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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마가 프라다를 입을 때, 종교를 다시 생각한다

       - “인사이드 아웃”과 “암베드카르” -

 

news letter No.737 2022/7/19

 

 



      피트 닥터(Pete Docter) 감독의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2015, 디즈니/픽사)은 감독이 자신의 딸의 성장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다. 감독의 필모그래피는 화려하다. 〈몬스터주식회사(2000)〉, 〈업(2009)〉, 〈소울(2020)〉 등 상업적으로나 작품성으로나 성공적이었다. 다양한 수상경력도 그의 성공을 증거한다.

    닥터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은 겉으로는 아이들을 위한 가벼운 내용인 듯 하지만, 사실은 어른들을 위한 ‘내재적 메시지’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인사이드 아웃〉의 경우, 아이들에게는 “우리 안에 다섯 가지 감정 캐릭터 -‘기쁨이’, ‘소심이’, ‘까칠이’, ‘버럭이’, ‘슬픔이’- 가 있다면?”이라는 질문을 던지고, 어른들에게는 “슬픔이라는 감정의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1)

    이 영화에서 현실의 주인공은 10대 소녀 라일리이지만, 그녀의 마음(혹은 뇌?)을 조종하는 감정조절센터 속 리더이자 주인공은 명랑한 ‘기쁨이(Joy)’이다. 그런데 어느 날 라일리가 감정이 요동치고 부모에게 불만을 느끼더니 급기야 가출을 해버리고 만다. ‘기쁨이’는 라일리가 다시 예전의 착하고 쾌활한 딸로 돌아오게 하려고 노력하지만 역부족이다. ‘기쁨이’는 ‘슬픔이(Sadness)’가 라일리의 마음을 감염시켜 비관적이고 삐뚤어지게 했다고 진단하고는, ‘슬픔이’를 라일리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조그만 동그라미를 바닥에 그려놓고 그 안에서 나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라일리의 마음은 좀처럼 기쁘게 되지 않는다. 말하자면 회복탄력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떻게 하면 라일리의 마음이 복구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닥터 감독의 대답은 예상밖이다. 감독은 ‘슬픔’의 감정을 직시하고, 그 감정을 가족이나 동료와 나눔으로써 우리는 치유의 경험을 갖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그는 슬픔의 중요성과 역할을 강조한 것이다.

    영화 속에서 라일리의 어릴 적 상상의 친구였던 ‘빙봉’은 자신이 점차 라일리에게서 잊혀가고 있음을 슬퍼한다. 그때 ‘기쁨이’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슬픔이’는 단지 ‘빙봉’의 옆에 앉아 그의 말을 들어주고, 같이 슬퍼하고 안아줌으로써 빙봉의 마음을 치유한다. 빙봉은 회복하여 씩씩하게 자신의 마지막 미션을 수행한다.

    어느덧 ‘기쁨이’는 ‘슬픔이’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보고, ‘슬픔이’가 라일리를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라일리가 그의 부모를 만나 자신의 슬픔을 표현하고 위로받도록 유도한 것이다. 결론은 대성공이었고, 라일리와 가족의 관계는 치유되고 회복되었다.

     이와 같이 슬픔은 해롭고 무기력하며, 수동적 감정인 것만은 아니라고 영화는 말하고 있다. 영화는 ‘슬픔이 영혼의 성장을 이끌며, 사람들과의 연결을 가능케 한다. 인간은 타자에 공감하고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통해 치유된다. 그리고 슬픔은 심오한 결합의 기쁨을 산출한다. 인간의 성숙과 완성을 위해 슬픔과 행복은 서로 필요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은 ‘악과 고통은 인간의 성숙과 완성을 위한 것’이라는 전통적 신정론(theodicy)을 상기시키기도 한다.2) 악과 고통 그리고 슬픔이라는 현실은 우리 삶의 한 부분이며, 그것을 대면함으로써 오히려 인간성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슬픔과 고통의 협연, 종교

