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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종교의 신관은 과연‘범재신론(panentheism)’인가?

 

news letter No.716 2022/2/8




세계종교사에서 보면, 종교의 핵심인 신관은 자연과 인간을 신격화하는 고대종교의 자연신관(自然神觀)과 인간의 이상과 그 삶을 담은 고전종교(古典宗敎)의 신관으로 크게 구분된다. 그 가운데 고전종교의 신관은 둘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직선적인 시간관을 가진 유대-기독교의 신관이고, 다른 하나는 순환론적 시간관을 가진 인도-중국의 신관이다. 전자에 속하는 기독교의 경우, 세상의 창조에서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세상을 직접 관리하는 유일 지고신을 전제한다. 그 지고신을 모두 하느님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종교마다 서로 다른 신들이다. 그 명칭도 각기 다르다. 유대-기독교의 야웨(Yahweh), 이슬람의 알라(Allāh) 등이 있다. 후자인 인도-중국의 경우, 우주질서를 창조하지 않으나 그 우주질서를 조화시키는 주재자(主宰者)로서 지고신이 등장한다. 우주질서의 순환적 변화 원리나 법칙 자체를 신성화하거나 의인화하기도 하며, 혹은 그 변화를 주재하는 최고 신격(神格)을 만들어 낸다. 전자의 예가 인도의 다르마(法)와 브라만(梵), 중국의 도(道)와 천(天) 등이라고 한다면, 후자의 예는 불교의 법신불, 도교의 원시천존, 유교의 상제 등을 들 수 있다.

그런데, 신중심적 서구적 사고가 지배한 근대 이후 신관에 대한 논의는 모두 초월적 유일신을 지고신 모델로 삼을 뿐만 아니라 진화론적 사고를 그 바탕에 깔고 있기 때문에 비서구 사회에서 나타나는 우주변화의 원리나 법칙 자체를 신성화하거나 의인화하는 신관의 실상을 이해하는데 도리어 장애가 되고 있다. 예컨대, 한국 기독교계에서는 단군신화의 하느님 환인과 근대 민족종교 동학의 ‘한울님’을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으로 보기도 하고, 또 일부 신학자와 종교학자는 한국 민족종교의 지고신을 초월적이고 내재적인 ‘범재신론’1)의 신적 속성을 가졌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과연 이 같은 신관이 한국의 민족종교 신관으로 타당한 것인가. 아니면, 보편적인 이해라는 명분으로 기독교 신관에 편입시켜 그 고유성을 상실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

범재신론은 본래 초자연적인 유일신관을 보완하기 위해 최근 등장한 신론이다. 그 신론은 우주에 가둬 버린 범신론도 아니고 완전히 우주 밖에 있는 유신론도 아니다. 그래서 ‘내재적 초월론’의 형태를 지닌 범재신론의 성격을 지닌다고 설명하고, 일부에서는 세계종교의 신들 중 가장 발달한 지고신의 형태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존재론적 유일신을 인식론적 차원[理神論]에서 혹은 생성론적 차원[過程神學]에서 다시 바라본 것이다. 이러한 신론은 초월적 유일신을 주장하는 기독교 입장에서나 논의할 수 있는 것임에도 비서구적 신관의 설명에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되고 있다. 지고신의 존재론에만 집착한 나머지 하늘님[天主]의 신격을 가진 민족 고유의 하늘님 신앙이나, 동양종교에서 우주 운행의 원리나 질서 자체[道]를 의인화하거나 그것을 주재하는 조화신의 역할, 그리고 상제로부터 무극대도를 받은 수운(水雲)의 종교적 위상에 대해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한국의 민족종교 신관 역시 대부분 서구 유일신과는 다른 지고신을 상정하고 있다. 상제님, 하느님, 한울님, 한얼님, 하날님 등의 지고신은 하늘과 연관된 다양한 인격신 관념을 가지고 있다. 이는 모두 한국 고유의 하늘[天] 신앙을 계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지고신은 먼 옛날 전통적인 하늘님 신앙을 토대로 선교(仙敎)의 신선관(神仙觀), 불교의 범천관(梵天觀)이나 정토관(淨土觀), 유교의 천관(天觀), 서학의 상제관(上帝觀) 등의 영향을 받기는 했으나, 그것을 기반으로 칭교주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경험을 통해 새롭게 형성한 신들이다. 이들은 자연과 인간을 신격화한 자연신관에서 비롯된 최고신이나, 인간과 자연을 포함한 우주질서를 주재하는 조화신(造化神)의 성격을 가진다. 우주 만물과 인간사를 우주 법칙에 따라 주재하면서도 우주 만물과 인간에 내재하고 있는 그런 신관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한국 민족종교에서는 우주 조화신과 일치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수련을 요구한다. 자기완성을 통하여 우주 자연의 운행을 담당하는 조화신과 신인합일(神人合一)하고, 신과 인간이 상호 협력을 지향하는 신인합발(神人合發)의 신인관계를 가진다. 또한 한국의 하늘님은 인간과 전혀 분리된 신이 아니며, 인간과 접합함으로써 지상에서 자신의 신성을 획득하는 신들이다. 그렇다면, 초월적 유일신과 그에게서 파생된 범재신론에 대한 논의는 한국의 민족종교에서 중심 문제가 될 수 없다. 도리어 지상의 뭇 생명 보존과 인간을 변화시키는 수련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다.

