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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을 합리화하는 러시아 정교회 수장


news letter No.722 2022/3/22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관계에 초점을 두어 이 전쟁을 보고자 한다.

우크라이나인들의 80% 이상이 정교회 신자로, 세계에서 러시아에 이어서 두 번째로 많은 정교회 신자가 산다. 소련 시절, 우크라이나 영토에 있는 모든 정교회 교구는 러시아 정교회 소속이었다. 우크라이나가 지난 시기 정치적으로 탈러시아화하는 방향성이 가속화되면서 종교적으로도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하려는 움직임이 거세다. 반면 러시아 정교회는 ‘하나의 러시아(russkii mir)’원칙을 고수한다.

모스크바 교구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우크라이나 교회의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다. 2018년 말 거의 모든 우크라이나의 주교들이 러시아 정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위해서 키이우(키예프)에 모였다. 그 결과 우크라이나 정교회(OCU=Orthodox Church of Ukraine)가 결성되었다. 2019년 1월부터 여기에 속한 우크라이나 교구들은 러시아 교회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여전히 모스크바에 속한 우크라이나 정교회(UOC-MP=Ukrainian Orthodox Church of the Moscow Patriarchate)도 존재한다.

이와 관련하여 정교회의 역사에서 역대급 사건이 발생했는데, 터키 콘스탄티노플이 우크라이나 정교회(OCU)를 인정한 후 벌어진 갈등이다. 러시아 정교회는 콘스탄티노플 대주교의 행동을 종파분리적(schismatic) 행위로 규정·비판하면서, 모스크바와 콘스탄티노플이 같은 신앙공동체(communion)에 속한다는 오래된 전통에 균열을 가져왔다. 동방 정교회 역사를 통틀어 이례적인 분열로, 이 우여곡절의 발단에 바로 우크라이나 교회의 독립이 놓여 있는 것이다. 참고로 콘스탄티노플, 그리스, 키프로스, 알렉산드리아 정교회를 제외한 다른 지역 정교회들은 우크라이나 정교회(OCU)를 독립교회로 인정할 것인가에 대하여 아직까지 결정을 못 내리고 있다.


전쟁이 반발하자 모스크바 소속의 우크라이나 정교회(UOK-MP)도 가만있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의 국가주권과 영토적 통합을 지지하면서 푸틴에게 당장 “형제간의 전쟁”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에 속한 수도원들과 교회들에게 모든 수단을 강구해서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오는 방향으로 협력하자고 제안했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모스크바 교구 2022년 2월 28일 성명서 참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교회 교회들의 시선은 일제히 모스크바에 있는 키릴(Кирилл) 총대주교에게 향했다. 키릴은 2009년부터 러시아 정교회의 제16대 수장이다.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형제살해의 피 흘림”을 막을 수 있도록 푸틴과 국민들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있는 위치에 있다. 푸틴은 종교를 상대적으로 억압했던 사회주의 시절과 달리 러시아 정교회를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구심점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 정교회 최고 수장은 어떠한 말을 하게 될 것인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은 숨을 죽이고 3월 2일 일요일 키릴의 성찬예배를 기다렸다. 특히 그날은 정교회 전례에서 용서의 일요일(Forgiveness Sunday)이다. 전쟁의 부당성과 화해에 대해서, 그리고 푸틴을 향해서 전쟁을 멈추어 주기를 호소하는 담화를 기대한 건 당연했다.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강론의 삼분의 일 이상이 프라이드 행진(Pride parade)1)에 대한 비판에 쏠려 있었다. 키릴은 이러한 현상을‘서구’문화에 영향을 받은 우크라이나의‘도덕적 타락’으로 못 박았다. 그의 논리에 따르면 러시아가 ‘형제’의 영토에 들어갈 수 있는 주요 이유 중 하나로, 우크라이나의 서구 편향성의 필연적인 결과인 도덕적 타락을 꼽았다. 이러한 인식은 우크라이나 침략에 정당성을 부여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서방 세력에 물 들어서 정치적이고 도덕적 면에서 ‘타락’한 우크라이나에 대한 응징이자 일종의‘교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한편 러시아 정교회 수장의 이러한 실망스러운 사태 인식은 그다지 놀랍지 않다. 2월 성찬예배 중 우크라이나를 위한 기도문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다. “하느님,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형제 우크라이나의 현재 정치적 상황이 러시아와 러시아 교회의 통합에 반대해서 투쟁하는 악의 세력에 사용됨을 용납하지 말아주십시오.” 이러한 러시아 정교회 수장의 태도는 향후 사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러시아 정교회로부터 독립되어 가는 우크라이나 정교회의 독자적 노선을 더 공고히 할 것이 분명하다.


