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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코끼리
news letter No.851 2024/10/8
18세기 청나라 사람들은 중국 서남쪽에 거주하는 민족들을 탐방하고 그림과 글을 남겼다. 근대 동아시아 민족지(ethnography) 『묘만도설(苗蠻圖說)』의 영어 번역본을 태국의 한 서점에서 발견하고 빨려 들어가듯 그 자리에서 그림과 설명을 한 장씩 넘겨 보았다.1) 지금으로부터 삼백 년 전, 중국 인접 민족들에 대한 특징과 풍습을 묘사한 내용이 여행이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하여 오늘날까지 연속성을 가지고 발견되는 순간, 찰나적 흥미는 탐구 주제로 변하기도 한다.
그 책에서 타이족은 타투와 코끼리로 묘사되어 있었다. 실제로 태국은 ‘내가 바로 불교요’라고 우렁차게 말하는 듯한 황금빛 사원들 외에 그 두 현상이 여전히 가장 눈에 띄었다. 특히 어딜 가나 코끼리 천지였다. 관광객들은 코끼리 문양이 있는 냉장고 바지를 입고, 코끼리 자수가 새겨진 가방을 메고, 밤 시장에서 코끼리 문양 수공예품을 눈여겨보며, 밤에는 창 맥주(Chang Beer)를 마신다.
작년 태국 여행에서 코끼리를 바로 옆에서 몇 시간 보고 나서 수긍이 갔다. 왜 시바신이 아들 가네샤(Ganesha) 머리를 대체하는 가장 좋은 형상으로 코끼리를 택했는지를. 코끼리는 의젓하면서도 사회적이다. 천천히 몸을 움직이면서도 예민하게 코를 사용하는 모습에서 지능이 보인다. 비슷한 두뇌 능력을 지닌 원숭이가 영리하고 쉽게 끓어오는 가벼운 피처럼 행동한다면, 신중하게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끼리의 무게감과 눈빛은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큰 개체 옆에는 섣불리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그 크기가 인간을 압도한다. 코끼리에 사람이 밝혀 죽을 수도 있다.
치앙마이 시내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숲 근처 코끼리 보호센터를 방문했다. 이곳에서는 벌목, 트레킹, 서커스나 구걸 등으로 상처 입은 코끼리를 보호한다. 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대규모 벌목 사업은 숲의 황폐화와 코끼리의 멸종 위기로 이어졌다. 숲이 없어지자 상좌부 불교 승려들이 숲속 수행처를 잃었고, 환경 운동에 뛰어드는 계기를 만들기도 했다. 코끼리를 타는 사람은 조각과 그림 속의 힌두 신들, 아기 부처, 통치자가 아니라 돈을 가져다주는 관광객이다. 돈벌이를 위해서 사람과 무거운 짐을 나르며 지치고 영양실조에 걸리거나 학대받는 코끼리를 구조하고 보호하는 쉼터가 생기면서 어떤 코끼리들은 이전에 비해서 더 나은 환경에 있다. 구조된 코끼리들은 야생으로 돌아가기 힘든 경우도 있다. 서커스 스타였던 코끼리 새끼는 스스로 인간으로 생각하고 환호작약하는 사람들 사이에 있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보호센터 직원들에게도 코끼리는 돌봄의 대상임과 동시에 생계 수단이다. 과거 태국 여행에서 코끼리 트레킹이 인기였다면, 오늘날은 돌봄센터에서 코끼리를 치유하고 돌보는 프로그램이 관광코스로 자리 잡고 있다. 동물과 관련해서는 관광의 방향이 점점 즐기기에서 윤리와 돌봄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코끼리 돌봄까지 관광코스에 넣는 감각, 태국은 역시 투어리즘에 최적화한 나라다. 전 세계에서 몰려온 사람들은 태국을 방문한 이상 코끼리를 직접 경험하고 싶어 한다. 생태여행과 코끼리 돌봄 체험의 인기는 유럽과 아메리카 관광객들에게 두드러진다.
