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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레터

641호-호적(胡適)의 ‘유교’ 만들기

한국종교문화연구소 2020. 9. 1. 19:25

호적(胡適)의 ‘유교’ 만들기



newsletter No.641 2020/9/1

 




라이오넬 젠슨(Lionel M. Jensen)은 『유교 만들기(Manufacturing Confucianism)』라는 책의 서문에서 ‘manufacture’라는 동사를 쓴 이유에 대하여 ‘make by hand’, ‘artifact’, ‘made up’ 등의 단어를 들어 설명하였지만, 단적으로 말하자면 공자의 말이라고 전해져 온 “술이부작(述而不作)”의 ‘작(作)’과의 연속선상에서 창조, 발명, 제작 등을 의미하려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또한, ‘manufacturing’이라는 동명사 형태를 사용함으로써 ‘유(儒)’와 ‘유교(儒敎)’는 만들어져왔고, 또 다시 만들어지는 지속적인 개념적 과정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한다. 현대신유교(New Confucianism)의 전통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을 뿐 아니라 홍콩과 타이완의 현대신유교를 의식하여 대륙 중국에서도 나름의 현대신유교 전통을 다양한 방식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21세기의 상황에서 보자면 이 주장은 지극히 당연하여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이 책이 1997년에 출간된 것임을 생각하면 저자의 예리한 감각을 높이 평가하게 된다. 두 파트로 이루어진 이 책의 첫 번째 파트는 예수회 선교사들의 유교 만들기, 즉 타자의 시선으로부터의 유(儒)와 유교의 제작을, 두 번째 파트에서는 중국적 전통 내부로부터의 유(儒)에 대한 재의미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장병린(章炳麟, 1868-1936)의 ‘좁은 시야의’, ‘국수주의적’ 성격의 「원유(原儒)」와 호적(1891-1962)의 ‘보편주의적이고’, ‘국제적인’, 게다가 ‘진화론적’ 성격을 띤 「설유(說儒)」를 다루었다. 이 책을 대학원 강의의 부교재로 다루었던 것이 2009년 2학기였으니, 그 때 발견했던 호적이라는 인물의 흥미로운 측면을 십년이 넘은 올해 들어 비로소 다시 들여다보고 있는 셈이다. 세월은 놀랍도록 빠르다!

이미 호적의 수많은 저작과 일기, 서간, 강연문 등이 잘 정리, 수록된 『호적전집』 44권이 나와 있으니, 나 같은 문외한은 일단은 읽기만 해도 되는 셈이었다. 그 철학 파트에는 중국철학 연구사에 획을 그었다고 평가되는 『중국철학사대강(上)』1) 외에 그가 ‘철학’이라는 용어를 포기하고 ‘사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위의 책이 다룬 시대를 이어서 썼던 『중국중고사상사장편』과 『중국중고사상소사』라는 저서를 비롯한 다수의 논문이 실려 있다. 이 글들을 읽으면서 비로소 호적이 한대(漢代)의 사상과 문화, 특히 종교적 문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진 학자임을 발견할 수 있었다.2) 아울러 대학원 시절에 고힐강의 『진한의 유생과 방사』라는 책을 읽고, 짧은 몇 편의 에세이를 통하여 진한 시대의 사상과 문화에 대하여 명료하면서도 강력한 인상을 갖게 해주는 대가의 탁월함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났는데, 고힐강의 이 저서는 호적의 작업을 토대로 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 호적의 중국중고사상 관련 저작은 북경대학 철학과(당시에는 철학문이라고 함)에서 강의할 때의 강의록에 바탕을 둔 것이었는데, 당시 고힐강은 북경대학 철학과에서 수학하고 있었으며, 고힐강이 사용한 사료들은 호적이 언급했던 사료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호적을 공가점타도를 외쳤던 전반서화론자(全盤西化論者)라고 여기면서 공자와 유교 전통을 비판했다고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평가일 뿐이다. 호적은 자신이 공자를 단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고,3) 오랜 동안 유교 전통을 혹독하게 비판하기는 하였으나 그것은 유교일존(儒敎一尊)에 대한 비판이었을 뿐이며, 자신은 반유(反儒)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신의 「설유」라는 글을 그 증거로 들기도 하였다. 1934년 12월 「중앙연구원역사어언연구소집간(中央硏究院歷史語言硏究所集刊)」에 실렸던 논문 「설유」는 청말 민국 초기의 원유(原儒), 즉 유(儒)의 본질과 기원을 묻는 작업들 가운데 가장 주목을 끌었으며 호적 자신도 매우 자부심을 가졌던 글이었다. 그는 이 글에서 유(儒)란 은 민족의 교사(敎士)로서, 조상숭배의 성격을 띤 은나라의 종교에서 중요했던 상장례를 비롯한 다양한 의례의 전문가들이었으며, 은ㆍ주 교체 이후에도 은의 문화를 답습했던 주나라에서 종교적 의례를 도움으로써 생계를 이어갔다고 하였다. 나아가 호적은 망국의 고난 중에서 유대 민족이 염원하던 ‘메시아’와 그 메시아의 이미지에 부합하지는 않았지만 점차 전 인류의 구세주가 되어 갔던 예수의 형상을 주나라에게 멸망한 이후 은 민족이 염원해왔던 민족영웅과 공자에게 투사하였다. 호적은 망국의 유민들은 민족영웅을 희구하기 마련이라고 하면서, 히브리 민족에게 예수가 그러했듯이 은나라 사람이었던 공자 역시 은 민족이 오랜 동안 희구했던 민족영웅으로 오백년에 한 번 출현한다는 현기(懸記) 속의 성인이었음을 입증해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사료에 대한 견강부회를 했다고 비판받는다.

