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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한국 "근대종교"의 탄생>

 

제 1발표

 

목: 종교를 묻는 까닭과 그 질문의 역사: 그들의 물음은 우리에게 어떤 문제를 던지는가?

 

발표자: 장석만(종교문화비평학회)

 

논평자: 이창익(원광대마음인문학연구소)

 

 

제 2발표

 

제 목: 한국 기독교 만들기와 정체성: 기독교 지형 내부를 중심으로

 

발표자: 이진구(호남신학대학교)

 

 

논평자: 방원일(서울대학교)

 

 

제 3발표

 

 

 

제 목: 근대 유교계의 지각 변동:‘대동교 만들기를 중심으로

 

발표자: 김순석(한국국학진흥원)

 

논평자: 이연승(서울대학교)

 

제 4발표

 

제 목: 세계종교 범주의 창안과 한국 근대'불교'의 발견

 

발표자: 송헌주(순청향대학교)

 

논평자: 이민용(한국불교연구원)

 

제 5발표

 

제 목: 신종교의 근대 수용과 저항: 개벽사상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발표자: 윤승용(한국종교문화연구소)

 

논평자: 박규태(한양대학교)

 

 

<발표문 요지>

 

1. “교”(敎)에서 “종교”(宗敎)로의 변화: 그 문제 틀의 시작과 전환 과정

발표 : 장석만 (한국종교문화연구소)

현재 우리에게“宗敎”라는 용어는 뺄 수 없는 일상어일 뿐만 아니라, 중요한 학술 개념이다. 우리는 아득한 구석기시대 혹은 네안데르탈인 시대까지 거슬러 종교를 논하더라도 당연하게 생각하며,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종교라는 개념이 지배적으로 되기 이전에 존재하던 “敎”와 “宗敎”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도 우리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단지 현재에 통용되는 “宗敎”의 관점에서 그 이전의 상황을 해석하면서 “敎”와 “宗敎”의 두 가지개

념에 다른 점이 없다고 간주하게 된다. “敎”가 “가르침”이라면, “宗敎”는 “으뜸이 되는 가르침” 혹은 “핵

심적인 가르침” 정도로 이해하고, 동일하게 여겨버린 것이다. 하지만 “敎”와 “宗敎”의 개념은 매우 다른 의미론

적, 역사적 맥락을 가지고 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런 변화를 기본적 문제 틀이 바뀐 것으로 이해하고, 그 변화가 어떻게 시작되고 어떤 전환의 과정을 거쳤는지 추적한다. 논문의 구성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첫째, 이런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학술적 맥락을 소개한다. 왜 이런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되었으며, 논의된 내용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약 50여 년 동안 이루어진 연구 업적을 유형별로 나누어 검토한다. 둘째, 전통적 “敎”의 의미망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핀다. 또한 유불도 혹은 유불선의 삼교(三敎)에 관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논의하고, 이런 것과“종교”의 틀이 어떻게 차이를 보이는지 분석한다. 셋째, “종교”의 틀이 비슷한 시기에 등장하여 정착해 나가는 과정을 일본, 중국과 비교하며 설명한다. 이 논문은 새롭게 등장한 “종교”의 문제 틀이 어떻게 우리의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과정과 의미를 살피고 있다.

 

2. 한국 기독교 만들기와 정체성: 기독교 지형 내부를 중심으로

발표:이진구 (호남신학대학교)

천주교와 개신교로 대변되는 한국 기독교는 현대 한국사회의 종교지형에서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개신교는 개항 이후 ‘근대종교’의 모델로 부상하면서 한국적 종교지형의 구축에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따라서 한국 근현대 종교지형의 특성을 해명하기 위해서는 ‘기독교 만들기’와 그 과정에 내재한 ‘정체성의 형성’ 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의 정체성 형성은 타자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여기에는 세 층위가 작동한다. 기독교 내부의 타자(기독교의 각 교파), 종교 영역의 타자(타종교), 세속 이데올로기 영역의 타자(과학과 사회주의)가 그것이다.

이 글은 그중에서 첫 번째 즉 기독교지형 내부에 초점을 두고 정체성 형성과정을 분석한다. 이 작업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진행된다. 첫째는 천주교와 개신교의 관계이다. 오늘날 천주교와 개신교 사이에 존재하는 ‘불편한 관계’가 어떠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는가를 ‘신앙대상’(하느님과 하나님) 및 ‘교파의 명칭’(천주교와 개신교) 형성 과정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다. 둘째는 개신교 내부에 존재하는 다양한 교파 사이의 관계이다. 서구 기독교의 역사적 산물인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공회, 구세군 등 여러 교파 사이의 차이 즉 개신교 내부의 다양성이 한국이라는 콘텍스트에서는 어떠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게 되는가를 단일교회의 추진 및 좌절 과정을 중심으로 분석한다. 셋째는 선교사와 한국인의 관계이다. 신앙 주체의 민족적/인종적 차이가 기독교 정체성 형성에 어떻게 투영되었는가를 ‘자유교회’ 및 ‘자치교회’ 등의 이름으로 등장한 ‘반선교사 운동’에 초점을 두고 분석한다. 즉 선교사의 헤게모니에 도전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몸짓과 그에 대한 선교사의 대응 과정을 중심으로 한국 기독교 만들기의 한 단면을 파악한다.