보호센터는 방문하는 관광객들의 수입으로 운영된다. 방문객은 코끼리와 친해지기 위해서 사탕수수와 바나나를 주면서 다가간다. 동요의 한 구절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래, 과자를 주면은 코로 받지요.”는 과연 맞았다. 코끼리는 달짝지근한 바나나를 아주 좋아해서 송이째 연속 수십 개 받아먹는다. 그러나 단 음식을 너무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나니 방문자들이 약초와 잡곡을 빻아 주먹밥처럼 만들어서 변비약으로 먹인다. 코끼리와 조금 친해진 다음에는 만져볼 수 있다. 부드러운 피부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꺼끌꺼끌한 털이 몸 전체를 덮고 있었다. 가까이서 본 눈은 뿌옇고 충혈되었고, 쳐진 기다랗고 굵은 속눈썹으로 시야가 가려져 있다. 둔한 시각과 달리 코는 아주 민감하다. 코로 음식을 집어 먹고, 애정을 나타내고, 외부 세계와 접촉한다. 또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예민한 부위가 코로서, 숙명의 적 호랑이는 본능적으로 약점을 알아보고 긴 코를 물고 늘어지고 뜯는 방식으로 공격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프리카 코끼리의 펄럭이는 큰 귀와 달리 아시아 코끼리는 상대적으로 아담한 귀를 달고 있다. 보호센터 마지막 프로그램은 아기 코끼리 목욕이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인간들은 물속에서 풍덩대며 가능한 코끼리 옆에서 오래 씻김 노동을 자발적으로 하고 싶어 하지만 코끼리가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하면 물 밖으로 휙 나간다. 강에서 낯선 사람들이 물을 끼얹고 만지는 이벤트는 코끼리가 그다지 좋아하는 행동은 아니라 점점 없어져 가는 추세다. 코끼리는 무더운 날씨에 체온을 낮추는 목적으로 진흙에서 뒹굴기를 좋아한다. 우리 팀의 코끼리는 얼마간의 목욕재계를 허락한 후 쌩하니 근처 언덕에 올라가서 다른 코끼리와 힘겨루기를 했다.
온종일 지켜보니 코끼리가 왜 서아시아와 동남아시아에서 귀한 동물이자 종교적 상징으로 사용되었는지 이해가 갔다. 아프리카 종교에서는 코끼리가 중요하게 등장하지 않는 것 같다. 아프리카 코끼리는 야생에 살면서 인간 생활에 전면으로 등장할 기회가 없다 보니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반대로 아시아에서 코끼리는 인간과 맺는 관계의 역사가 길다. 마야 부인의 태몽에 등장해서 코끼리가 불교 국가의 상징이 되었다기보다는, 반대로 사람들이 예전부터 귀하게 여기기에 부처의 잉태 전설에 들어갔을 것이다. 코끼리에 대한 숭배는 불교보다 훨씬 앞선 현상으로, 인도를 거쳐서 다른 지역으로 퍼졌다. 기원전 2500-1700년 전의 인더스 문명부터 코끼리는 부족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동물로 여겨졌다. 성인 인간 수십 배에 달하는 육중한 무게에 둥글둥글한 원통형 몸에 신기한 코. 압도할 정도로 몸집이 크지만 우악스럽거나 위협적이기보다는 평화롭고 원만하다. 수컷이 암컷과 새끼에 대해 보이는 지속적 애정은 자연계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코끼리의 이런 모습을 옛날부터 사람들이 좋아했을 것이다.
코끼리는 사람과 비슷한 점이 있다. 사람의 수명만큼 살고, 새끼를 평생에 걸쳐 몇 마리 낳지 않는다. 기억력이 좋아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고마워하거나 복수할 줄 안다. 가이드의 설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가지는 코끼리의 ‘종교성’과 이빨이었다. 무리에 있는 코끼리가 죽으면 모두들 모인다고 한다. 보호센터에서 보살펴 주던 사람이 죽었을 때 코끼리 무리가 다 함께 그 묘지에 모였다고 한다. 그리고 스스로 죽을 때가 되면 생을 마감할 곳을 찾으러 간다고 한다. 예전 인간과 비슷한 수명을 사는 코끼리가 생을 마감하는 결정적 이유는 이빨이 빠져서다. 씹지 못하고 섭취에 제약이 생기면 서서히 노쇠한다.
