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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714호-범 내려 온다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2. 1. 25. 20:45

범 내려 온다

 

news letter No.714 2022/1/25

 

 


우리의 새해는 동물의 왕국이다. 간지(干支)로 해를 계수하였던 우리는 12지지(地支)를 상징하는 12 동물을 통해서 한 해를 맞이하고 보낸다. 나는 띠로써 특정 동물과 연결되고, 그 동물은 같은 띠 사람을 친밀하게 연결시킨다. 최근엔 이 동물의 순환이 점점 빨라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흰 소는 언제 어디로 간거지? 이렇게 빨리 갈 거면 정(情) 주지 말 걸, 호랑이가 언제 내려왔지? 이런 푸념으로 또 한 해를 시작한다.

동물원에서 보던 호랑이를 학문의 여정에서 가끔 만났다. 첫 번째 만남은 기우제(祈雨祭)였다. 조선시대 기우제의 주인공은 용(龍)이지만 호랑이 역시 조역자로 모습을 나타냈다. 숙종대 정해진 12차례의 기우제 중 제6차에 해당하는 것이 침호두(沈虎頭)이다. 침호두는 이름 그대로 호랑이 머리를 강에 투하하여 물속에 있는 용을 자극하는 기우제이다. 기우제에 애꿎은 호랑이만 죽어나간 셈이다. 물론 기우제를 당해 호랑이를 잡은 것이 아니라 그전에 잡아놓은 호랑이 뼈를 이용한 것이지만 희생 아닌 희생으로 호랑이가 사용되었다.

이후 호랑이는 국장(國葬)을 통해서 만났다. 나라에 왕이나 왕후가 죽으면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이 호랑이였다. 숨이 멈추고 옷가지를 가지고 지붕에 올라가 이름을 불러도 응답이 없으면 죽음이 현실로 된다. 이때 수행하는 것 중 첫 번째가 시신이 있는 건물의 뜰에 대호피(大虎皮)를 깔아두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의 목적은 명시되어 있지 않다. 유교 경전에 나오는 의절이 아니다. 앞으로 수많은 유교 의식을 펼칠 것이지만 그에 앞서 전해오던 관습으로 상례를 시작한 셈이다. 죽음의 신을 겁주기 위한 것일까? 대호피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사자상(使者床)인 걸 보면 그런 것 같진 않다. 불확실한 어떤 사특한 기운을 막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시신이 빈소로 나아가면 이 호피를 땅에 묻어 없앴다. 침호두나 대호피 모두 죽은 호랑이의 뼈와 가죽이라 조금 안쓰럽다.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것이 호랑이의 명성이지만 이렇게 죽어서도 용맹함의 기운을 잃지 않았다.

세 번째 호랑이 모습은 실체가 아니라 그림이었다. 시신을 습렴하고 관에 넣은 후 곧바로 무덤으로 가질 않는다. 국상인 경우 관은 찬궁(欑宮)이란 곳에서 약 5개월 정도 있었다. 찬궁은 관을 감추고 보호하기 위해 임시로 제작한 가건물이다. 빈전의 실내에 이를 만들어 재궁을 넣어 두었다. 이 찬궁의 안쪽 사방 벽면에 방위에 따라 청룡, 백호, 주작, 현무의 사수(四獸)를 그렸다. 그러나 임시 건축물이라 빈소가 사라지면 이것 역시 태워 없앴다. 그러므로 현전하는 찬궁이나 호랑이 그림은 없다. 다만 찬궁의 사수도는 이때 국장을 기록한 『빈전도감의궤』나 『산릉도감의궤』에서 볼 수 있다. <그림 1>은 『숙종 명릉 산릉도감의궤』에 나오는 백호의 모습이다. 흰 바탕에 줄무늬가 있고, 어깨와 다리에 화염문(火焰文) 갈퀴가 있어 위엄을 더하였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픈 호랑이는 능의 봉분 주변에 있는 석호(石虎)이다. 상례가 다 끝나고 애통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무덤을 외로이 지키는 것이 석호와 석양(石羊)이다. 우리에게 양은 무덤을 지킬 정도로 강한 동물이었다. 목자 없이도 길을 잃을 것 같진 않다. 그 옆에 호랑이가 있다. 그런데 호랑이가 ‘호랭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위엄이 있는 석호도 있다. 그러나 돌의 투박함과 단순함이 호랑이를 희화적으로 만들었는지 그 위엄은 사라져버렸다. 고양이 같기도 하고 멍멍이 같기도 하고 도깨비 같기도 한 석호가 많다. 민화풍의 호랑이다.

조선시대 호랑이는 인간과 가까이 있었다. 그러나 가축과 달리 야생의 모습이었다. 위협의 존재였다. 가축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호랑이에 다치고 죽었다. 호환(虎患)은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였다. 호랑이를 잡기 위한 전문적인 군사인 착호군(捉虎軍)이 있었고, 호랑이가 나타나면 백성들과 착호군, 그리고 이들을 책임진 수령이 잽싸게 해야 할 행동 요령도 있었다.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호랑이 잡는 9가지 기술이 나온다. 활쏘기[射] 창[鎗] 쇠몽치[椎] 함정[穽] 끈끈이[膠] 총(銃) 쇠뇌[弩] 갈고리[鉤] 연기[熏] 등 9가지 기술 덕분에 호랑이도 인간을 쉽게 대할 수 없었다.

그런데 9가지 방법에 들지 않지만 호랑이를 이긴 중요한 방법 중 하나가 ‘해학(諧謔)’이었다. 두려움이 종교를 만들었다고 한다. 고통도 종교를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과 고통도 오랫동안 같이 있다 보면 친근해진다. 해학은 또 다른 감내의 방법이다. 눈에 보이거나 맞닥뜨리면 화살, 창, 갈고기, 총 등 무엇이든 무기가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긴긴밤 보이지 않는 호랑이는 더 무서울 것이다. 그 무서운 밤시간 공포를 잠재울 수 있는 것은 호랑이에 대한 뒷담화였을 것이다. 어느덧 뒷담화는 현실이 되어 그림으로 조각으로 남았을 것이라는 나름의 상상을 해본다. 암울한 코로라 시기를 이길 수 있는 힘도 그런 해학과 익살 속에서 나올지 모르겠다. 웃음이 많은 한 해가 되길 바란다.

 

 

 

 







 


이욱_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주요 저서로 《조선시대 재난과 국가의례》, 《조선왕실의 제향 공간 –정제와 속제의 변용》, 《조선시대 국왕의 죽음과 상장례-애통・존숭・기억의 의례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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