푸틴은 2월 21일 돈바스 침공을 한 시간가량 앞두고 장황하게 대국민 TV 연설을 했다. 그의 생각에“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역사, 문화, 종교의 필수적인 일부”이다. 과거에 현재 우크라이나 지역, 즉 남서부의 슬라브 주민들은 스스로를 러시아인, 러시아 정교회 신자로 인식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우크라이나 침공과 병합을 우크라이나가 비정상적으로 ‘독립’한 과거에 대한 일종의 ‘역사 바로잡기’로 포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푸틴은 러시아 혁명의 아버지 레닌의 ‘과오’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도전한다. 레닌이 러시아 주변 지역에 민족 자결권과 독립을 인정한 사실에 대한 강한 불만을 보인다.


이렇듯 현재 러시아는 정치와 종교 양쪽에서 우크라이나를 강력하게 단죄하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은 정치의 꼭두각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강하게 누를수록 더 거세게 저항하는 법. 일단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정치와 종교 지도자들이 원하는 바의 정반대 결과를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은 정치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점점 더 러시아와 멀어지고 있다. 러시아의 침공은 우크라이나의 국민국가 ‘완성’의 촉진제가 되었다.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지만 이제 항쟁과 고난의 경험을 역사적으로 공유하게 된 우크라이나인들은 민족주의를 강화하고 반러시아 전선을 구축할 것이다.

한편 우크라이나 정교회 성직자들도 러시아 정교회 수장에 대하여 강하게 저항하고 있다. 모스크바 소속의 우크라이나 정교회(UOK-MP) 소속 수미 교구의 성직자들조차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앞으로 모스크바 총대주교를 상관으로 언급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말했다. “더 이상 아버지(총대주교)의 이름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우리 양떼의 요구에 따라 결정”되었고, 성직자로의 양심이 더 이상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는 총대주교를 위한 기도도 멈추겠다고 했다. 군사적 투쟁보다 소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현재 상황에서 우크라이나의 성직자들이 러시아 정교회 수장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치의 분노를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사족(蛇足) 한 마디. 이 글을 쓰면서 ‘왜 내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 하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았다. 지난 시기 반복된 미디어 노출의 결과다. 러시아를 ‘적’으로 만들고 우크라이나를 동정하는 태도는 서방,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한국 언론이 원하는 서사의 방향이다. 나 역시 그 틀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닌지 묻게 된다. 미국이 개입한 더 많은 전쟁은 세계 질서 유지라는 측면에서 미화되거나 자세하게 보도되지 않는다. 불타는 건물, 피난 가는 사람들, 절박한 사람들의 애원, 폭격으로 죽은 아이들의 구체적인 이미지가 반복되지 않으면 전쟁의 희생자는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이 개입한 전쟁은 더 ‘안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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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bisexual), 트랜스젠더(transgender), 퀴어(queer), 즉 성적 소수자와 다양한 성적 지향성을 가진 사람들(LGBTQ)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권리를 주장하는 행진.

 

 

 







 


최정화_
서울대학교
최근 논문으로 〈20세기 전반기 독일 청소년들이 꿈꾸었던 세상: 반더포겔(Wandervogel)의 세계관과 실천〉, 〈‘종교’에 해당하는 자료는 존재하지 않는가?: 종교사(history of religions)와 비판적 실재론(Critical Realism)적 접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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