 

3. 근대 유교계의 지각 변동: ‘대동교 만들기’를 중심으로

발표:김순석 (한국국학진흥원)

이 연구는 대동교 설립운동을 중심으로 한국 근대사회의 형성과정에서 유교의 정체성이 새롭게 구축되는 과정을 분석한다. ‘대동교 만들기’는 서구 근대성의 형성 특히 근대적 종교 개념의 출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대동교 설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인사들은 부국강병한 근대국가의 형성을 당면과제로 설정했고 서구문명의 힘을 ‘종교’ 특히 기독교에서 찾았다. 그렇지만 이들은 기독교의 수용이 아닌 다른 방식을 모색했고 그러한 고민 과정의 산물이 새로운 종교 만들기이자 새로운 유교 만들기인 대동교 만들기로 나타났던 것이다.

그들이 유교에 주목한 이유는 민족국가의 통합력 제고에 그 어떤 것보다도 유교가 효과적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유교가 지닌 사상적 차원의 구심점에 주목한 것이다. 이들이 볼 때 유교는 조선사회를 지배해왔으며 민중의 생활과 떨어질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유교의 가르침은 모든 종교를 포괄할 수 있을 정도로 넓고 깊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부분을 규율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고민 과정을 통해 새롭게 출현한 대동교는 조선시대의 유교와는 개념적 차원이나 사회적 차원에서 전혀 다른 성격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연구는 대동교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의 유교 만들기 및 그와 관련된 유교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 과정을 추적 한다.

 

4. 세계종교 범주의 창안과 한국 근대불교의 형성

발표 송현주 (순천향대학교)

본 연구는 근대 서구유럽을 중심으로 형성된 세계종교(World Religions) 범주의 창안과 불교에 대한 이해가 한국 근대불교의 형성과정에 미친 영향과 그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불교는 제국주의 시대 유럽에서 세계종교의 개념을 형성할 때 핵심적이었다. 근대 유럽에서 불교는 크게 선과 악의 두 가지 이미지로 구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세계종교 가운데 매우 특별한 근대적 종교(modern religion) 인식되었다. 그것은 미신과 의례적 행위로부터 자유로우며, 고대의 문헌에 바탕을 둔 교리와 철저한 윤리를 지닌 이상적 종교로서 인식되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허무적이고 염세적인 내세관을 지닌 '적멸의 종교'로 인식되어 공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근대 한국에서 불교가 근대적 범주로 재형성, 재편성되는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이와 같이 먼저 서구유럽에서 형성된 불교의 근대적 인식내용을 이해할 것이 요구된다. 한국불교는 식민지 시대 일본을 통해 서구유럽의 종교개념과 불교개념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 연구는 근대 유럽에서 세계종교의 개념 형성과정과 더불어 시작한 불교에 대한 재발견 혹은 근대적 불교 범주의 발명의 과정을 살펴보고, 그것이 한국불교의 근대적 재탄생 과정에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5. 신종교의 근대 수용과 저항 -개벽사상의 전개과정을 중심으로-

발표:윤승용 (한국종교문화연구소)

근대사회 형성기에 창립된 한국 신종교(민족종교)들에서 아주 독특하면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구원논리가 개벽사상이다. 여기에는 우주론적 시간관으로서 선천의 종말과 후천의 새로운 이상향이 공존하고 있다. 이 글은 이런 신종교의 개벽사상이 어떤 모습으로 형성되었고, 이후 한국사회 문명화와 식민지화 과정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신종교는 근대종교로서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해갔으며, 또 그것에 어떻게 저항했는가를 밝혀보려고 하였다.

한국 신종교는 개벽사상을 통해 근대적인 사회변혁을 지향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민중 신앙을 기반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그 속에는 서구 근대성과는 전혀 다른 성향, 즉 성속융합, 영육쌍전, 정교일치, 정신과 물질의 조화 등의 성향을 담고 있다. 따라서 개벽사상의 전개는 전통과 근대가 서로 타협과 충돌을 일으키며 진행된다. 근대를 수용하기도 하고(문명화), 그에 저항하기도 하면서(반식민주의화) 시기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서구열강의 각축에서 식민지적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근대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문명화와 더불어 그에 저항하는 민족주의적 성향이 점차 분명하게 드러낸다. 서세동점기에 등장한 동학의 다시개벽과 정역의 일월개벽에서부터, 동학혁명의 실패 이후에 등장한 증산교의 천지공사, 러일전쟁 전후에 등장한 천도교의 문명개벽과 대종교의 개천개벽, 3.1운동 이후 등장한 이돈화의 사회개벽과 원불교의 정신개벽으로 계속 이어진다.

각 시기마다 변화해온 개벽사상은 과거와의 단절과 새로움에 대한 의식이라는 면에서는 근대 문명화의 구조와 서로 상응하지만 각자 사고의 지평이 달라 이른바 서구적 근대종교와는 서로 다른 근대화의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근대사회가 인정을 하는 문명화된 근대종교로 가든지 아니면 더욱 종교적이 되는 이른바 신비종교로 가든지를 선택해야만 했다. 전자가 소위 근대가 만든 미신 극복과 정교 분리를 지향하는 종교화의 길이라면, 후자는 근대적이지만 세속과는 멀어진 종교화의 길이다. 그러나 많은 신종교(민족종교)들은 민족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었기 때문에 이 두 가지 근대종교의 길에만 머무를 수 없었다. 식민지적 근대화가 진행될수록 정치에 개입을 강열하게 하게 된 신종교들은 점차 근대적 개념의 종교 영역에서 배제되고 만다. 이후 신종교들은 일제가 인정하는 불교, 기독교, 신도에 기생하거나 근대 종교개념에서 파생된 미신이나 유사종교로 취급받아 해체당해 지하로 잠복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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