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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71호-“자네, 종교가 뭔가?”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 3. 30. 16:03

“자네, 종교가 뭔가?”




            news letter No.671 2021/3/30   

 

 

 

 


뉴스레터 666호(2021/02/23)에 실린 이연승 선생님의 「‘종교자’의 언어에 드러난 ‘종교’ 개념 연구」를 즐겁게 읽고 나서 이에 화답하는 글을 짓자는 생각을 가졌다. 뉴스레터 원고를 통해서 연구소 회원들의 섬세한 감수성과 예리한 생각들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하지만 어떨 때는 혼자만의 공허한 독백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가지 울림이나 반향을 들어보는 것도 즐겁지 않겠는가.

물론 까칠한 독자의 반론이 나오고 논쟁이 벌어지기라도 한다면 그것 역시 공부의 깊이를 더해준다는 의미에서 흥미진진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본시 천성이 유약하여 강단 있는 연구자가 못 된다. 게다가 이연승 선생님의 글에는 내가 반박할 것이 도무지 없으며, 오히려 내 공부에 새로운 좌표를 찍어주는 대목이 많았다. 그래서 이연승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담론으로서의 종교 개념 - 종교가들의 종교 개념 – 일상어 속의 종교 개념’으로 이어지는 연구 아젠다 설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연승 선생님이 소개한 호시노 세이지의 책은 “아래로부터 종교라는 개념이 구성되는 과정”에 주목하는 연구이며, 그 연구 대상으로 “종교가들이 사용하던 종교 개념과 여타 근대적 개념들의 상호 관계”를 다루었다. 조셉슨이 외교 및 내정 관련 법, 제도에 초점을 맞추거나, 이소마에가 아카데미즘 내에서 종교 개념과 종교학 담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중심에 놓는 경향을 띠는 데에 비해서, 호시노는 자신의 연구가 아래로부터의 개념 형성을 강조하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래서 일본의 지식인 종교가들이 종교라는 개념을 문명, 학술, 도리, 도덕 등과 결부하여 사용하던 독특한 맥락을 추적하였다. 왜 그들은 불교, 기독교가 아니라 굳이 종교라는 범주가 필요했을까? 초월성과 관련지어 종교의 고유 영역을 자리매김하려는 시도였다고 호시노는 평가한다. 이처럼 종교인들의 자기 진술 속에 들어 있는 종교 개념을 다루는 것은 종교 개념 연구를 다채롭게 만든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내려가면 어떨까? 말하자면 종교인의 자기 진술보다 더 깊은 기층을 형성하는 일상생활의 언어 영역에서 종교 개념이나 범주를 다루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나온 종교 개념에 관한 연구를 보면 지식인들의 담론, 정부 기록이나 외교 문서, 신문과 잡지 등 공적 영역에 속하는 진술, 나아가서 일본 학자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자면 학지(學知)에 해당하는 분야를 많이 다루었다. 그러다 보니 종교 담론을 스테레오타입으로 만들어 실체화하지나 않았을까?

일상생활의 세계에서 사용되는 언어를 들여다보면 논리적인 완결 구조를 갖춘 종교 담론이란 것은 아예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완전히 다른 담론 매듭이나 담론 유동체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일상어 속에 담긴 종교 개념의 문제를 연구하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면 일상 언어의 세계 속에서 종교 개념을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개념의 출현이나 정착, 변화 등을 추적하는 작업이 가능하기나 할까? 다양한 용례들을 수집하여 모아 놓는다고 연구가 저절로 되지는 않는다. 연구 자료로는 무엇을 사용하면 좋을까? 사건이나 사고를 보도하는 신문 기사, 잡지의 가십란, 편지나 일기, 연재소설? 아직 막연하다. 대신에 내가 옛날에 들었던 일화 한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어느 수험생이 대학 입시 면접장에 가서 겪은 이야기이다. 교수가 물었다.
“자네, 종교가 뭔가?”
이 말을 들은 수험생은 본인이 생각하는 종교의 정의를 말하려고 했다.
“예, 제가 생각하기에 종교란 ….”
그러자 수험생의 말을 자르고 교수가 되물었다.
“아니, 그거 말고. 자네 종교가 뭐냐는 말일세.”

일상 언어의 화용론에서는 ‘자네’와 ‘종교’ 사이에 쉼표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진다. 일상생활의 세계에서 진행되는 언어 행위에는 종교 개념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정의하는 것, 즉자적인 개별 종교 선택을 지칭하는 것 등 다양한 층위들이 마치 생선의 비늘처럼 겹쳐서 존재한다. 그리고 오독과 왜곡, 자의적 전유, 의도적 기피 등 미묘한 신경전이 낱말의 선택과 사용에 개입되어 있다. 수험생과 교수가 겨룬 일합(一合)의 승자는 누굴까?

나는 일상 언어 속의 종교 개념을 찾아 들어가는 발판으로 말모이 즉 사전을 선택하였다. 시대는 20세기 전반기로 정했다. 외우(畏友)의 주선으로 어느 학회의 올 가을 학술대회에서 발표하기로 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제목은 잠정적으로 「일상생활의 언어 속에 투영된 종교 -식민지 시대 조선어사전의 종교 용어들-」이라고 잡았다. 그 시대 사람들이 사용하던 낱말들을 모아 놓은 사전을 들여다보면서 종교 관련 용어들을 끄집어낼 것이다. 그리고 용례들을 다양한 자료에서 수집할 것이다. 그다음엔? 어떻게 할지 아직 잘 모르겠다.

꼭 10년 전이다. 한불자전에서 종교 용어들을 뽑을 때의 쓰라린 기억이 난다. 거북이처럼 목을 빼고 한불자전을 한 장 한 장 넘기다가 그만 목디스크가 망가졌더랬다. 이번엔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조현범_
한국학중앙연구원
작년에 <초기 한국 종교학사 연구 서설>, <박해시대 조선대목구의 사제 양성과 신학교 설립>의 초고만 마무리하였고, 앞으로 모란이 피기 전에 <19세기 조선 천주교 교리서 성교요리문답 연구>를 끝내야 한다. 즉 근래에 완성한 논문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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