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문 요지>
1. 한국의 중국신화 연구 동향: 2000년 이후를 중심으로
발표: 임현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 논문은 최근 한국에서 이루어진 중국신화 연구 동향을 검토한다. 2000년대 이후 중국신화 연구 경향은 대체로 세 가지 흐름을 보여준다. 첫째 중국에서 이루어진 중국신화 연구 성과를 비판적으로 조망하는 경향이다. 둘째, 중국 소수민족 신화에 대한 관심이다. 셋째, 여성학적 관점에서 중국신화를 이해하려는 경향이다. 이 논문에서는 세 가지 흐름 가운데 첫 번째 경향에 집중한다. 이 흐름은 중국의 신화학계가 그동안 서구 오리엔탈리즘과 전통적 중화주의에 오염된 상황에서 중국신화를 왜곡시켰다고 비판한다. 이 흐름이 지닌 중요한 특징은 오리엔탈리즘과 중화주의를 넘어선 제3의 시각에서 중국신화학을 전개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법론적 차원에서 제3의 시각이 정립되었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연구자에 따라서 편차가 보일 뿐만 아니라 검증되어야 할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제3의 신화학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몇 가지 보완 사항을 제언할 예정이다.
2. 신화와 전통: 한국 무속의 맥락에서
발표: 구형찬 (서울대학교)
본 논문은 ‘신화의 창조’와 ‘전통의 발명’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묻는다. 한국 무속은 이러한 물음을 전개하기 위한 하나의 맥락을 제공한다.
무속에 대한 연구는 무속의 신화들을 발굴하여 수집하는 데에, 그리고 무속을 현존하는 하나의 종교 전통으로 인식하게 하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해왔다. 연구자들은 무속이 고대로부터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전승되어 온 오랜 전통인 것처럼 논의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오늘날 관찰되는 한국 무속은 오히려 보다 근래에 구성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하나의 신화가 특정 종교 전통에 속한 것으로 전제하는 것은 오류일 가능성이 크다. 종교 전통은 오히려 이미 존재하는 신화들을 선택적으로 전유하고 변형시키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새로운 종교 전통의 등장은 종종 동일한 신화를 공유하는 다른 종교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읽혀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속의 전통으로 스며든 신화들을 만날 뿐만 아니라 무속의 신화로 남지 못한 이야기들의 흔적들도 만난다. 한국 무속이 전승하고 있는 신화와 전통이 어떠한 배제와 통합의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인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다.
‘전통들’은 통상 무척 오래된 것으로 간주되지만 실상은 꽤 근래의 것이거나 종종 최근에 발명된 것인 경우가 많다. 전통은 낡은 재료들을 활용하고 새로운 언어와 고안물들을 만들어내며 오래된 어휘의 한계를 확장함으로써 존속한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주목할 것은 전통이 지속성과 연속성에 대한 주장과 함께 ‘발명’된다는 사실이다.
신화는 이야기 자체일 뿐만 아니라 신화에 대한 이야기들과 더불어 존속한다. 따라서 신화 해석과 주석이 발견하는 신화의 의미론적 모호성은 신화적 사유의 상징성과 별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신화의 내러티브를 발굴하고 연구하는 신화학은 동시에 ‘신화 만들기’이기도 하다. 흥미로운 것은 그러한 ‘신화 만들기’가 어떻게 자신의 역사를 초월하는 시간을 지시하면서 신화 자체가 되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신화에 의해 지지되는 전통’과 ‘전통에 의해 지지되는 신화’에 대해 물음을 던지게 되는 자리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한 물음은 문화적 표상의 체계에 대한 논의와 기억체계에 대한 논의를 포함함으로써 신화와 전통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한 또 하나의 관점을 열어줄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연구는 ‘무속신화’에 대한 연구가 어떻게 무속을 한민족의 오랜 전통이자 하나의 현대적인 종교 전통으로서 존재하게 해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비판적인 인식론적 기반을 마련해 줄 것이다.
3. 신화로 그리는 마음의 지도
발표: 이창익 (원광대 마음인문학연구소)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신화학을 마치 한 편의 오페라와도 같이 음악 작품의 형식으로 구조화하고 있다. 신화학 연작의 제1권인 《날것과 익힌 것》의 맨 앞에서 우리는 이 책이 “기억의 어머니이자 꿈의 공급자”인 “음악에게” 헌정되고 있다는 기묘한 사실을 만나게 된다. 도대체 그는 왜 음악에게 이 책을 바치고 있는가? 이 책의 목차는 서곡( prelude), 변주곡(variation), 서창(recitative), 소나타(sonata), 교향곡(symphony), 푸가(fugue), 칸타타(cantata), 독창곡(solo), 캐논(canon), 토카타(toccata), 합창곡(chorus) 같은 음악 용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때 우리는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이전에는 신화와 언어의 비교를 통해서 신화 해석을 전개하던 레비스트로스가 왜 이제 신화학 연작에서는 신화를 음악의 형식으로 재서술하고자 하는 것일까?
