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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93호-불교 물질 또는 불복장의 세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 8. 31. 17:11

불교 물질 또는 불복장의 세계

 

news letter No.693 2021/8/31

 




종교 물질이라는 주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는 2년 전 대학원 수업에서 읽었던 페터 브로인라인이라는 학자의 글이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한국종교 특히 한국 천주교 연구에 적용하면 어떤 글이 나올까 궁금했다. 아직 실제로 자료를 찾아서 읽고 분석하여 글로 만드는 일은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웨하스의 종교성에서 핵심을 이루는 성체라는 종교 물질을 한번 다루고 싶다.

지난 1학기에 두 개의 강의를 진행했다. 한 강의에서는 물질 종교에 관한 연구서를 가지고 강독하였고, 다른 강의에서는 수강생에게 물질 종교라는 주제 의식을 가지고 한국종교의 구체적인 현상을 선택하여 분석하도록 하였다. 좋은 연구서를 읽고 연구 방법을 배워서 그것을 한국종교 연구에 응용해 보자는 취지였다. 강독 교재로 선택한 책은 두 권이었다. 하나는 콜린 맥다넬의 『물질 기독교: 미국의 종교와 대중문화』였고, 다른 하나는 존 키슈닉의 『중국의 물질문화에 끼친 불교의 영향』이었다. 키슈닉의 저서는 연구년을 받아 작년 한 해 동안 우리 연구원에 와 있었던 동국대학교의 최연식 교수님이 소개해 주셨다.

최연식 교수님이나 나나 코로나 사태로 어디 갈 데도 없는 처지였고 또 책 읽고 공부하는 것이 제일 즐겁다고 여기는 부류여서 거의 매일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었고 식사 후에는 연구원 경내를 산책하면서 공부 이야기를 늘 화제로 삼았다. 아시아 불교사를 두루 꿰고 있는 최연식 교수님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 내가 물질 종교에 관해서 이야기하면, 불교 물질이라는 범주로 묶을 수 있는 현상들과 사료들을 소개해 주셨다. 무엇을 물어도 막힘이 없었다. 정말 문자향 서권기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분이었다. 그러다가 불복장에 관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정말 신기한 세계였다. 부처님의 몸속을 그렇게 정교한 관념으로 배치한다는 것도 재미있었고, 불상 안에 봉안하는 것만이 아니라 불화의 앞이나 뒤에도 주머니를 매달아 불복장 작법을 설행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다채로운 불교 물질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얼마 전에는 불복장 작법을 실제로 하시는 스님의 특강을 직접 들을 기회가 생겼다. 불교 미술사를 전공하시는 이용윤 교수님에게 불복장에 관하여 궁금한 것을 물어보았더니, 국가무형문화재 제139호로 지정된 불복장 작법의 계승자 경암 스님을 초청하여 특강을 개최한 것이다. 경암 스님의 특강은 8월 13일 오후에 있었고, 나는 종교학 전공 학생들과 함께 참석했다. 경암 스님은 파워포인트로 만든 자료를 보여주시면서 절에서 불상을 봉안할 때 어떤 절차로 거행하는지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가장 중요한 의식은 다섯 가지 곡식, 보석, 약물, 향, 풀 그리고 사리나 구슬 등을 차례로 넣어 후령통을 만드는 절차였다. 이렇게 만든 후령통은 불상의 안쪽 가슴 중앙 부분에 넣게 된다. 흔히 불상 안에서 발견되는 불경이나 발원문은 후령통을 고정하는 데 쓰인 내부 충전물이다. 불상을 불단에 안치하고 나면 오색실을 불상의 오른쪽 귀에 걸쳐서 앞으로 늘어뜨려 부처님 왼손 검지에 감고 다시 오른쪽 검지에 건 다음에 불당 앞에서 신도들이 잡은 오색실과 묶는다. 이렇게 하여 불상 봉안을 위한 준비가 끝나면 부처님 눈을 그리는 점안 의식을 행한다. 하지만 실제로 붓으로 눈을 그리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리는 동작만 행할 뿐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절차는 점안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거울로 햇빛을 반사하여 불상을 비추는 것이다. 후령통 제작에서 점안까지 불상 봉안 의식을 정해진 법식대로 하려면 며칠씩 걸린다고 한다.