이빨이 안 빠진 코끼리는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씹으면서 보낸다. 육중한 몸을 하루 200kg 정도의 채식으로 채워야 하니 많이 먹을 수밖에 없다. 예전 태국 왕은 마음에 들지 않는 신하에게 코끼리를 선물하는 방식으로 벌을 내렸다. 왕실의 상징인 코끼리를 하사받은 신하는 충성을 보여주기 위해 코끼리의 오랜 수명 기간 키워냈고, 그 사육비는 가사를 탕진하고도 모자랐다는 것이다.
왕실을 상징하는 코끼리는 흰색이다. 사실 흰 코끼리는 자연의 돌연변이 백색증, 알비노 증상이다. 인간 알비노가 부족 사회에서 신성하게 여겨지거나 동시에 터부시되었던 것과 비슷하게 흰색 코끼리는 성스러운 동물로 궁정에서 길러졌다. 과거에 흰 코끼리를 탈 수 있는 자는 왕이었고, 현재까지 태국 왕권을 상징한다. 마야 부인의 옆구리로 들어갔다는 태몽의 코끼리도 흰색이다. 불교와 왕실을 국민 통합으로 이용하는 태국 국기의 하얀색이 백상(白象)을 의미한다.
코끼리는 크고 긴 코를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코끼리와 오랜 시간을 공존했던 사람들은 코가 위로 향하면 ‘행운’, 아래로 향하면 ‘장수’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단다. 코끼리는 상서로우므로 그의 코는 어떤 방향을 향하든 좋은 의미였다. 이런 내용을 설명하는 유창한 영어 실력의 보호센터 가이드나 코끼리 사육사 마호(mahout)는 다들 햇빛에 그을린 까만 피부에 아주 말랐다. 하루 종일 코끼리 똥을 치우고 먹이를 주는 것부터 센터의 운영, 시내 호텔에서 관광객들을 숲까지 태우고 와서 팟타이를 요리해 주는 등 하루 종일 엉덩이 붙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관광객들은 대체로 피부가 하얗고 포동포동 살이 쪄 있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불교 국가 태국의 종교와 정치의 상징이었던 코끼리가 관광대국의 경제적 이윤 창출 수단이었다가 이제 돌봄 관광의 중심에 서 있다. 원래 야생에서 살아야 하는 코끼리가 사라져가는 도시 인근 숲에서 가축이 되어 가는 모습, 그 동물을 돌보면서 생계를 이어가는 삐쩍 마른 보호센터 직원들의 몸이 겹치면서 코끼리와의 하루가 사실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종교적 상징이든 돈벌이의 수단이든 오랜 세월을 관통하며 인간 사회의 중심부에 들어와 있는 코끼리의 존재가 크게 느껴졌다. 집에 돌아와서 『기호 상징 사전(Signs & Symbols. An illustrated Guide to their Origins and Meanings)』에서 관련 항목을 찾아보았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는 최고 권력과 연관되어 있고, 강함, 안정감, 지혜를 상징한다.” 문자로 보는 것, 상징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함이 코끼리에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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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버드대학 도서관 홈페이지에서 원문 제공.
https://curiosity.lib.harvard.edu/chinese-rare-books/catalog/49-990089863480203941
_최정화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원
2024년 〈인종, 피, 공간의 종교사: 나치즘 시기 종교연구가 야콥 빌헬름 하우어 (Jakob Wilhelm Hauer, 1881~1962)의 사례〉, 《방황하는 종교성과 국민문화: 근대화하는 일본과 독일 사회의 신화와 종교(彷徨する宗教性と国民諸文化: 近代化する日独社会における神話・宗教の諸相)》(일본어 공저), 《세속주의를 묻는다: 종교학적 읽기》(공저)를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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