호적은 예수와 공자를 비교하면서, 많은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오직 공통점에만 주목한다. 먼저, 유대 민족과 은 민족은 모두 나라를 잃은 뒤 민족 부흥을 도모하려는 오랜 염원이 있었는데, 예수와 공자는 뛰어난 카리스마로 인하여 그 염원 속의 주인공들이 되었다고 하였고, 둘째, 그들은 모두 현실에서는 철저하게 실패했으나 부활하여 온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즉, 예수가 순도자(殉道者)로 죽었다가 부활하여 온 세상에 구원의 빛을 떨치게 되었듯이, 공자도 천하무도의 상황에서 붕괴된 예악을 회복시키지 못하고 죽었으나 부활하여 ‘유(儒)’를 부흥시킨 불멸의 종주(宗主)가 되었다는 것이다. 20대 유학 시절부터 성경을 두루 읽으면서 이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호적이 이렇게 억지스럽게 양자의 유사성을 언급한 것에 대한 시비를 따지기보다는 그의 의도를 읽어내는 것이 중요할 텐데, 그것은 공자에게 예수와 같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유교를 (세계)종교의 범주 안에 정위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을까?4) 특히 공자를 전 인류의 ‘구세성인’이라고 서술하는 대목에서 이러한 의도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호적이 지성적인 고대의 유(儒)들은 지식의 측면에서 민중들의 종교를 초월하였으나 여전히 치상(治喪)과 상례(相禮)로써 생계를 유지해야 했기에, 진지한 종교적인 감정 없이 마치 불충실한 배우와도 같이 상장례에 임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면서 이들을 예수가 비난했던 ‘文士(Scribes)’나 ‘바리사이(Pharisees)’에 비유했다는 점이다. 예의 근본을 중시했던 공자에게 불충실한 배우, 형식적으로 율법의 문구에만 매달렸던 문사나 바리사이라는 비유가 과연 타당한가 하는 의문이 곧바로 제기될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호적에게는 공자가 구축했던 새로운 유교[新儒敎]의 지성적이고 성찰적인 태도를 부각시키려는 강한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적이 과학주의적 방법론이라고 했던 “대담한 가설과 치밀한 고증”이라는 말은 인구에 회자되지만, 적어도 「설유」에 나타난 그의 유교 만들기 과정에 대하여 말하자면 “대담한 가설”은 “대담한 고증”을 수반하였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러나 대담한 가설과 대담한 고증을 가능하게 했던 호적의 상상이 가미된 통찰력이 치밀한 고증보다 더 생동감 있고 매력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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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한국어 번역본인 『중국고대철학사』(송근섭ㆍ함홍근ㆍ민두기 역, 대한교과서주식회사, 1962년 초판: 1985년 三版)는 제목을 바꾼 1958년 타이베이 重版本을 번역한 것이다.

2) 「호적의 한대 유교 이해」(『중국학논총』 제68집, 2020.6)는 이 사실을 발견하고 작성한 것이다.

3) 호적의 이 발언에 따라 호적의 관련 저서 및 논문, 강연문 등을 크게 세 시기로 나누어, 거기에 나타난 호적의 공자관을 정리해본 것이 「호적의 공자 이해에 대한 소고」(『중국학보』 제93집, 2020.8)다.

4) 최근(2020.8.14) 중국학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했던 「호적의 「설유」에 나타난 유교 담론」이라는 글은 이런 점에 착목하여 작성해 본 것이다.

 

 







 


이연승_
서울대학교 교수
논문으로〈서구의 유교종교론〉, 〈이병헌의 유교론: 비미신적인 신묘한 종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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