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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지나는 길목에서 조미아를 생각한다

 

news letter No.692 2021/8/24

 



태풍 오마이스는 멀리서부터 기세를 뽐내려 했던지, 이곳에 도달하기 전부터 굵은 빗줄기를 뿌려댔다. 태풍이 내가 사는 지역을 거쳐 간다고 해서 이틀 전부터 부산을 떨었다. 1주일에 한 번 쓰레기를 수거해가는 탓에 마당 한구석에 쌓여 있는 온갖 쓰레기들을 분류하고 정리하여 비닐하우스에 보관하고, 강풍을 대비해서 비닐하우스를 고정하는 끈들을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주렁주렁 열매가 열려 이미 고개를 깊이 숙인 대추나무와 중심 줄기가 반쯤 썩은 커다란 자두나무가 눈에 거슬리고, 서서히 세월의 무게를 드러내어 군데군데 썩어가는 처마와 몇 해 전에 비가 새서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았던 지붕의 틈들이 마음에 걸린다. 태풍이 지나간 후에 밖을 둘러보니 다행히 대추나무의 굵은 줄기가 꺾인 채 아침을 맞이한 것 외에는 별다른 피해는 없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바람은 강하고 비는 거세게 몰아치고 있어서 오늘 하루도 마음은 산란할 듯하다.

언젠가 추석 명절에 처갓집에 갔다가 태풍을 맞이했던 기억이 있다. 처갓집이 좁아서 가족과 함께 호텔에 머물게 되었는데, 폭우와 강풍에 꼼짝 없이 호텔 안에 갇히게 되었다. 그래도 유유자적 객실의 커다란 통유리창 너머로 펼쳐지는 태풍의 놀라운 퍼포먼스를 감상하려 했지만, 강풍에 통유리가 휘어지는 순간에 그런 생각은 싹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명절의 여유를 맞보기 위해 식구들과 함께 호텔 커피숍을 찾았지만, 호텔 로비의 천정에서 비가 새어 직원들이 떨어지는 빗물을 받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빗물받이를 설치하고 걸레로 바닥을 연신 닦아내는 그 분주함에 덩달아 마음만 분주해졌다. 그때와 지금의 경우를 놓고 보면 내 자신이 처한 존재론적 위치가 변한 탓인지 태풍을 맞이하는 태도와 마음도 확연히 달라졌다. 그때의 호텔 직원들처럼 나 역시 올라오는 태풍에 긴장하며 온 몸의 감각을 활성화해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비단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시골의 낡고 누추한 집에서 살아가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면 모두 태풍이 조용히 지나가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언젠가 옆집 노인이 태풍 매미로 하천이 넘쳐 집이 물에 떠내려가는 줄 알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옆집 노인은 폭우 예보가 내리는 날이면 범람한 하천의 물을 막으려고 대문 앞에 진지를 구축한다. 이처럼 누군가의 도움, 특히 국가의 도움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경험의 지혜와 기술을 활용해서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야 한다. 여기서 알게 된 한 부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15년 전 즈음에 이곳 남녘땅에 내려와 깊은 산 중턱에 터를 잡고 직접 흙벽돌을 빚어 집을 짓고 유기농법으로 작물을 재배하며 생태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들 스스로 그러한 ‘대안적인’ 삶을 선택한 것일 테지만, 그들이 그러한 선택의 기로에 서도록 내몬 것은 우리가 속한 사회이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개발주의, 소비문화,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온전히 마련하기 어려운 사람들 중에는 그들 부부처럼 조금이나마 자연과의 호혜적인 관계에서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삶을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가급적이면 성장과 소비의 욕망에 사로잡힌 손길이 닿지 않는 산과 섬, 척박한 오지에 터를 잡고 살려고 한다. 필경 이런 사람들에게 가난은 평생의 친구일 수밖에 없을 테지만, 그들의 삶에서 가난의 궁색함은 찾기가 어렵다. 그들이 머문 자연은 추위와 더위를 피할 집을 지을 재료와 굶지 않게 할 곡물과 채소를 제공할뿐더러 그들에게는 성실함과 소박함이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이런 부류의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된다. 온전히 자연에 의지하면서 소박하게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포진하여 자신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이런 사람들에게서 나는 ‘조미아(Zomia)’로 불리는 자들의 모습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조미아’란 용어는 원래 ‘동떨어졌다’는 ‘조(Zo)’와 사람이라는 ‘미(Mi)’가 결합되어 평지의 사회와 동떨어진 어떤 산악 종족을 지칭했다. 이 용어는 지리적 환경에 확대 적용되어 동남아시아, 중국 남부, 인도 동북부 고원지대에 걸쳐 살아가는 몽족, 카렌족, 까친족, 라후족 등 1억 명에 가까운 소수종족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제임스 C. 스콧의 『조미아, 지배받지 않는 사람들』에 따르면, 조미아로 불리는 소수종족들은 정치적·사회적 권력의 장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자들로서 노예 습격, 공물 요구, 침입 군대, 전염병, 작물 재배의 실패 등과 같은 격동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한 사회적·종교적 조직을 개발해 왔다. 그들은 국가를 포함한 거대 집단의 폭압적이고 수탈적인 구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고원지대로 올라갔고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집단을 분산하고 재편성하고 여기저기 이동하면서 자신들이 처한 삶의 조건과 환경에 조응하는 사회조직과 종교문화를 형성해왔다는데, 그 밑바탕에는 자율과 평등의 신념이 흐르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콧은, 고원지대의 소수종족이 원래부터 그곳에서 살았던 ‘미개한’ 사람들이 아니라, 수탈과 착취를 피해서 높은 고지대의 척박한 곳을 옮겨가면서 다양한 종족들이 뒤섞이면서 구성된 집단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평지의 국가나 사회는 그들이 문명을 알지 못하는 원시적이고 미개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로 얕잡아 보지만, 조미아 사람들이 일군 그러한 삶의 행태는 척박하고 긴급한 삶의 환경에 적응하면서 형성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조미아 사람들의 관점에서 자신들을 문명화하려는 평지 사람들의 시도는 자신들을 다시 포획하여 권력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자원으로 삼으려는 꼼수로 밖에 읽히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제3세계에서 진행되었던 서구열강의 식민지배가 문명화 담론을 통해서 그 정당성을 확보했던 역사를 반추해볼 때 쉽게 납득이 된다.

