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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28호-‘성스러운’ 체액(體液)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8. 6. 26. 16:46
                              ‘성스러운’ 체액(體液)

 

 
news  letter No.528 2018/6/26  

 

 

 


       체액(Bodily Fluids) 즉 몸에서 배출된 피, 눈물, 땀, 젖 등은 많은 문화권에서 불결하고 오염된 것으로 상정되어 접촉을 꺼리는 금기의 대상이다. 이 중에서 월경혈과 산후혈과 같은 여성의 피는 특히 불결하다고 여겨져 여성을 사회/종교 공동체로부터 격리하는 하나의 기제로 작동한 것이 사실이다. 인간의 체액이 혐오 또는 아브젝시옹(abjection)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육체의 내부가 외부가 되면서 육체의 ‘경계’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입, 코, 귀, 눈, 항문, 질(膣)은 내부와 외부가 만나는 대표적 기관으로 인간의 취약성을 상징하기도 한다. 특히 체액의 경우 피부의 경계를 넘어 외부로 유출되면서 본인의 육체와 분리됨으로써 역겨움과 기피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종교적 콘텍스트에서 이들 체액은 새로운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받을 뿐 아니라, 중요한 물적 매개체로 신자들은 이를 통해 직접 신성과 소통하고 신의 현존을 경험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종교는 기독교이다. 예수가 흘린 피와 땀은 하느님의 구속사(救贖史)에서 매우 커다란 의미를 가진다. 기독교에서 예수가 인류구원을 위해 흘린 희생의 피 – 성혈(聖血) 혹은 보혈(寶血, Precious Blood) - 는 구원의 원천으로, 천주교 신자들은 정기적으로 미사 중 성찬식에서 포도주로 형상화된 성혈을 받아 마심으로써 살아있는 그리스도와 하나 됨을 추구한다. 한편 성모가 예수의 주검 앞에 흘린 눈물은 기독교 전통에서 세상의 고통에 그녀가 동참하고 있음을 상징하며, 성모의 모유는 모든 것을 양육하고 돌보는 그녀의 역할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수유하는 성모’(Mary Lactans; Our Lady of Milk)의 이미지는 중세에 걸쳐 대중의 사랑을 받으며, 이미지 묵상을 통해 성모 발현과 함께 성모의 모유를 직접 받아먹는 – 예, 성인 베르나르, 복녀 파울라 – 기적도 보고된다. 여기서 성모의 젖은 육화된 성모 또는 성모의 현존에 대한 표징이며, 더 나아가 그녀의 모유는 예수를 양육하였기에 육화된 예수와의 밀접한 관계를 드러낸다. 이런 맥락에서 중세 기독교 신비주의에서 관상, 묵상, 기도를 통해 예수 혹은 성모의 삶을 모방하고 – Imitatio Christi, Imitatio Maria – 이들과 하나 되고자 하는 수행에서 성스러운 체액은 매우 중요한 매개체로 작동하였다. 또한, 성혈과 성유(聖乳)가 중세 기독교에서 대중의 신심을 고양하는 중요한 물적 자원이었다는 것은 당시 관련 성유물(sacred relics)이 유럽에 넓게 퍼진 것에서도 확인된다. 여기에는 다른 성인들과 달리 예수와 성모는 사후 육체와 함께 하늘로 올라감으로써 육체적 잔재를 지상에 남기지 않았다는 믿음도 한몫을 한다.

       그러나 구원자나 성인으로부터 유출되었다는 성스러운 체액을 보고, 만지고, 맛보면서 구원자의 현존과 은총을 온몸으로 확인하고자 하는 열망은 기독교의 지나간 전통에서만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동시대에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대표적 사례는 나주의 ‘마리아의 구원방주’(이하 ‘구원방주’)로 해당 공동체를 이끄는 윤율리아(본명: 윤홍선, 1947~)는 성스러운 체액과 관련된 수많은 기적을 보임으로써 많은 추종자를 주위에 모으면서 관련 가톨릭 전통을 극단적으로 재해석 또는 확대해석하는 과감한 종교적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윤율리아가 대중의 이목을 처음으로 끈 사건은 그녀가 모시던 성모상이 1985년 6월부터 1992월 1월까지 눈물, 피눈물, 진땀을 흘리고 코피까지 쏟으며 성모의 고통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모상의 기적이 알려지면서 순례객이 전국에서 모여들고 그녀의 추종자를 중심으로 공동체가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후에도 그녀의 성모상은 1992년 11월부터 1994년 10월까지 향유(香油)를 흘리고, 2001년 3월에는 핏빛 향유를 흘렸으며 현재까지 계속 향유를 흘리고 장미 향을 풍기고 있다고 한다. 성모의 젖과 관련된 기적은 상대적으로 최근부터(2009년~) 보고되고 있는 것으로 성모의 ‘참젖’이 특별한 행사나 교회 기념일에 윤율리아와 신도들 그리고 특정 장소(‘성혈 조배실’, 경당 등)에 떨어진다고 한다. 윤율리아는 이렇듯 성모 신심/공경을 전면에 내세우며 1985년부터 현재까지 성모 발현과 함께 성모로부터 받았다는 메시지를 꾸준히 전달하고 있다.

