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뉴스 레터

691호-질병과 종교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1. 8. 17. 18:41

질병과 종교를 대하는 우리의 시선

 

news letter No.691 2021/8/17





인류학자 빅터 터너가 아프리카 은뎀부족을 찾아가 현장 조사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딪친 난점 중의 하나가 과학적 관점에서 보면 미신에 불과할 수도 있을 치료 행위가 현지인들 사이에서 실제 효과를 발휘할 때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곤혹스러움에 처했을 때였다. 상징 인류학자인 빅터 터너는 자신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원시 부족이 몸에 병이 들었을 때 행하는 치료 행위를 상징체계로 보고 거기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가 보기에 이들의 치료 행위는 서구 의학과 대비하여 거의 종교에 가까운 것이었으므로 상징론적인 접근법을 택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었을 것이다.

서구 인류학자들이 아프리카를 비롯한 여러 오지에서 살아가는 원시 부족의 종교를 이른바 상징론을 통해서 해명하고자 했던 배경에는 은연중 이성과 과학에 대한 신뢰가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임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종교를 상징의 세계로 보는 관점에는 종교란 이성과 과학으로는 접근하기 어려운 삶의 차원을 상징을 이용하여 드러낸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이러한 관점은 과학의 영역과 종교의 영역을 구분하고, 전자는 물질과 몸의 영역을 관장하는 반면 후자는 정신적이거나 영적인 영역과 연결된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종교가 몸이 겪는 질병의 고통을 직접 치유하는 방책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어색한 일이기도 하다. 아마도 정상적이고 교양 있는 시민이 되려면 이러한 구도가 제시하는 경계를 잘 지켜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구도에 익숙한 연구자가 여태껏 경험한 적이 없는 낯선 사회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빅터 터너의 당혹스러움이 그런 문제점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은뎀부족은 당연히 과학이나 종교의 경계가 없었으며, 누군가가 질병에 걸리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유 행위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터너는 은뎀부족의 세계에 종교와 과학의 경계선을 그은 다음 그들의 치유 행위를 상징으로 이해하였다. 그런데 상징이라고 생각한 모종의 행위를 통해서 실제로 질병이 낫는 경험을 직접 목격한 순간 당혹감에 휩싸인다. 여기서 터너는 잠깐만이라도 자신이 그려왔던 은뎀부 사회의 구조와 질서가 어쩌면 자의적인 결과일 수도 있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았을까.

동아시아 전통사회가 겪었던 질병의 역사에 학자들이 접근하는 방식을 보면 대체로 터너가 적용하였던 구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한의학이나 중의학을 전혀 모르는 처지에서 섣부른 발언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없지는 않지만, 적어도 전통사회일수록 우리가 현재 종교와 의학이라고 부르는 행위가 뒤섞여 있었다는 정도의 판단은 오류가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사회 질병의 역사를 진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가 등장한다.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이 미신적인 상태에서 좀 더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방향으로 진전되었다는 주장은 결국 전통적인 의술의 현대적 유효성을 강조하면서 종결된다. 예를 들어 최근 코로나 사태의 위기 상황에서 중국 전통 의학의 우수성을 부각하려는 중국 학계의 분주함이 눈에 띈다. 여기서 송나라 때 천연두를 예방하기 위하여 인두법(人痘法)을 발명한 사례는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듯하다. 게다가 인두법은 오늘날 전염병 예방에 필수적인 백신의 기원으로 승격되기도 한다.

그밖에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질병의 발생 원인과 대처 방안을 종교적인 혹은 의례적인 차원에서 마련했던 사실을 마주하고 이를 미신으로 가볍게 치부하는 대신 상징론적인 접근법을 통해서 그러한 행위에 깃들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해독하려는 노력이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예기 월령》에는 나라에서 각 계절에 적합하지 않은 정령을 내리면 역병이 발생한다는 경고가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역병은 시절에 맞지 않은 국가 시책이 내려지면 발생한다. 아마도 상징론자들에게 이 대목은 우주와 인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중국 고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자료로 비추어질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 두 가지 접근 방법은 충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종교 상징과 과학적 실재의 경계를 너무도 잘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일까. 질병의 역사를 바라보는 누군가의 시야에 터너의 고민이 묻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갑골문을 보면 질병(疾)을 뜻하는 글자가 나온다. 문자학자들은 이 글자의 형태를 사람이 침상에 누워 고통스럽게 땀을 흘리는 형상()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상나라 사람들은 일반적인 질병과 전염병(疫)을 구별하였다. 자료의 한계로 전염병의 종류가 얼마나 세분되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다만 학질(虐疾)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역병을 구분했을 가능성이 크다. 복사(卜辭)에는 질병의 발생 원인, 지속 여부, 치료 방법 등에 관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점을 쳤던 기록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신들에 대한 제사뿐만 아니라 침이나 약물과 같은 치료법이 점복의 대상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가령 학질을 치료하는 데 대추(棗)를 이용하면 효과가 있을지의 여부를 묻는 복사가 있다. 아마도 당시에 학질에 걸리면 대추를 약제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추의 효능은 후대 의서인 《상한론(傷寒論)》이나 《본초강목》에도 나온다고 한다. 여기서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질병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신들에 대한 제사와 함께 침이나 약물을 이용한 치료 방법도 점복의 대상이 되었던 배경은 무엇이었을까. 종교와 의술, 상징과 과학, 정신과 물질이 혼미하게 뒤섞인 시대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난관임이 분명하다.



 

 









 


임현수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최근의 논문으로 〈西周 시기 신 · 인간 · 동물 범주에 관한 연구: 청동기 金文 및 문헌 자료를 중심으로〉, 〈중국 고대 노인의 정체성과 권위에 관한 연구〉 등이 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