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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31호-우리동네 사찰산책 같이 하실래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5. 31. 17:45

우리동네 사찰산책 같이 하실래요?

 

news letter No.731 2022/5/31

 



여러분들이 사시는 동네에는 절[寺]이 몇 곳 정도 있나요? 동네를 주민센터 단위로 상정하면 얼추 손꼽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군/구 단위로 넓히면 얼른 답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실 자신이 사는 동네의 절이나 정사(精舍), 포교원 등 불교의 수행도량에 관심을 두고 사는 이는 드물 것입니다. 오늘은 제가 주로 머무는 동네인 성북구의 사찰 답사기를 좀 풀어내 볼까 합니다.

저는 요즘 불교 공부를 좀 해보겠다고 성북구에 작은 공부방을 꾸미고 삽니다. 여기서 동학들과 정기적으로 독서모임도 하고, 서로의 논문쓰기를 독려하며 지냅니다. 짧은 소회를 말씀드리면, 막상 불교에 발을 들이는 순간 낭만적 선택은 현실이 되었고, 불교지식에 대한 ‘알권리’는 ‘알아야 할 의무’ 같은 것들로 무겁게만 다가왔습니다. 이 무거움을 제가 배운 인류학적 방편으로 가끔씩 덜어내 보고자 성북구 사찰산책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나름의 ‘불교하기’의 시작이었던 셈이지요.

올해 초 성북구청에서는 관내에 등록된 사찰이 112곳이라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홀짝홀짝 차 한 잔 얻어먹다 차 맛에 빠지듯, 사브작 사브작 동네 절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혜초스님의 “왕오천축국” 가는 험로도 아니고, 엔닌(圓仁)스님의 “입당구법순례행”과 같은 구도의 길도 아니지만요. 이 산책길에 나만의 원칙을 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면서 은근히 이 ‘불교하기’를 통해 도심사찰 속 현실불교문화에 대한 탐색과 사유도 해 볼 요량이었습니다.

첫 방문지는 6호선 보문역에서 가까운 보문사입니다. 세계에서 유일한 비구니 종단(대한불교보문종)으로 바로 옆에 붙어있는 미타사(조계종단)와 함께 조선후기 ‘탑골승방’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보문사는 1960년대 보당암 은영스님의 30년 불사가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모양새입니다. 석굴암의 모습을 서울도심에서 즐길 수 있는 사찰이더군요. 그러고보니 성북구는 아니지만, 여기서 바로 고개 너머에 정업원터가 있어 다녀옵니다.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가 출궁 후 평생을 살았던 곳이라고 하네요. 같은 영역에 있는 청룡사 대웅전에서 강원도 영월 쪽을 바라보았으나[東望], 아파트 숲과 도심의 매연이 그날따라 이 남정네의 시야도 가립니다.

