초부터 이러한 이야기들은 신화, 설화, 역사 등 다양하게 명명되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육당 최남선은 1928년 ‘단군 및 그 연구(壇君及其硏究)’에서 “단군고기는 형식상으로 한 편의 신화”라고 하면서 단군 고전(古傳)에 대해 신화학적 고찰을 할 것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신화와 역사를 대립관계로 파악하는 이분법을 전제하는 입장에서는 역사=사실, 신화=허구라고 단정한다. 이와 같은 인식론적 기반에 있는 사람들은 단군이야기에 신화라는 개념어를 사용하면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성토한다.
개념은 편의를 위한 일종의 이름 짓기이다. 개념은 사물을 투명하게 인식하게 해주고 소통을 가능하게 해줄 뿐 아니라 언술과정에서 일정한 자리를 잡아 사유의 일탈을 막아주기도 한다. 개념화는 인간의 경험을 담아내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그 유용성의 이면에는 한계성으로 인해 끊임없는 논란거리가 된다. 단군이야기에 대한 신화냐 역사냐의 물음은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 실재가 되어 소모적인 논쟁의 한 사례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다음의 인용문을 음미할 필요가 있다.
“경험은 추상화되어 개념으로 기술되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개념이
실재가 되어 경험을 재단하는 일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경험과 개념을
아우르는 총체적인 삶을 관조할 수 있는 다른 접근을 모색하지 않으면 인식의
파열은 불가피합니다.”
정진홍, 『지성적 공간안에서의 종교 -종교문화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위하여』, 2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