       ‘구원방주’에서는 예수성심(Sacred Heart of Jesus) 신심/공경 또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구원방주’ 안에 있는 ‘성모님 동산’에 ‘(15처) 십자가의 길’, ‘갈바리아 언덕’, ‘성혈 조배실’이 조성되어 있음에서도 알 수 있다. ‘십자가 길’에서 윤율리아는 정기적으로 예수의 십자가 길을 재현하며 편태(채찍질)와 자관(가시면류관) 고통을 겪으며 피를 흘리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얻은 오상(五傷)의 상처 자국 즉 성흔(聖痕)을 보일 뿐 아니라, 이 길에는 또한 종종 예수의 성혈, 피땀, 진액도 떨어진다고 한다. 그녀가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 고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몸을 통해 ‘그리스도 닮음’(Imitatio Christi)을 구현함으로써 예수와 하나 되어 예수의 구속 역사에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함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갈바리아 언덕’의 십자가에 달린 예수상에서는 성혈이 흘러 떨어질 뿐 아니라 종종 눈물과 진땀이 흐른다고 한다. 이 밖에 ‘성혈조배실’은 1995년 미사 중 윤율리아가 받은 성체가 심장 모양의 살과 피로 변화되었던 장소에 조성되었다고 하며, 이곳에는 현재까지 여러 차례 성혈이 내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언급할 것은 ‘율신액’, 즉 윤율리아의 소변이다. 그녀가 2002년 ‘십자가 길’에서 로마 병사가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는 장면을 현시로 보게 되고 그 순간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 동시에 찬란한 빛을 경험하였는데, 그때 주님이 그녀의 소변에 아름다운 빛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녀의 추종자들은 그녀의 소변을 묻힌 스카프를 아픈 부위에 매거나 문지르면 치유된다고 믿고 있다.

       앞에서 기술하였듯이 ‘구원방주’는 다양한 종류의 체액 – 피, 젖, 눈물, 땀, 진액, 소변 등 – 을 매개로 예수와 성모의 현존과 은총을 추종자들에게 확인시키고 있으며, 이로써 이들 물질은 초월적인 것을 구체적인 것으로, 비가시적인(부재한) 것을 가시적인 것으로 경험하게 하고 그 경험을 전파하게 한다. 이런 맥락에서 종교경험에서 ‘물질’의 중요성은 결코 간과할 수 없으며, 여기서 ‘물질’은 단순히 믿음이나 신학적 교리의 이차적 표현이 아닌, 믿음의 실질적 토대로 작동하면서 다양한 감각이 동원된 종교경험을 가능케 한다고 할 수 있다. ‘구원방주’가 가톨릭교회의 풍부한 물적 문화와 신비주의적 전통을 배경으로 나타난 것은 – 물론 교도권은 ‘구원방주’가 가톨릭교회와 무관하다고 선언하지만 – 우연이 아닐 것이다. 즉 가톨릭교회는 성화, 성상, 성유골 등을 신심을 고양하는 중요한 물적 유산으로 간주하고, 하느님의 ‘육화’ 혹은 성만찬을 전례의 핵심으로 구성할뿐더러, 예수와 성모의 삶과 일치됨을 강조하여 이를 위한 다양한 종류의 관상, 묵상, 기도를 갖추고 있다.

       한국의 가톨릭교회는 ‘구원방주’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해당 공동체를 방문하는 자들에게 파문제재를 선언하였으나, ‘구원방주’는 가톨릭교회와 분리되기를 거부하며 여전히 건재하다. 본 글은 무엇이 그토록 많은 신자를 그곳으로 향하게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답이 될지도 모른다.

 

 


우혜란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한국 가톨릭 여성에게 고통과 신비체험>, 〈젠더화된 카리스마〉, 〈종교문화콘텐츠에 대한 또 다른 ‘종교학적’ 접근〉, 공저로는 <한국사회와 종교학>, 〈우리에게 종교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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