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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78호-공간의 팔림세스트, 이미지의 팔림세스트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6. 11. 23:54

공간의 팔림세스트, 이미지의 팔림세스트

 


news  letter No.578 2019/6/11       

 


1906년 덴마크의 문헌학자 요한 루드비히 하이베르크(Johan Ludivig Heiberg)는 콘스탄티노플에서 나온 기도서 양피지 문서를 검토하던 중 1200년대 한 수도사가 사용하던 기도서 양피지에 고대 그리스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문서 필사본이 숨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중세 시대 양피지는 값비싼 재료였고 따라서 한번 사용한 양피지를 재활용하는 일은 빈번했다. 중세 필사가들은 기존에 사용된 양피지 위에 적힌 글씨를 지우고 새로운 문헌을 필사했는데, 이렇게 재사용된 양피지를 팔림세스트(palimpsest)라 부른다. 1998년 미국 볼티모어의 월터스 아트 뮤지엄(The Walters Art Museum)에서는 고문서 전문가 윌리엄 노엘(William Noel)의 주도하에 고전문헌학자, 이미지 복원 전문가, 물리학자 등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이 팔림세스트의 표면층을 걷어내고 그 밑에 쓰인 문헌을 복원하는 작업을 추진했고, 10여년에 걸친 작업 끝에 아르키메데스의 문헌 '스토마키온(Stomachion(Ostomachion))'과 '방법론' 그리고 고대 연설가 휘페리데스(Hyperides)의 연설문 및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대한 주석 등이 이 양피지에서 복원되었다.

'현재의 표면 아래 있는 과거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팔림세스트'라는 말은 실제 양피지의 의미를 넘어 여러 학문 분야에서 차용되어 왔다. 즉 주체를 구성하는 과거의 여러 기억들, 표면의 의식 아래 있는 무의식의 층위들, 기존의 텍스트 위에 또 다른 허구의 텍스트를 구축하는 글쓰기 등등이 팔림세스트라는 메타포를 통해 논의되었다. 특히 '공간에 들어있는 시간의 층위'라는 팔림세스트의 의미는 건축과 미술 작업에서 공간의 역사, 기억과 공간, 현재와 과거의 중첩 등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로 자주 사용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자 중요한 점은 이러한 팔림세스트의 의미는 가장 밑에 놓인 원형적인 것, 최초의 것을 찾아서 그것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 속에 들어있는 이질적인 시간의 층위들을 드러냄으로써 결국 현재의 것이든 과거의 것이든 그 어느 것 하나에만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행위들, 전략들을 해체하자는 데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팔림세스트에 주목하는 것은 결코 원형의 복원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질적인 것들의 중첩을 보여줌으로써 원형의 신화를 해체하는 작업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팔림세스트는 신화의 다층성 등 종교 현상 전반을 논의하는 데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개념이지만 특히 종교의 장소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환기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진 종교적 유적지 혹은 종교 건축물 중 상당수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 축적된, 서로 다른 종교성의 층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콘스탄티노플의 하기아 소피아는 6세기에 세워진 비잔틴 제국의 교회였지만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 제국에 함락된 1453년 이후로는 모스크로 사용되었고, 그 이전 1204년에서 1261년까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십자군이 세운 라틴 제국 시기에는 로마 가톨릭의 교회로 사용된 적도 있었다. 파르테논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도시 국가 아테네와 아테나 여신의 영광을 위해 지어졌지만, 6세기부터는 그리스 정교회의 교회로 사용되었고, 1460년대에는 모스크로도 사용되었다. 미국 애리조나 주 세도나는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성지였으나 이들의 땅을 점령한 미국인들에 의해 관광지로 개발되었고 오늘날은 한국의 기수련단체 단월드를 비롯한 많은 뉴에이지 계열 종교들 및 온갖 종교들이 모여있는 소위 영적 관광지가 되어 있다. 이처럼 하나의 장소에 서로 다른 종교의, 혹은 서로 다른 목적을 지닌 이들의 다양한, 이질적 성격의 흔적이 팔림세스트처럼 쌓여져 있는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지의 이러한 팔림세스트적 성격을 환기하고 지적하는 것은, 이 곳이 원래 누구의 성지였는지를 따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한 장소를 한 종교의 영광, 한 종교가 정한 하나의 상징으로 고정화하려는 힘의 논리들을 파헤치는 작업이며, 장소의 성스러움을 신비화하거나 신화화하는 각 종교의 전략 밑에 깔린 복잡한 맥락들, 그리고 그 맥락들 속에서 혹은 그 맥락과 무관하게 그 장소를 찾아 온 다양한 사람들의 흔적들을 생각해보는 일이다.

박찬경의 2008년 전시회 <신도안>에 사용된 동명의 6채널 비디오 작품은 계룡산 신도안이라는 장소의 팔림세스트적 성격을 영상 이미지를 통해 드러낸다. 1975년 말 소위 계룡산정화사업과 1983년 삼군본부 계룡대 설립이 시작되기 전 신도안은 수많은 신흥종교들의 본산지였다. 박찬경은 비행기의 그림자와 삼군본부의 깃발이 드리운 신도안의 현재의 모습과 과거의 많은 종교들의 사진들을 나란히 배열하며, 서로 다른 종교의 단체사진들에서 익명의 개인들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영가무도를 읊는 남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방 안, 텅 빈 방안에 앉아 설교를 하는 이의 주변에 하나씩 희미하게 나타나는 과거 신도들의 이미지, 계룡산 산신과의 만남을 이야기하는 이의 발자국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움직임은 신도안이라는 공간을 채우고 있는, 지금은 보이지 않는 팔림세스트의 층들을 드러내며, 이 공간을 찾아 와 이곳을 의미화하려 했던 이들의 희구와 갈망을 드러낸다. 이러한 팔림세스트적 이미지들은 현재의 신도안이라는 장소를 의도적으로 비현실적인 장소로 치환함으로써 오히려 지금 우리 눈 앞의 현실을 다시 돌아보고 생각해보게 만드는 효과를 낳는다. 팔림세스트적 공간/ 팔림세스트적 이미지는 우리 눈 앞에 보이는 것들 아래 숨어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층위를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우리가 ‘명징’하게 ‘직조’되어 있다고 믿고 있는 세상이 얼마나 모호하고 복잡하게 엉킨 – 그래서 심지어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현실의 층들로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상징의 하나의 명확한 의미만을 찾고, 원형의 권위만을 내세우는 시대에 우리는 더욱 팔림세스트가 우리에게 생각해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최화선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 논문으로 <이미지와 응시:고대 그리스도교의 시각적 신심(visual piety)>,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 남장여자 수도자들과 젠더 지형>, <기억과 감각: 후기 고대 그리스도교의 순례와 전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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