동학의 신관부터 보기로 하자. 1960년 동학을 창교한 수운의 대각은 상제(上帝)의 게시설(啓示說)에 근거한다. 물론 서학의 영향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한울님은 무극대도를 게시한 게시자일뿐 서학에서와 같이 유일 절대자로서 외경의 대상이 아니다. 도리어 게시의 과정을 보면 그 상제는 전통적인 한울님 신앙을 복원한 측면이 더 많다. 1901년 증산교를 창시한 증산의 대각은 상제의 강림설(降臨說)에 근거한다. 뭇 신명의 호소에 못 이겨 천하 대순하고 직접 하강한 구원신(救援神)이다. 이는 마치 미륵하생신앙에서 미륵이 하생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하늘의 운도를 직접 고치는 천지공사를 행하면서 인간 세상에 상제로서 현현(顯現)한 것이다. 대종교를 창교한 홍암의 대각은 전통의 전수설(傳受說)에 근거한다. 즉 삼일신(三一神)의 전통이다. 그는 전래되어 온 단군 신앙을 ‘중광(重光)’함으로써 강력한 민족의 정통종교를 창립하였다. 1909년 서울에서 단군신위를 모시고 제천의례를 행한 이후 <단군교포명서(檀君敎布明書)>를 공포하였는데, 그 포명서는 백두산의 백봉신사(白峯神師)에게 사사받은 두일백(杜一伯)에게서 전달받은 것이다. 원불교를 창교한 소태산의 대각은 1916년 일원상(一圓相)의 진리를 대오함으로써 광의 법신불(法身佛)로 일원상을 받아드렸다. 그의 일원상은 법신불이라고 하지만 신성만 있을 뿐 하늘님과 같은 신격만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의 대각은 신비주의에서 벗어나 인륜도덕의 실천과 진리적 종교심의 회복에 초점을 두었다. 요컨대, 전통적인 하늘님은 수운에게는 무극대도를 전한 천주로, 홍암에게는 민족 고유사상을 기반으로 한 삼일국조신으로, 증산에게는 절대권을 가진 상제로 각각 이 땅에서 인간과 더불어 체현(體現)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민족종교는 각각 지고신 하늘님[天神]에 대한 독특한 입장과 견해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필자는 민족종교의 신관을 ‘범재신론‘으로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두 가지만 지적하고 싶다. 하나는 이들의 천신관은 기독교의 초월적 유신론과는 다른 지고신으로의 귀일사상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말하자면 수운의 한울님도 한누리의 주재자요, 상제와 삼일신으로서의 한울님도 유일신이요, 비록 신성만을 갖춘 일원상도 신격만 갖춘다면 유일신으로서 주재자가 될 것이다. 이들은 모두 ‘하나’로 귀일하는 민족의 경전 천부경(天符經)의 ‘한’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지적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그들이 아무리 천신이라고 하더라도 최치원이 언급한 뭇 생명과 관계 맺는 접화군생(接化群生)에 의해서라야 비로소 우리 민족의 하늘님[天神]으로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결같이 하늘을 말하지만 뭇 생명과 함께하며 자신이 인간화함으로써 비로소 그들의 신위가 보존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한국 민족종교의 현세 수련적 인간관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요컨대 한국의 민족종교는 지고신을 말하기는 하지만 신의 배려나 은총보다도 인간의 변화에 더 많은 관심을 두기 때문에 신중심의 종교가 아니라 인간중심의 종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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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범재신론은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신관으로 초월만 강조하는 유신론이나 내재만 강조하는 범신론의 일방성을 극복하여 신의 초월과 내재를 동시에 강조하는 신관이다.

 

 







 


윤승용_
한국종교문화연구소 이사
논문으로는 <한국종교의 이상세계론, 그 연구를 위한 시론>, <현대종교와 民族主義: 유신시대 (1972-1979)를 중심으로>, <한국전쟁과 종교지형변화>, <동아사아 종교의 근대화과 그 한계- 동아시아의 민중종교를 중심으로->, <민주화시대 불교개혁운동과 그 한계>, <한국 신종교에 대한 종교사적 연구와 과제>. <한국민족종교의 기본사상-단군, 개벽, 신명> 등이 있고, 편·저서로는 《한국 신종교와 개벽사상》, 《현대 한국종교문화의 이해》,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책임편집), 《한국 종교문화사 강의》(책임편집), 《한국민족종교문화대사전》(책임편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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