이제부터는 그야말로 근거 없는 ‘나대로 의미론’을 풀어보자. 이용윤 교수님의 설명으로는 고려시대 불상을 열어보면 불상의 목 부분에 후령(喉鈴)이라는 방울이 있고, 가슴 부분에 팔엽통이라는 목합(木盒)이 있는데, 이 팔엽통 안에 다섯 가지 성물들이 들어 있다고 한다. 팔엽통의 모양을 보니 외부는 꽃잎 여덟 장으로 감싼 연밥과 비슷하다. 인체의 장기로 보면 심장에 해당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나무를 깎아서 만든 불상을 생생하게 살아 있는 부처님이 되게 하는 것은 바로 불상 안에 봉안한 팔엽통, 즉 부처님 마음이다. 그 팔엽통 안에는 온 세상에서 모은 다섯 가지 종류의 보배로운 것들이 담겨 있다. 따라서 시방세계가 모두 부처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셈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팔엽통은 연화장(蓮華藏)의 세계로서 한량없는 공덕과 광대한 장엄을 모두 갖춘 불국토를 품고 있다.

그런데 조선시대 불상에서는 불상의 가슴 부분에 안치하던 팔엽통이 사라지고, 뚜껑에 손잡이가 달려 있어 좀 더 길쭉한 호리병 모양의 후령통을 만들어 목 부분에 끼우게 되었다고 한다. 인체로 치면 심장에서 허파로의 변화일까? 후령통을 완성하고 노란 보자기로 감쌀 때 후령통의 뚜껑 손잡이로 빠져나온 가느다란 오색실이 인상적이었다. 이 오색실과 불상 바깥에 늘어뜨린 오색실이 연결되지는 않으나 신도들이 오색실을 붙들고 서서 불상 봉안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볼 때 후령통에서 빠져나온 오색실은 부처님의 사자후 같은 설법이 온 도량에 편만하게 퍼져 나가기를 염원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역시 나대로 의미론일 뿐이다.

불상을 봉안할 때 클라이맥스는 거울로 햇빛을 반사하여 불상을 비추는 의식이다. 경암 스님의 말씀으로는 티벳, 중국, 일본 등 다른 나라에 가도 불상을 봉안할 때 거울로 불상을 비추는 의식이 있더라고 한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티벳의 불상 봉안이었다. 이미 점안 의식을 거친 기존의 불상을 비추어서 그 상이 맺힌 적이 있는 거울로 새로 조성한 불상에 빛을 반사하는 식으로 의식을 거행하더라는 것이었다. 달은 하나지만 모든 강물에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 혹은 모든 중생과 사물이 제각각이어도 분별의 세계를 떠나면 고요한 바다에 고루 비친다는 해인삼매(海印三昧)를 연상하게도 한다.

하지만 나는 역시 나대로 의미론을 발동하여 다른 이야기를 꾸며 보고 싶다. 앞서 팔엽통이나 후령통이 불상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인체의 심장과 우주의 중심을 유비함으로써 생겨나는데, 이것을 유사성의 원리로 해석하면 어떨까 한다. 한편 이미 점안한 옛 불상을 비춘 거울로 아직 점안하지 않은 새 불상에 빛을 비춤으로써 불상을 불상답게 한다는 사유는 불상-거울-빛-불상의 연쇄적인 접촉에 토대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인접성의 원리가 작동한다고 볼 수 있다.

잠정적인 결론은 이렇다. 종교 물질의 의미 작용을 해석하는 방법의 하나로 유사성과 인접성이라는 두 가지 원리는 꽤 유용하다. 불복장만이 아니라 루르드 성모 동굴, 미국 기독교인들이 대대로 전승하는 패밀리 바이블, 에도시대 가쿠레 기리시탄의 관음보살 성모상, 조선 천주교 신자 윤봉문이 가지고 있던 소학 표지의 천주교 교리서 등을 유사성과 인접성의 원리로 해석하면 꽤 그럴듯한 설명이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 프레이저를 다시 읽을 필요가 있다. 이미 로만 야콥슨은 문학적 은유와 환유에서, 프로이트와 라캉은 꿈의 치환과 응축에서 프레이저를 써먹지 않았던가? 그러니 우리도 유사성과 인접성의 원리를 종교 물질의 의미론을 해석하는 방법으로 재활용하면 어떨까?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올해 나온 글로는 <박해시대 조선대목구의 사제 양성과 신학교 설립>이 있고, <한글본 성교요리문답의 한문 저본 연구>를 얼마 전에 탈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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