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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84호-중국 고대 동물의 자리를 찾아서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7. 23. 19:08

중국 고대 동물의 자리를 찾아서


news  letter No.584 2019/7/23   

 



오늘날 중국 안양은 과거 상나라 유적지인 은허가 자리한 곳이어서 20세기 초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서 고고학적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다. 왕릉을 비롯한 묘지는 이와 같은 고고학적 발굴 작업의 주요 대상 가운데 하나였다. 묘지에서 출토된 각종 유물은 이 당시 사회상이나 문화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상나라 장례 풍습에는 사람이나 동물을 순장하는 일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에 묘지를 발굴할 때 많은 유골이 출토되었다. 중국 고고학계에서 동물고고학 분야가 높은 관심을 끌게 된 배경도 땅 속에 묻힌 동물의 뼈가 새로운 학문 분야를 요청할 만큼 비중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동물의 유골이 발굴되는 장소가 무덤에 한정되어 있지는 않다. 무덤 이외에도 제사에서 희생으로 바쳐진 동물을 사후 매장한 장소나 사람이 동물을 섭취하고 남은 잔해를 버린 쓰레기 더미에서도 많은 유골이 발굴된다. 동물고고학을 통해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안양 지역에서 발굴된 동물의 종류는 말, 소, 양, 개, 돼지가 주류를 이룬다. 통계 자료에 따르면 이곳에서 발굴된 자료 중에서 가장 비중이 큰 동물은 소로 나타난다. 은허는 상나라 후기 도읍지인데, 그 이전 시기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소의 비중이 적고 돼지가 많이 발굴된 것과 대조를 이룬다. 갑골문을 보면 한 번 제사를 지내는데 소 300마리를 한꺼번에 사용한 사례가 확인되기도 한다. 이 정도 규모의 소를 한 번에 동원하려면 가축을 대량 사육하는 시스템이 국가적으로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상나라의 콘텍스트에서 소가 지닌 존재론적 위치는 간단하지 않았던 것 같다. 소는 각종 신들에게 바쳐진 제사의 공물로서 일부는 땅에 매장되기도 하였고, 제사가 끝난 후에는 여기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소뼈는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우선 소의 견갑골은 상나라 점복의 도구로서 귀중한 가치를 지닌 것이었다. 견갑골은 미지의 세계에서 오는 전언을 가시적인 복조를 통해서 드러내는 매개체였다. 또한 소뼈는 수많은 가공물을 만드는 재료였다. 상왕 무정(武丁)의 배우자였던 부호(婦好)의 묘에서 발굴된 수많은 머리핀은 소뼈로 만든 것이었다.


소는 청동기 표면에 새겨지는 동물이기도 하였다. 상나라와 주나라에서 주조하였던 청동기에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들이 새겨져 있다. 여기에는 도철(饕餮)이나 용 같은 상상의 동물뿐만 아니라 호랑이, 말, 곰 같은 현실 속 동물도 포함되었다. 소는 그와 같은 동물 가운데 하나였다. 장광직(張光直)은 청동기 표면에 새겨진 동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면 상나라와 주나라 같은 중국 고대 문화를 온전히 이해했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라는 누군가의 지적에 대하여, 인간과 신의 매개자로서 동물의 역할을 강조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청동기 자체가 제사에서 사용되는 기물로서 신과 인간의 가교 구실을 하는 것처럼 그 표면에 새겨진 동물들도 동일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소가 주로 제사의 공물로서 동원되었던 반면에 개와 말은 주인의 사후 함께 순장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안양에서 발굴된 한 묘지에서 목에 동종(銅鐘)을 단채 순장된 개가 발견된 적이 있었다. 이때 많은 사람들이 이 당시에도 개를 애완동물로 키우던 풍습이 있었으며, 필시 주인이 살아생전 각별히 아끼던 개였기 때문에 함께 저승으로 데리고 가고 싶어 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사례가 자주 발견되는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당시에 순장되었거나 제사에 바쳐진 개의 연령을 조사한 동물고고학의 분석에 의하면 성체보다는 생후 몇 개월 미만의 어린 개체들이 많이 동원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발굴된 개의 총 개체수를 감안했을 때 앞에서 언급한 소의 경우처럼 개 역시 집단 사육 시스템을 통해서 길러졌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어떤 경우든 개를 순장한 까닭으로 사자를 위한 수호자 혹은 안내자로서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으리라는 것은 매우 상식적인 판단일 듯싶다.


인간이 동물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시대마다 지역마다 각기 다양한 특색을 드러낸다. 인간은 늘 동물이나 또는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와 스스로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가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인간의 정체성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될 것이다. 앞으로 특수하고 개별적인 사례들을 찾아서 이 분야 연구를 좀 더 심화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상나라 수렵, 목축, 제사를 통해서 본 삶의 세계 구축과 신, 인간, 동물의 관계〉, 〈상왕조의 인간희생제의에 관한 연구: 전쟁, 도시, 위계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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