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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접성과 기호이데올로기, 그리고 다시 불복장

 

news letter No.696 2021/9/21




필자는 지난 뉴스레터 683호(“물질의 존재론과 성물의 의미”)에서 물질의 존재론을 탐색하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적 신앙대상인 성물의 의미 읽기를 시도하였다. 하지만 성물의 의미 읽기라는 화두만 제시했을 뿐 이렇다 할 논의를 진행하지는 못했다. 그런데 조현범 선생님은 693호(“불교 물질 또는 불복장의 세계”)에서 종교적 성물을 읽어내는 단서로 ‘유사성’과 ‘인접성’의 원리를 제시하였다. 이어서 민순의 선생님은 694호(“《법화경》과 영산제, 그리고 ‘인접성’과 ‘유사성’”)에서 불교 경전과 의례를 통해 인접성과 유사성의 원리를 적용하는 실질적 방편을 보여주었다. 두 편의 글을 보면서 필자는 종교적 물질, 다시 말해 성물의 의미를 읽어내기 위한 방식으로 이 두 원리 특히 ‘인접성’의 원리에 주목하게 되었다.


의례적 공간의 창조, 그 인접성의 원리

조너선 스미스는 《자리잡기》(방원일 옮김, 이학사, 2009)에서 새로운 의례적 공간의 창조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유사성과 인접성의 원리를 공간과 시간의 개념으로 풀어내고 있다. 의례는 성스러운 사건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그러한 사건을 지속적으로 현실에 소환함으로써 거룩함을 지속시킨다. 성스러운 사건은 그러한 사건이 벌어졌다고 여겨지는 장소를 방문해서 그 사건을 의례적으로 반복함으로써 경험된다. 이렇게 장소에 바탕을 둔 의례는 유사성의 원리에 의존한다. 그리고 이 의례는 장소에 고정된다. 장소로부터 멀어지거나 동일한 공간적 조건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 성스러움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따라서 새로운 의례적 공간을 만드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일상적 시간에 성스러운 사건을 배치하는 의례적 전략이 구사된다. 즉 보편적인 시간에 성스러운 날을 배치함으로써 시간을 특정한 신화적 시간으로 변경하는 전략이다. 이는 일반적인 시간에 신화적 이야기와 사건을 연속적으로 배치하는 인접성의 원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에 따라 공간에 매여 있던 의례는 고정된 장소를 벗어나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의례로 무한히 복제된다.


‘기호이데올로기(semiotic ideologies)’로 의미 읽기

인접성의 원리는 물질의 의미를 읽어내는 기호이데올로기에서도 나타난다. 기호이데올로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전제가 되는 ‘언어이데올로기(language ideology)’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언어이데올로기란 특정 공동체가 공유하는 언어적 관념이다. 언어이데올로기는 언어와 의미 사이를 매개하는 메타적 관념체계로서 말이나 문자 등을 나타내는 ‘언어’와 그 관념을 나타내는 ‘이데올로기’의 합성어이다. 이러한 언어이데올로기의 개념을 확장시킨 것이 기호이데올로기이다.

언어이데올로기는 의미체계를 언어로 한정하지만 기호이데올로기는 언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기호이데올로기가 나타내는 ‘기호’는 언어를 포함한 모든 사물 즉 물체와 인공물, 이미지, 몸짓, 말, 말하는 방식 등을 의미한다. 따라서 기호는 사물 혹은 물질적 대상 전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개념이다. 반면 이데올로기는 각각의 맥락에서 발생하는 대상에 대한 관념이다. 따라서 기호이데올로기는 사물과 의미를 매개하는 메타적 관념체계가 된다.

그렇다면 기호이데올로기는 인접성의 원리와 어떤 관련성을 가지는가? 이를 이해하기 위해 서는 퍼스(Charles Sanders Peirce)의 기호학적 원리를 파악할 필요가 있다. 퍼스의 기호학에서 물질성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은 ‘대상체’의 기호학적 원리인데 이는 ‘도상(icon)기호’, ‘지표(index)기호’, ‘상징(symbol)기호’의 삼원적 원리로 구성되어 있다. 도상기호는 유사성에 근거한 기호이다. 예를 들어 사람의 사진이나 초상화는 대상의 유사성을 바탕으로 재현되며 대상과 기호가 동일한 속성을 공유한다. 하지만 지표기호의 경우는 유사성보다는 인접성의 원리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지표기호에서 중요한 것은 기호가 지닌 특성보다는 그 기호가 접해있는 시·공간의 맥락이다. 지표기호에서 대상을 표현하는 기호의 의미는 그 대상이 인접해 있는 주변적 맥락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와 같은 지표기호 특성은 기호의 의미가 특정 공동체의 시·공간 관념체계를 통해 발생하는 기호이데올로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이를 통해 기호이데올로기는 특정 공동체의 시·공간 맥락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나는 물질의 관념체계가 된다. 그러므로 기호이데올로기로 매개되는 물질의 의미는 다양한 맥락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어 나타난다. 불교의 ‘불복장’ 의례도 이러한 기호이데올로기를 통해 그 의미를 읽어낼 수 있다.


인접성, 다시 ‘불복장(佛腹藏)’

불복장 의례는 불상을 새로 조성하거나 기존의 불상에 ‘개금(改金)’을 한 후에 행하는 의례이다. 불복장 의례가 드라마틱한 것은 이 의례를 통해 조각에 지나지 않던 불상이 비로소 성스러운 신앙대상으로 전환된다는 점이다. 어떻게 하나의 조각상에 지나지 않던 불상이 성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이는 인접성의 원리에 따른 ‘성별(聖別)’을 통해 가능해진다.

불복장 의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된 공간과 성화된 공간의 구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다양한 의례적 장치가 정교하게 ‘배치(assemblage)’되고 작동한다. 특히 의례가 시작되면서부터 의례적 공간을 구분 짓는 ‘결계(結界)’ 의례는 속된 공간에서 성스러운 공간을 구분하는 성별에 핵심적인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결계의 경우 완전한 5방위를 뜻하는 오색실에 다라니경을 붙여서 공간을 구별한다. 이러한 공간의 구분은 새로운 의례적 공간을 창조하는 인접성의 원리를 구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특정한 신화적 사건과 이야기를 일상적 공간에 근접시킴으로써 속된 공간을 성화된 공간으로 재배치하는 것이다.

이렇게 공간을 구분하는 것은 불상의 맥락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속되고 불완전한 공간으로부터 분리하여 완전하고 성스러운 맥락으로 재배치하는 것, 이를 통해 조각에 지나지 않는 불상이 부처의 생명력이 흐르는 완전한 성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는 불상이라는 기호가 의례적 맥락이라는 관념 및 상징체계에 인접함으로써 성물이라는 특정 의미로 재탄생하는 기호이데올로기의 작동이라고 할 수 있다.



 

 









 


도태수_
한국학중앙연구원
논문으로 <근대적 문자성과 개신교 담론의 형성>, <근대 소리 매체(라디오, 유성기)가 생산한 종교적 풍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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