    티모시 피츠제랄드(Timothy Fitzgerald)는 「비교문화 범주로서의 ‘종교’ 비판(A Critique of “religion” as a cross-cultural category)」에서 인도 도처에 세워져 있는 암베드카르(Ambedkar, 1891-1956) 동상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주지하듯이 불가촉천민(달리트) 출신인 암베드카르는 인도의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교육자, 인권운동가이다. 특히 1956년 10월 4일 수십만 명의 인도인들이 힌두교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한 역사적 사건을 주도하였다. 인도의 신분제 철폐를 주장하는 신불교운동에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피츠제랄드가 주목한 것은 인도의 불교 사원에 놓인 고타마 붓다의 그림과 암베드카르의 사진 속 모습의 차이이다. 붓다는 대부분 전통적 출가수행자의 옷을 걸치고 보리수 아래 결가부좌하고 앉아 있다. 반면에 암베드카르는 푸른색 정장에 두터운 프레임의 안경을 쓰고, 그가 초안한 인도의 헌법을 담은 것으로 보이는 큰 책을 들고 있다. 피츠제랄드는 암베드카르의 모습은 문자인식능력과 교육의 힘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그리고 묻는다. 암베드카르의 불교에서 사람들이 ‘숭배’하는 것, 그리고 염원하는 ‘해탈/해방(liberation)’이란 무엇을 의미하겠는가?

    피츠제랄드는 불교의 깨달음이나 해탈이라고 하는 전통적 구원론이 암베드카르와 관련해서는 그 의미가 변용되었음을 지적한다. 이 신불교운동에서 ‘구원’이란, 불가촉천민이라는 전통적 개념에 속박된 대중들의 근대적인 정치적·교육적 열망과 관련된다고 본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인도 내 달리트는 총 9500만 명으로 인도 전체 인구(14억)의 6.8%에 달한다. 불가촉천민으로 태어나 미국과 영국에 유학하여 경제학 박사와 변호사 자격증까지 따고 인도의 독립운동에 참여하여 네루 내각의 초대 법무장관까지 역임하였지만, 암베드카르를 계속 따라다닌 것은 신분제의 꼬리표에 따른 고통이었다.

    2020년 5월 25일 미국에서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가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질식사했다. 미국 미네소타주 맥칼레스터 대학의 미국학과 교수 카린 아길라르 산 후안(Karin Aguilar-San Juan)은 조동종 평신도로서, 그(녀)가 소속한 조동종 선불교 공동체를 통해 49일 동안의 의례, 애도, 명상, 독송, 절, 토론 등 추도의 시간을 가졌다. 약 40여 명이 참여하여 비탄, 분노, 두려움을 표출했다고 한다. 이들은 이후에도 줌(Zoom)을 통해 만나면서 함께 태극권과 기공을 수련하거나 명상을 하고, 사성제를 토론하거나 불교와 인종주의적 정의의 관계를 모색했다.3)

    2020년 9월 15일, 틱낫한의 플럼빌리지에서 수행한 선불교 교사 래리 워드(Larry Ward)의 책 『미국의 인종 카르마: 치유에의 초대(America’s Racial Karma: An Invitation to Heal)』가 출판되었다. 워드는 “150여 년이 넘도록 미국의 노예제도 이후 시작된 비극적인 인종주의의 업(業, karma)이 계속 돌고 있다. 그 업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멈출 수 있다”라고 말한다.

    슬픔과 고통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세상에 오직 행복과 웃음만 존재하기를 꿈꾼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사회의 이면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감출 수는 없다. 화려한 광고들과 매력적인 셀럽과 인플루언서들의 소식이 흘러넘치는 사이, 아이러니하게도 뉴스는 우리 사회의 비극과 어두운 면을 지속적으로 환기시켜준다. 우리 시대의 종교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종교인구가 줄고 있다고 한다. 종교가 없다는 것은 좋은 징조라고 근대 중국의 태허법사가 말했다. 종교가 필요 없는 사회가 된 증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교의 사성제는 ‘고(苦)’를 선언하면서 시작한다. 십자가는 그야말로 우주적 ‘고통’의 압축적 상징이다. 우리 사회에 가장 강력한 파워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두 종교가 ‘고통’과 ‘슬픔’의 상징으로 우리를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미국의 인종적 카르마와 총기사고의 바퀴를 멈출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현실을 비관하여 세상을 등지는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 사회를 만들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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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숭현, 「피트 닥터 감독의 애니메이션 스토리텔링 전략 연구」,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64, 2021.

2) Bertha A. Manninen, “Suffering and Soul-Making in Disney/Pixar’s Inside Out”, Journal of Religion & Film, 20-2, 2016 참조.

3) Karin Aguilar-San Juan, “49 Days of Mourning for George Floyd: An Asian American Re-awakening in St. Paul”, Amerasia Journal, 46(3)2020.

 

 

 



 

 

 


송현주_
순천향대학교 교수
논문으로  <서구 근대불교학의 출현과‘부디즘(Buddhism)’의 창안>,<한용운의 불교·종교담론에 나타난 근대사상의 수용과 재구성>, <근대 한국불교의 종교정체성 인식: 1910-1930년대 불교잡지를 중심으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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