흥미로운 점은 조미아로 불리는 광활한 지대에 넓게 퍼져있는 천년왕국주의의 신념이다. 흔히 기독교의 전유물로 인식되는 천년왕국주의가 이 지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까닭은 전쟁, 전염병, 노예사냥, 기근, 군사적 공격 등과 같이 긴박하고 불안정한 상황에서 새로운, 대안적인 삶을 추진할 수 있는 동력을 천년왕국주의적인 세계관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1956년 베트남에서는 천년왕국운동이 산악지대의 소수종족들 가운데서 발생했는데, 마을사람들은 소를 팔고, 정부기관을 공격하고, 라오스로 이주하여, 찾아올 왕을 고대했다고 하며, 라후족은 20세기 초반 무렵에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자신들의 방랑과 예속을 이스라엘의 고난과 동일시하고 예수의 재림과 동시에 라후족이 해방될 것이라는 신념을 지녔다고 한다. 나아가 스콧의 설명에서 관심을 끄는 부분은, 조미아의 소수종족들은 기독교, 이슬람, 불교와 같은 보편적인 구원종교를 수용할 때 여러 종교적 관념과 뒤섞어 혼합주의적인 종교관을 형성한다는 점이다. 스콧은 그 주된 이유로 문화적 차이를 통한 정체성의 확립을 추구하는 조미아 사람들의 문화적 관념을 들고 있다. 그들은 기독교를 수용하든 불교를 수용하든 이슬람을 수용하든 그 종교들이 평지에서 지녔던 종교적 속성과 외피를 떼어내어 자신들의 삶의 정황과 문화 관념에 맞추어 변형시켜 스스로의 고유성을 확보하고자 했다. 그러나 스콧은 20세기 말에 이르러 “거리 차이를 없애는 기술(포장도로, 다리, 철도, 비행기, 현대적인 무기, 전신, 전화, 요즘의 GPS에 이르는 정보기술)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진 실로 제국주의적인 프로젝트”에 의해서 국가 밖의 영역, 곧 조미아는 점차 통치 가능하고 경제적 이윤을 가져오는 공간으로 변화되고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조미아 소수종족의 고유한 사회적·문화적 형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다고 말한다.