또 다른 날입니다. 이번엔 성북동 골짜기로 들어가 봅니다. 이 골에서 가장 유명한 사찰은 아마도 길상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팔정사를 가보고자 나선 길입니다. 가는 중간에 ‘무료의탁 노인 상담’이라고 간판을 내건 실상선원을 들어가 구경하니 재미있는 스토리에 시간가는 줄 모릅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오늘은 성북천 발원지 못 미쳐 있는 팔정사까지는 못 갈 듯 합니다. 아쉬운 마음에 한 곳을 더 들릅니다. 성북 우정의 공원 근처에 유난히 높이 솟아 보이는 절이 있네요. 수월암(水月庵)입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입구에는 절에서 운영하는 ‘꾸띠’라는 커피숍이 있어 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십니다. 이곳 문향재(聞香齋)에서는 사찰음식 교육도 하나 봅니다. 음식이라고 하니 괜시리 옛 벗을 만난 듯 반갑습니다. 수월암은 대웅전과 미륵보전 그리고 지장전이 주요 전각이고 마당에 연화 보탑이 우뚝합니다. 산신각과 칠성각 그리고 독성각은 대웅전 내 한켠에 탱화로 모셔져 있는 것이 특징 같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목불 지장보살’을 모신 미륵보전으로 가는 길에 마침 회주스님을 만납니다. 노스님은 저를 불러 1시간가량 여러 경험과 지혜 섞인 법문을 들려줍니다. 그중에는 성북동 일대 명당과 혈맥 등 지세, 풍수 이야기도 줍니다. 성북동 명당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시길요. 노스님은 성북동 골짜기는 큰 골은 아니지만, 여산신이 사는 곳이라 어머니의 품처럼 안온하여 한 번 들어온 사람들은 외지에 나갔어도 반드시 다시 돌아오게 되는 동네라고 확신하는 듯 싶습니다. 일어서려는 제게 ‘고향이 강원도 어딘가요?’ 하고 물으시길래, 내 말투를 알고 계신가보다 하여 고향을 말씀드리면서 스님의 탯자리를 여쭈우니 빙그레 웃으실 뿐 말씀이 없습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主 而生其心)’의 가르침을 배웁니다.

여기서 잠깐만요. 위에서 거론된 여러 사찰의 공통점이 있는데요, 혹시 감이 오시는지요? 힌트를 드리면 보현사, 청룡암,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와 이웃하는 칠보사 그리고 팔정사와 흥천사의 일부 전각도 이 범주에 포함됩니다. 그것은 바로 비구니 사찰이나 선원이라는 점입니다(실상선원, 길상사 제외).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겠지만, 이 동네에는 비구니 사찰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보다 저는 오히려 이 사찰들이 어떻게 운영되고 경제력은 어디서 나오는지가 더 궁금해질 때도 있습니다. 아마 이 문제의식은 본격적인 연구를 거쳐야만 할 듯하여 절의 스님들께는 여쭙지 않기로 합니다. 그래도 여전히 왜 명부전이나 산신각 혹은 삼성각 등을 잠궈 둔 비구니 사찰이 많은지도 궁금합니다. 그런 곳에서는 조석예불도 행해지지 않아 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도심사찰 특히 비구니 사찰이 어려운 현실에서도 수행정진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마음이 더욱 돋보인다는 생각도 겹쳐 일어납니다.

이렇게 우리동네 사찰산책은 스스로 풀기 어려운 의문도 생기지만, 스님들의 풍요로운 무연자비행의 미소를 담아오는 길로 가득합니다. 이는 스님들의 육화경(六和敬)의 모습, 즉 화합과 공유를 통해 쉼없이 도심 속 우리 이웃들의 평화를 기도하는 실천행에서 비롯되는 것일 겁니다(차차석, 『불교와 사회윤리』, 운주사, 2022). 이분들은 사찰의 규모나 위치에 아랑곳하지 않고 수행정진의 원력으로 21세기 우리들의 공유사회, 공공불교를 키워 가는 모습 그 자체가 아닐까요? 그들은 오늘날 우리 곁에 살아있는 원효(元曉)이자 의상(義湘)이요, 자장(慈藏)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화엄경』「여래출현품」의 비유를 빌리면, ‘어둠 속에 보물이 있어도 등불이 없으면 볼 수가 없다.’라고 하였던가요. 저는 이 산책을 통해 불교하기란 곧 내 마음의 등불 하나를 밝히는 일임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시대의 종교하기가 우리동네의 보석같은 존재론적 실상을 외면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심일종_
서울대 /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강사
「유교제례의 구조와 조상관념의 의미재현: 제수와 진설의 지역적 비교를 중심으로」로 서울대학교 인류학과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저서로 《신과 인간이 만나는 곳, 산》(공저), 《유교와 종교의 메타모포시스》(공저) 등이 있고, 논문으로 〈코로나19시대 민속종교의 반응과 대응〉, 〈조상, 신령 그리고 신을 위한 기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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