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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59호-신축년 새해를 맞이하여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 1. 5. 15:45

신축년 새해를 맞이하여


newsletter No.659 2021/1/5

 



 


매년 원단이 되면 우리는 새로운 출발을 위해 지난해를 돌이켜 보고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는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지금 우리의 심정은 범상할 수 없다. 코로나19가 불러온 세기적 사태가 우리의 삶을 뒤흔들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일상사에서부터 정치와 사회, 경제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영역이 코로나 사태로 인해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일상으로의 복귀’에 대한 희망을 정치인이나 의료인의 담화를 통해 기대하고 나 자신도 그런 희망을 품어보지만 ‘그 일상’으로 되돌아갈 수 있을지 하는 의문이 자주 든다. 내가 잘 다니던 식당, 생필품 상점, 그리고 나의 생활에 자그만 즐거움을 주던 장소들이 문을 닫은 지 오래고 다시 열리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 사태가 끝나면 예전으로 돌아가겠지 하는 것은 나의 희망사항일뿐 이전으로의 복귀를 확신케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병원마저 우리를 치료하고 회복시키는 공간이 되지 못하고 병원과의 거리두기가 오히려 편하게 느껴지는 모순을 우리는 겪고 있다. 불현듯 릴케의 어느 작품의 서두가 생각난다. “사람들은 이곳을 살려고 온다고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죽으러 온다고 생각한다. 병원이다”. 병원의 실상을 투시한 시인의 통찰력이 바이러스 앞에 속수무책인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조만간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이와 유사한 사태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생태운동가와 생태학자들이 오래전부터 지적했듯이 생태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행동의 틀이 작금의 사태를 초래한 근본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신축년 새해를 맞는 나는 “지금 어디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소위 철학적인 ‘현존(Dasein)’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이런 질문에 직면해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런 원초적인 물음이 학문적인 틀에서 제기된 것만은 아니다. 내 나름의 삶을 의식하기 시작했던 초년 시절, 분명 이런 질문을 제기했고 그것이 나의 행로를 결정했다. 코로나 때문에 우리는 각자의 삶의 초년에 직면해 있는지 모른다. 모든 것을 다시 새롭게 생각하고 틀을 바꾸어야 할 시점 말이다. 지금은 새해 원단으로 분명 또 하나의 새로운 행로를 시작하는 시발점이니 우리는 이중의 원단에 서 있는 셈이다.

지난 1년간 우리 연구소는 비대면 형식이나 소수의 관계자만 참여하는 방식으로 다양한 학술모임을 가졌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어서 어려움이 컸지만 새로운 도전과 실험의 기회이기도 하였다. 특히 하반기 심포지엄에서는 ‘나이 들어감’(aging)의 문제를 종교(학)적 상상력과 연계하여 성찰해 보았는데 매우 뜻깊은 자리였다. 올 상반기에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종교(학)’을 다루어 볼 예정이다. 이러한 학문적 시도들이 새로운 미래를 여는 작은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걸어 본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이 시대가 처한 사태의 심중함은 이 시점의 우리를 매우 긴장시키고 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나는 슈바이처 박사의 의연한 자세를 좌표로 삼고 싶다. 아프리카의 열악하고 비극적인 상황에서 환자들을 치료한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현재가 아무리 비극적이라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을 ‘비극’으로 시작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일종의 ‘비극적 낙관론’이라 할까? 이 시점에서 우리가 맞이해야 할 신년의 모순적 미래를 이렇게 전망할 수밖에 없는 우리는 새로운 희망의 긴장감을 늦출 수 없을 것이다.














 


이민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장 
주요 논문으로 <서구불교학의 창안과 오리엔탈리즘>, <학문의 이종교배-왜 불교신학인가>, <불교에서의 인권이란무엇인가?>, <백교회통-교상판석의 근대적 적용> 등이 있고, 역서로《성스러움의 해석》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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