태풍이 도착하기 며칠 전에 산 중턱에 사는 사람을 만났다.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 수심이 가득 찬 얼굴로 내 의견을 구한다면서 1시간 넘도록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전했다. 얼마 전에 내린 폭우로 집으로 가는 길이 패여서 차량으로 이동하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면사무소에 길을 보수해달라고 민원을 올렸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차량 한 대가 간신히 지나는 그 길의 일부가 사유지이며 땅 주인이 허락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 길은 땅 주인이 그 길가에 돼지축사를 짓기 수 십 년 전부터 사람들이 사용하던 길이었건만 도로 보수를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그 땅 주인은 축사와 축사 사이에 난 오래된 군소유의 도랑을 포장해서 사용하고 있을 뿐더러 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막기 위해 턱을 만들어서 비가 오면 옛길로 물이 흘러들게 하여 시간이 갈수록 도로는 더 깊게 파이게 되었다고 한다. 하소연하는 자의 얼굴색이 더욱 어두워졌다. 예전 같으면 옛길을 이용해서 1분도 안 되서 자신의 집이나 경작지에 도착할 수 있지만, 보수가 되지 않으면 수 킬로미터의 산길을 돌아서 통행할 수밖에 없다. 마을 사람 몇 명이 모여 이런저런 대안을 마련해서 면사무소와 군청에 민원을 넣어보긴 했지만, 자기 같은 사람들의 민원서류는 책상서랍에서 망실되기 일쑤이니 어쩌면 좋겠냐는 하소연이다. 산과 섬, 오지에서 새로운 삶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은 종종 이러한 어려움 앞에서 손을 놓을 때가 있다. 지역의 오래된 악습 중의 하나는 지역에서 평탄하게 살려면 공무원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에 협력하고 지자체의 정책에 동조하고 홍보하는 데 앞장을 서야 조금이라도 이익과 혜택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취업과 진급, 각종 시험 합격을 알리는 현수막이 길가에 걸려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자신이 지역사회의 권력 장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존재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다. 지역에서 국가가 내미는 도움의 손길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려는 사람이나 사회적 입지가 탄탄한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나처럼 변변치 않은 사람을 앞에 두고 하소연을 한 그 사람은 이 태풍에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폭우에 깎여나가는 그 길의 깊이처럼 삶의 터전을 깊게 잠식해 들어오는 욕망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조미아 사람들에 대한 스콧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구속과 지배가 없는 새로운 세상의 도래를 향한 신념에서 삶에 닥친 위기를 타개할 힘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의 현실 논리와는 다른, 대안적인 삶의 방식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의 연대에서 그 힘을 얻을 수 있지는 않을까, 바람에 부러진 대추나무를 다시 세워 끈으로 동여매면서 그렇게 혼자 되뇌어 본다.



 

 









 


박상언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논문으로 <배아줄기세포연구의 생명윤리담론 분석: 한국 기독교와 불교를 중심으로>,<간디와 프랑켄슈타인,그리고 채식주의의 노스탤지어:19세기 영국 채식주의의 성격과 의미에 관한 고찰>,<신자유주의와 종교의 불안한 동거: IMF이후 개신교 자본주의화 현상을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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