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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유럽의 신화 비교에 대한 몇 가지 생각

 

news letter No.680 2021/6/1

 

 

 




코비드-19 팬데믹이 일상이 된지 1년이 지났다. 비대면 문화의 확산으로 때아닌 호황기를 누리는 사업도 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모임 인원의 제한, 감염에 대한 우려 그리고 활동 제약으로 인한 무기력증으로 많은 사람이 우울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를 두고 ‘코로나 블루’, 그 정도가 심하면 ‘코로나 레드’라는 신조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현재는 백신 접종의 속도전으로 1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감염병과의 투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 같다. 이와 같은 어려운 시절에 각종 모임이나 행사가 축소되기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종교문화연구소에서는 최근에 단행본을 출간한 저자를 초청하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토론하는 비대면 <저자 초청 강연>을 새롭게 진행하고 있다. 덕분에 집에서 학계의 주목을 받는 저자의 생생한 강연을 듣고 토론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첫 강연은 김현자의 《조르주 뒤메질, 인도-유럽 신화의 비교 연구: 그리스, 스칸디나비아, 인도, 로마의 신화들》(2018)이었다. 루벤스 작품 <파리스의 심판>의 세 여신(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을 모델로 한 책표지에서 북유럽, 인도 신화등 광범위한 자료를 인용하고 분석한 책이지만 그리스 신화가 부각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는데, 강연에서 저자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이 뒤메질(1898~1986)의 이론에 따라 3기능의 부조화에 있다는 것을 매우 상세하게 다루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리스 신화를 전면에 배치한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그리스 신화는 다른 지역 신화에 비해 국내 연구자나 일반인들에게 덜 낯설기 때문에 복잡한 신화 내용과 여러 명칭들을 접하면서 느낄 수 있을 독자들의 당혹감을 덜어준다..(중략) 인도-유럽어족의 공통 유산들을 추적하고, 이들이 다양한 문화속에서 어떻게 변화, 발전되어 나가는가를 비교하는 것이 뒤메질의 주요 관심사였기에 그리스 신화에 대한 그의 연구는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김현자, 위의 책, 8-9쪽)

뒤메질은 1986년 디디에 에리봉(Didier Eribon)과의 인터뷰에서 1938년 이후부터 자신은 그리스 신화 연구를 거의 하지 않았음을 인정하였다. 분명한 것은 프리드리히 막스 뮐러(1823~1900)로 대표되는 초기 비교신화학의 한계를 돌파하는데 초석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는 뒤메질의 3기능 이데올로기(l’idéologie trifonctionelle)는 인도 고대의 대서사시 《마하바라타》와 로마 신화를 두 개의 축으로 연구하는 과정에서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브루스 링컨은 “뮐러가 종교학의 창시자이지만 비교신화학 연구는 그의 무능력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으며 뒤메질 덕분에 종교학은 구제되었다”라고 말했는데, 그만큼 인도-유럽인들의 공통 관념인 3기능 이데올로기의 발견은 인도-유럽 신화 연구와 종교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아마도 뒤메질의 이론에 대한 평가는 인도 신화에 대한 검토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여기서 신화학의 상식으로 통하는 인도-유럽 신화를 되물어 보고자 한다. 인도는 지리적으로 동양에 있지만 인도신화를 동양신화라고 하지 않는 것을 인도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인도는 언어, 종족적으로 인도-유럽 계통에 속하여 인도신화는 그리스 신화, 게르만 신화 등 서구 신화와 동계(同系)라는 것을 인도학자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수긍하는가? 이러한 물음들은 매우 기본적인 것이지만 서구의 인도학자들이 아닌 인도내의 인도학 연구자들의 자료가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조심스런 물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심재관의 〈조르주 뒤메질의 기능적 삼분주의(functional tripartism)와 인도신화 연구〉에서는 인도-유럽 비교언어학에서 출발한 비교 신화학은 유럽의 관념적 혹은 인종적 범주 속에 인도를 귀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고, 유럽 문명의 영역을 남아시아까지 확장시킴으로써 인도학자들이나 산스크리트학자들이 유럽 문명과의 상관속에서 그들의 자료를 고찰해야 하는 과제를 남긴 셈이라고 보았다.

잘 알려진 대로 근대 신화학은 서구 상상계의 산물인 인도-유럽 종족의 단일한 기원 혹은 원형을 추구하려는 노력으로 인도의 고대 신화에서 원시적 관념 형태를 찾고자 하는데서 출발하였다. 링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서구 신화학은 인도-유럽 종족의 기원을 탐색하고 그것을 재구성하는데 열중해왔으며 이러한 경향이 근대의 민족 담론과 연동하면서 제국주의적 욕망과 긴밀한 상관관계를 맺었다.

“인도-유럽의 공통기어를 재구축한다는 것은 공통기어를 사용했던 사람들을 상상하는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의 집단을 상상하는 것이며 나아가 그들이 살았던 공간, 그들이 살았던 시대, 그들의 특징적인 성격 등을 상상하는 일이다...(중략) 그들은 타인의 신화를 해석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들 신화의 주위를 맴도는 순환의 소용돌이로 들어가는 것이며 심지어 그 타인이라는 존재마저도 그들 자신의 상상과 담론이 낳은 산물일 수 있다.”(B. 링컨, 《신화 이론화 하기》, 170-171쪽)

새삼 인간 상상력의 힘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할 만큼 그 영향력이 넓고 깊다는 것을 실감한다. 서구 제국주의를 모델로 삼았던 일본 제국주의를 통해 형성된 한국 신화학에서도 인도-유럽의 단일한 기원을 꿈꾸는 신화의 그림자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정현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의 형성과 전개> , <근대 단군 담론에서 신화 개념의 형성과 파생문제>,〈신화와 신이, 그리고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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