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암록(碧巖錄)』 서평 news letter No.794 2023/9/5 1. 만약 무인도에 한 권의 책을 가져간다면? 만약 무인도에 가져갈 한 권의 책을 고른다면 『벽암록』을 들 수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벽암록』은 그 목적상 책이 아닌 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에서 옛날 김대중 대통령의 시민들과의 대화에서 어느 한 시민이 무인도에 가져갈 책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을 던진 장면을 보았다. 그때 김대중 대통령은 국정 운영과 관련된 책을 가져갈 것이라는 대답을 하여 국정에 대한 책임감으로 여념이 없는 이미지로 호응을 얻었다. 어쩌면 『벽암록』이 책이 아닌 책이라는 점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오히려 올바른 선답(禪答)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벽암록』처럼 간화선(看話禪..
학교와 종교, 그리고 세속주의 news letter No.793 2023/8/29 2022년 6월 27일 미국 연방대법원은 공립고등학교의 미식축구 코치가 경기 후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워싱턴주에 위치한 브레머튼 고등학교의 코치 조 케네디는 게임이 끝나면 운동장에서 항상 혼자 기도하였다. 이러한 행위는 학생들에게 기도에 동참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을 줄 수 있다고 여긴 학부모들이 불만을 제기했고 교육 당국은 코치 업무를 수행하는 중에는 기도를 중단하라고 요청했다. 코치가 이에 응하지 않자 정직 처분이 내려졌고 코치는 이에 항의하여 소송을 제기하였다. 하급심과 달리 연방대법원은 코치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사건은 단지 미국의 한 고등학교에서 일어난 문제가 아니라 학교와..
우리에게 ‘새로운 자명함’이란 무엇일까? news letter No.792 2023/8/22 최근 잘 알지 못하는 분야를 듬성듬성 공부하여 글을 써야 했던 일이 있었는데, 그 분야의 전공자에게는 상식적인 것조차 나에겐 완전히 낯선 내용이 많으리라는 불안감 때문에 관련 연구서나 논문들을 계속 검색하고 구하여 쌓아놓고도 결국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는 못하는 미련함과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되었다. 그로부터의 구원은 항상 그렇듯이 제출 마감일로부터 왔는데, 그 억지스러운 구원 이후의 잔해물(?)을 정리하면서 들춰봤던 『근대일본의 대학과 종교』라는 책에 대한 생각을 ‘작정하고 두서없이’ 늘어놓으려 한다.1) 3인의 편자 중 대표인 에지마 나오토시(江島尙俊)의 서문을 읽고 흥미가 생겨서 찾아보니 그는 학부에서 기계항공..
믿음의 플라세보 효과 news letter No.791 2023/8/15 아마도 고등학교 1학년 말 어느 겨울밤이었을 것이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어둔 채 기도에 열중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개신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방언’을 할 수 있었다. 이상한 말이었고 내 스스로 이해할 수도 없는 언어였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에 따라 방언이 나름의 패턴을 보인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아무튼 그날의 기도는 나에게 찾아온 심한 감기몸살을 물리치기 위한 일종의 치병기도였다. 여느 때 같았으면 약국에서 약을 사먹거나 병원에 갔을텐데, 그때가 마침 부흥회 기간이었는지, 이번 만큼은 왠지 기도로 병마를 물리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찬바람이 들이치는 창문을 열어둔 것도 기왕 기도로 물리치는 마당에 ‘다 덤벼!’하는 심정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