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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595호-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악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19. 10. 8. 18:33

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악기


news  letter No.595 2019/10/8 

 

 

 

 


‘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인간 목소리’라는 얘기는 많이들 들어보았을 것 같다. 여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고 싶진 않다. 분명 인간의 목소리는 너무나 위대하다. 하지만 이 진술에 대해 이렇게 질문을 해보고 싶다. “목소리가 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 According to whom?” 다시 말해, ‘신이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인간 목소리’라는 최상급 표현이 포함된 이 진술은, 신에게서 나왔다기보다는, 악기연주에 비해 목소리를 이용한 노래에 더 익숙한 사람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은 사회로부터 나왔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물론 음악과 관련된 많은 생각들이 그렇듯, 이러한 진술도 옳고 그름의 잣대로 평가하라고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오히려 대중적으로 많이 공유되고 있는 인식과 함께,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 소수의 시각도 고려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차원에서 나의 생각을 나누어보고자 한다.


마샬 맥루한이라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캐나다의 미디어학자는 미디어/매체를 ‘인간의 확장’으로 보았다.1)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전화기는 소리를 내고 들으며 대화를 하고자 하는 인간의 확장, TV는 보고 듣고 경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복합적 속성의 확장이다. 이러한 ‘인간의 확장’으로서의 매체는 단순히 인간에 의해 이용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인간을 –개개인은 물론이거니와 사회를– 형성하고, 움직이며 변화시키기도 한다. 그 정도로 특정 매체에 담긴 ‘내용’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매체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표현에 압축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2)

이러한 관점으로 바라보았을 때, ‘악기’는 인간의 어떤 부분/속성의 확장으로 볼 수 있을까? 노래를 부르고 휘파람을 부르며, 손뼉을 치고 몸을 이용해 리듬을 느끼며 춤을 추는 음악적 인간의 확장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악기는 ‘아무리 좋은 소리를 내려고 해도 결코 인간의 목소리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반대로 더욱 날개를 활짝 펼치고 멀리, 높이 날고자 하는 인간의 음악적 욕망과 환상을 실현케 해주는 매체가 바로 ‘악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오히려 그러한 악기의 소리와 울림이 인간으로 하여금 목소리로 멜로디를 흥얼거리고, 박자에 몸을 맞춰 흔들게 하고 있지 않은가?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악기연주가 배제된 채 목소리만으로 하는 훌륭한 노래를 듣고 있을 때보다, 이런 저런 악기들이 실력 있는 연주자들에 의해 연주되는 것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음악적 욕망을(목소리를 이용해 노래하고픈 욕망까지 포함하여) 더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악기’라는 표현에서 이번에는 ‘신’에 대해서 잠시 생각해보고자 한다. 당연히 기독교, 유대교, 이슬람과 같은 유신론적 종교에 더 친화적인 단어이다. 그래서 그러한 종교, 그 중에서도 내가 공부했고 지금도 연구하고 있는 기독교(주로 개신교)에 기반하여 한번 사유를 해보고자 한다.

Imago Dei라는 표현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신의 형상’ (the image of God)이라는 의미로서, 단순히 인간이 신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뜻만이 아니라, 여러 의미에서 신적 가치를 지닌 피조물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런데, 이것을 좀 달리 표현하여, 맥루한식 사고를 아슬아슬하게 적용하여 인간을 ‘신의 확장’으로 생각해 보면 어떨까?3) 그렇게 본다면, 인간은 신의 ‘매체’가 될 수도 있다.4) 그리고 그렇게 신적 가치를 지닌 인간 역시 신처럼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확장’할 수 있는 존재로서의 가치가 적어도 기독교 같은 유신론적 종교에서는 인간론의 중요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인간이 자신의 확장인 악기로 인해 다양한 유익을 누리는 것은 종교적으로도 매우 유의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의 경전인 성서의 이야기들 중에 악기에 대한 수많은 긍정적 묘사들이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사람의 노래 소리에 대한 언급 없이 오직 악기와 함께 은총을 누리는 장면도 적지 않으며 (예를 들어, 레 25:8-10, 삼상 16:14-23, 왕하 3:15)5),특히 시편의 마지막 챕터인 150편에는 종교예식의 수단으로서 인간의 노래 소리에 대한 언급은 없고 오직 각종 악기들을 나열함으로써 장엄하게 시편 전체를 마치고 있다. 내가 잘 몰라서 그렇지, 다른 종교전통 및 영성활동에도 악기가 핵심인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6)

연주곡은 가사가 없기 때문에 ‘이 곡이 말하고자 하는 게 뭐냐’같은 질문에 구체적인 답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런 ‘언어적인’ 대답은 곡의 제목 정도로만 짧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신 사람의 목소리의 한계와 가사로 인한 제약이 없어지기 때문에, 음악을 통해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자유롭고 풍성하게 할 수가 있다는 사실은 재즈, 클래식, 락 등 순수 연주곡이 독립적으로 자리를 잡은 음악장르의 팬이라면 쉽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악기연주음악만의 강점과 유익은 종교음악의 영역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인간 목소리이다. 그러나 동시에 신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악기는 악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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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중요한 점은, 맥루한을 포함하여, 미디어학계에서는 우리가 흔히 ‘매체’(medium)하면 떠올리는 TV, 라디오, 컴퓨터, 인터넷, 전화 등 전기를 이용해야 하는 것들만이 아닌, 말 그대로 ‘매개’(mediate)하는 각종 도구 및 장치들(글자, 그림, 종이, 인쇄술 등)을 모두 미디어(‘medium’의 복수형인 ‘media’)에 포함시킨다는 것이다.

2) 따라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미디어는 메시지다’라는 번역보다는 ‘미디어가 메시지다’로 번역하는 것이 더 핵심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러한 사고의 구체적 적용에 있어서는 맥루한의 각 매체에 대한 해석에 모두 동의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고, 또 동의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매체에 담긴 내용이 아닌 매체 자체에 집중을 하는 언론학적 전통을 마련해주었다는 점에서는 마샬 맥루한이 속한 이른바 ‘토론토 학파’의 공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3) 참고로, 맥루한은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다.

4) 사도 바울(또는 바오로)도 자신의 편지의 수신자들을 예수의 ‘편지’라고 칭한 바가 있다 (고후 3:3).

5) 물론 요한계시록/묵시록에서처럼 재앙의 시작을 알리는 두려운 악기소리도 있다.

6)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싱잉볼 힐링’도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홍승민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고려대학교 국제대학원 강사
종교와 미디어, 문화간의 접점에 대해 연구하고 있으며, Journal of Popular Film and Television, Religions, 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 Research, International Journal of Communication, Journal of Korean Religions 등의 관련 국제학술지에 연구논문을 게재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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