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세동점(西勢東漸)과 동세서점(東勢西漸)의 차이
news letter No.585 2019/7/30
서구 열강의 압도적 위세에 동양의 전통사회가 '굴복이냐, 파괴냐'의 양자택일에 몰린 역사적 상황을 우리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이라고 한다. 수천 년 동안 동양 세력에 눌려 지내던 서구 유럽이 19세기 중-후반에 동진에 나서, 이후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동양에서 문화의 핵심이자 사회구성의 원리였던 종교를 비롯한 모든 삶의 양식을 통째로 서구적으로 바꾸어 버렸다. 서구적 사고와 체제가 전 세계를 휩쓸면서 ‘서구적 근대사회로의 이행’은 수많은 ‘혁명과 전쟁’을 야기하였다.
영원할 것 같았던 서세동점의 시대도 21세기에 접어들자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거대한 인구와 자원을 앞세운, 동양의 고전문화를 꽃피웠던 중국과 인도가 변화의 중심에 서 있다. 정신문명의 주도권만 아니라 세계경제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그리고 일본을 거쳐 중국과 인도로 넘어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는 이것을 '동세서점(東勢西漸)'이라고 한다. 최근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도 아베의 일본 우익주의도 그것에 대한 저항의 몸짓으로 해석되는 측면이 없지 않다. 새로운 국가중심의 경제전쟁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흔히 동양의 일본이 서구 열강 대열에 진입한 것으로 서세동점은 일단락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그것은 지극히 표면적인 평가에 지나지 않는다. 제2차 세계대전이 종료되고 세계화의 물결이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지금도 서세동점의 위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서구를 닮아야 살아남는다는 강박관념, 즉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도 그것에 일조를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한말 망국(亡國)과 해방 이후 분단 상황은 조금도 다르지 않다.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의 서세가 외부에서 강제된 것이었다면, 후자는 서세가 내면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를 괴롭히는 분단체제도 따지고 보면 내면화된 그 서세의 위력 때문이다. 바로 그 내부의 서세 때문에 여전히 민족분단 체제가 유지되고 있으며, 우리의 민족문화 정체성과 민족공동체, 그리고 민족자치가 크게 훼손당하고 있다. 우리는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와 같은 민족 내부 문제마저도 우리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처지가 아닌가.
서세는 19세기 '이성(과학)신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서구의 이성(과학)에 대한 맹목적인 신앙은 17세기 이후 유럽에서 시작하여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이성(과학)이 신(神)이고 종교가 되었다. 이 신앙은 19세기에 풍미했던 자연과학의 원자론(입자이론)을 근본 원리로 삼고 있다. 그러나 19세기가 다 지나가기도 전에 이 원자론은 완전히 폐기되고, 파장이론과 같은 새로운 이론들이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자론은 사회과학 제 분야에서 아직도 상당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사회과학에서는 이 원자론을 기반으로 하여 타자를 배제하는 개인주의가 도출되었으며, 그 개인주의는 근대 사회과학의 부동의 원리가 되었다. 개인주의는 인간에게 개인의 자유와 평등을 가져다주긴 하였지만, 사회조직의 지속가능성에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닌다. 그러한 약점들이 비서구 사회에서 이제까지 잘 부각되지 않았던 것은 생존을 위한 근대화·산업화라는 시대적 요청이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이었다. 근대화·산업화야 말로 서세의 숙주로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그것이 진행될수록 공동체의 폐해는 늘어만 갈 것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관계를 중요시하는 동양사회에서도 오만한 주체만이 존재하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말하자면, 경제적 이해만이 사회관계를 형성하는 원리로 받아드리기 때문에 다른 원리에 근거하는 모든 관계들은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아 주변화되고 만다. 인간의 정체성과 안식처를 제공하는 삶의 방식들 예컨대, 가족, 종교, 역사, 언어, 민족 등 다른 원리에 의해 형성되는 인간관계들이 점차 배제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근대 이후 모든 부분에 전행(專行)을 행사하던 이성(과학)신앙에도 21세기에 접어들자 황혼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다. 오만한 개인주의와 그것에 기초한 자본주의 체제는 이제 더 이상 버텨낼 수 없을 것이라는 예견(豫見)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미 1970년대 로마클럽보고서 '성장의 한계'가 나오고 오일쇼크가 겹쳐지면서 체제의 지속가능성에 심각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더구나 20세기 말미에 시장근본주의인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체제 내부의 모순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자원 공급이 무한대로 확대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지속가능하긴 하겠지만 자연을 타자화하고 정복해 버리는, 인간이 필요한 자원을 무자비하게 뽑아내는 생산방식으로는 지속성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를 밝히는 ‘세계체제론(世界體制論, World System Theory)’이 각광받기 시작했으며, 뒤이어 문학계와 학술계의 관성적 현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도 확산되고 있다. 여기에 유기론적 관계사고(關係思考)가 기반을 이루는 아시아적 삶의 가치도 부상하고 있는 형세다.
이제까지 서세에 대한 저항과 극복은 대체로 동양의 특수성을 대립시키는 방식으로 대안을 모색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주체를 대신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서세동점의 해소가 바로 동세서점이 아니라는 것이다. 진정한 해소를 위해서는 서구중심의 원자론적 사회조직 방식을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 조직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유기론적 패러다임’으로 조직방식이 전환될 때만이 인류의 생존과 발전이 가능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이 같은 입장에서 새로운 대안문명을 지적하는 학자들이 적지 않다. 일찍이 토인비 (A. J. Toynbee, 1889-1975)는 서양의 문명은 그것이 우리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문명과는 전혀 다른 ‘참된 기독교’로 돌아서지 않는다면 인간은 비극적인 운명을 맞을 것이라고 하였고, 소로킨(P. A. Sorokin, 1889-1968)은 앞으로 인간은 ‘통일된 영성에 대한 초의식 수준’에 오르게 될 것이므로 이타적인 사랑에 의한 ‘새 땅과 새 하늘’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으며, 인도의 지성 라다크리슈난(Radhakrishnan, 1888-1975)은 다가오는 미래는 ‘지적인 사랑에 근거한 전 세계적인 통일’이 이루어지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여기에 한국의 민족종교들도 동참하고 있다. 과거 서세동점에 대한 위기의식을 표출한 동학농민혁명은 반외세의 기치를 높이 들기는 했지만, 그 서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다. 그렇지만 동학농민혁명의 영향을 받은 천도교, 증산교, 정역, 대종교, 원불교, 갱정유도 등의 민족종교들은 보편적인 대안문화를 만들고자 새로운 동서합일의 도덕문명론을 제시하고 있다. 이들은 과도한 물질문명에 동양의 정신문화를 접합함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이끌어 가야 함을 공히 역설하고 있다. 이른바 영육쌍전(靈肉雙全)이고 도학과 과학의 합덕(合德)이다. 요컨대, 동서의 상극적 갈등 속에 빠져있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더불어 사는 공동체적 도덕문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느 한쪽의 정복이 아니라 해원상생의 원리를 기반으로 한 동서합덕(東西合德)을 주창하고 있는 것이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논문으로 〈한국사회변동에 대한 종교의 반응형태 연구〉,〈근대 종교문화유산의 현황과 보존방안〉등이 있고, 저서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공저),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공저),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