먼저 우리는 신화와 음악의 생리학적 기능의 유사성에 주목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를 통해서 인간들이 어떻게 사유하는가?’의 문제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이 미처 깨닫기도 전에 ‘신화들이 인간의 마음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므로 레비스트로스 신화학의 주인공은 ‘생각하는 주체’가 아니라 ‘생각하는 신화’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신화들 안에서 사유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를, 신화가 어떻게 신화 자체를 성찰하는지를, 나아가 신화들 사이의 관계를 성찰하는지를 보여주고자 한다. 그러므로 그는 ‘신화들 내부에 존재하는 고유한 무언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 구성물인 신화들 전체에 공통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가능한 최선의 코드’를 찾아내고자 한다.(Claude Lvi-Strauss, The Raw and the Cooked: Mythologiques, vol. 1, trans. John & Doreen Weightman,Chicago: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3/1964, p. 12.) 이러한 코드는 신화학자가 발명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외부로부터 부과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단지 신화체계 안에 현존해 있는 것이다. 신화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굴절시키고 분기시키는 자연적인 경향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그의 목적은 신화들 상호간의 번역 가능성을 보증하는 코드를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화적 코드는 언어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또 다른 언어’이다. 우리는 이러한 또 다른 언어를 ‘무의식의 언어’ 혹은 ‘마음의 언어’라고 지칭할 수 있다. 신화적 사유는 사물에 대응하는 상동적인 이미지를 형성하고자 하는 경향성을 지니고 있지만, 결코 사물과 뒤섞여 동화될 수는 없다. 사유와 사물은 서로 다른 차원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레비스트로스는 자신의 책이 “신화적 사유의 자연스러운 운동을 모방할 것을 추구함”으로써 결국 “신화적 사유의 요구사항에 따르고 그러한 사유의 리듬을 존중해야만 했다.”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그는 신화와 신화학의 경계선에 대한 고민이나 염려를 전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신화학 연작이 텍스트 뒤에서 혹은 텍스트 너머에서 통일체를 구성함으로써 독자의 마음 안에서 ‘하나의 신화’로서 자리잡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글의 끝에서 레비스트로스가 급기야 ‘신화체계로서의 마음’을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학이 갖는 본질적인 특징, 즉 물질의 리듬과 마음의 리듬이 합치하는 지점에서 신화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그의 논제는 국내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다. 주로 지금까지 국내에서는 구조주의와의 관계 속에서만 레비스트로스가 언급되는 경향이 많다. 따라서 레비스트로스가 신화를 통해 그려내는 심리학적 지도에 대한 이 글의 연구는 기존의 논의와는 조금 다른 접근법을 취할 것이다.
4. 1920-30년대 한국사회의 '신화'개념 형성 및 전개
발표: 하정현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 글은 우리사회에서 신화라는 말에 대해 언제부터 사유하게 되어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을까라는 소박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주지하다시피 신화라는 말이 일본을 통해 한·중·일을 비롯한 동아시아에 유입되었지만, 한국의 경우는 일제하에서 조선의 상고사 실증과 얽혀 한일 역사학자들간의 논쟁과정에서 신화라는 개념이 태동되었다. 이 시기에 신화 담론이 역사학자들에 의해 시작되면서 역사를 기준으로 신화라는 말을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문제가 신화 개념의 형성과 직결되었다.
실례로 신화를 역사의 출발점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가 하면 신화는 역사의 산물로서 가공된 이야기라는 입장이 맞서게 되었다. 이렇듯 역사를 기준으로 신화 개념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하나의 전승을 두고 ‘신화냐, 역사냐’라는 물음은 그 질문 자체에 논란이 내포되어 있는 셈이다.
단적인 예로 단군 전승의 경우, 그것이 ‘신화냐, 역사냐’라는 물음을 던지는 것에 앞서 왜 그런 물음이 가능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우선 살펴봐야 한다. 단군이야기는 오랜 전승이지만 그것을 단군신화라고 보편적으로 사용하게 된 역사적 맥락이 있다. 20세기초 신화라는 새로운 용어가 수용되면서 우리사회에서도 신화개념에 대한 사유가 시작되었고 그 개념화의 방식에 따라 기존의 전승들 중에서 어떤 이야기들은 ‘신화’라고 범주화된 것이다. 특히 일본을 통해 전파된 서구의 신화학 이론과 일본에서 재구축된 신화개념의 영향으로 신화 개념이 태동되었다는 점은 한국 신화 개념의 특징과 관련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일제하의 일본 사학자들, 육당계열의 민족사학자들, 유물론자들 그리고 신민족주의지들의 신화 담론을 분석학고, 아울러 1920-30년대 주요 일간지를 통해서 신화의 용례를 검토함으로써 이 시기의 신화 개념의 형성 및 전개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이러한 한국 신화 개념의 형성과정 및 특징은 오늘날 한국 신화 연구의 토대를 분석적으로 파악할 수 있으며 아울러 단군신화와 관련된 쟁점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에도 일조할 것으로 기대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신화는 초역사적이고 진실된 이야기이므로 원형을 담고 있는 이야기라는 견해와 한편에선 신화는 역사적 사실을 교묘하게 은폐하는 이데올로기나 허위의식으로 간주하고, 신화제작자들의 의도를 간파하여 비신화화가 필요하다는 견해가 공존하고 있다. 이렇듯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신화 개념이 어우러져 있는 상황에서 반드시 짚어져야 할 것은 신화 개념은 본래적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며, 특정한 역사적 맥락에서 형성되어 변화하는 것으로, 그 개념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담론이 생산되어 기존의 전승자료가 규정되면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되고 있다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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