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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75호-한국 민간신앙에서의 인간의 위치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 4. 27. 20:16

한국 민간신앙에서의 인간의A sip of water 위치

 

newsletter No.675 2021/4/27

 





 

[A sip of water 애니메이션 장면]


무속은 무속의 여러 신과 관련지어 인간 삶을 바라본다. 무속에서는 크고 작은 인간 삶의 문제는 신이 원인이 되어 발생한 것으로 여긴다. 이런 까닭으로 무속은 인간의 삶을 변덕스런 신의 뜻에 따라 좌우되는 것으로 바라본다고 설명되기도 한다. 무속을 이렇게 이해하면, 무속에서 인간은 신과의 관계 속에서 삶의 주체로서 역할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에 불과하다. 무속에서 인간은 신이 초래한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피동적인 삶을 살아갈 뿐이다.

새삼스럽지만 이는 무속에 대한 타당한 견해라고 말하기 어렵다. 무속에서 인간은 전혀 수동적이지 않다. 무속에서 인간은 살아가면서 겪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그저 어쩔 수 없이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고 체념하는데 머물지 않는다.


무속에는 인간 삶의 거의 모든 문제에 대응 가능한 다양한 의례가 존재한다. 사람들은 어떤 삶의 문제에 당면했을 때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체념하기보다는 다양한 무속 의례를 활용해서 그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한다. 물론 무속 의례가 삶의 문제를 모두 해결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속 의례가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 주는지 여부가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통로를 무속이 제시한다는 점이다. 무속을 통해 사람들은 삶의 문제로 좌절하지 않고 그것에 맞설 수 있는, 삶의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 길 하나를 확보한다.

삶의 주체로서의 인간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무속 사례의 하나가 무속의 죽음 신화이다. 창세(創世)를 노래하는 창세신화를 비롯해서 다양한 신화가 무속 의례를 통해 전승되고 있다. 그중에서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죽음 관련 신화이다. 흥미로운 것은 무속에서 죽음의 원인이나 기원을 말하는 신화는 잘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나 어른, 젊은이나 노인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죽음의 현실을 설명하는 신화는 존재한다. 이는 무속이 원인이 무엇이든 죽음을 인간 삶의 현실 가운데 하나로 수용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무속 죽음 의례 역시 죽음을 주어진 현실로 수용하고 죽은 자를 죽은 자의 세계인 저승으로 보내는 데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속이 죽음을 무력하게 수용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운명이나 현실로 받아들인다고 말할 수는 없다. 무속의 죽음 신화는 죽음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절대적 현실로 바라보지 않는다. 무속의 죽음 신화는 인간이 개입할 수 있고, 인간의 행위 즉 인간의 정성이나 슬기로서 극복할 수 있는 삶의 한 부분으로서 죽음을 바라본다.

널리 알려진 바리공주 신화가 좋은 예이다. ‘바리공주’ 신화에서 바리공주는 저승에서 구해 온 약수와 꽃으로 이미 죽었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되살린다. ‘황천혼시’와 ‘장자풀이’에서는 수명이 다한 사람을 잡으러 온 저승사자를 잘 대접해서 죽음을 모면하고 수명을 연장한다. ‘도랑선비와 청정각시’에서 아내인 청정각시는 남편 ‘도랑선비’의 죽음을 그저 받아들이지 않는다. 죽은 남편과 다시 만나기 위해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온갖 고통을 자처하고 감내한다. 무속 죽음 신화에서 죽음과 마주한 인간은 더 이상 무력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주어진 죽음을 거부하고, 적극적인 행위를 통해 죽음의 상황을 변화시켜 극복하고자 한다.

인간이 삶의 주체로서의 모습을, 특히 신과의 관계에서, 보여주는 것은 집안 곳곳에 자리잡고 있는 가신(家神)을 대상으로 한 가정신앙에서도 확인된다. 충남의 가정신앙에서 나타난, 신에 대한 주민들의 태도는 흥미롭다. 사람들은 신을 모실 때 “위하는 것도 소탈하게 해야지 너무나 잘 위하면 신령도 까다로워져서 모시기가 어렵게 된다”고 말하거나, “버르장머리는 가르칠 대로 간다”고 말한다. 신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인간은 신에게 좌우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신과의 관계에서 신성모독(?)에 가까운, 인간 중심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더욱이 “돌팍도 놓고 사뭇 빌면 걷는다”라는 말은 가정신앙에서 전제하는 인간의 위치가 어떠한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준다.

이러한 무속과 가정신앙의 사례는 한국 민간신앙에서 인간이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경우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충남의 가정신앙에 대해서는 이필영, 「충남지역 가정신앙의 제 유형과 성격」, 『샤머니즘연구』3, 한국샤머니즘학회, 2000 참고.

 







 


이용범_
안동대학교 인문대 민속학과 교수
논문으로 <일제의 무속 규제정책과 무속의 변화: 매일신보와 동아일보 기사를 중심으로>, <한국무속과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비교: 접신(接神)체험과 신(神)개념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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