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제의 죽음과 치유 2009.3.17 지금 돌이켜 보니 그 일본인 교수에게 다 말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몇 가지 떠오른다. 이참에 한국 가톨릭교회사의 흐름 속에서 추기경의 죽음을 되짚어본 조현범 선생님의 지난 2월 24일자 종교문화다시읽기(뉴스레터 42호)를 반추하면서 개인적인 상념을 덧붙여 볼까 한다. 김추기경은 죽음 이후에까지 장기기증 서약자의 급증을 초래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보통사람들의 그것과는 분명 다른 죽음이었다. 그런데 추기경의 ‘선종’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어느 사제의 추도사에 의하면, 추기경의 죽음은 누구나가 겪을 수 있는 지극히 일상적인 것이기도 했다. 기나긴 투병생활 가운데 화장실만은 어떻게든 혼자 힘으로 해보려 했지만 결국 그런 자존심마저 다..
진화와 종교: 우연과 고통의 드라마 너머2009.3.10 지난 이십 여 년 동안 과학과 종교 논의를 이끌어온 미국 버클리 소재 신학과 자연과학 센터(CTNS)의 테드 피터스(Ted Peters) 교수가 한국고등신학연구원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하는데, 여러 일정 중에 우리 연구소에서의 발표(3.18.수요일)도 잡혀 있다. 일단 발표 제목이 “다윈주의 세계에서 신의 은총”이라는데, 아직 발표 내용을 받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도 올해가 다윈 탄생 200주년인 만큼 이에 맞추어 설정한 주제인 듯하다. 피터스 교수가 그 동안 진화론 자체보다는 생명복제, 줄기세포, 트랜스휴머니즘 등과 같이 현대 과학기술, 특히 생명공학이 제기하는 윤리적, 신학적 문제를 주로 다루어왔음을 생각할 때 사뭇 기대되는 바가 크다. 이번 ..
감각과 자유2009.3.3 하느님이 우주와 인간 안에서 하는 일을 관상할 때 ‘의지’와 ‘지성’과 ‘사랑’이 구분되지는 않을 것이다. 하느님은 언제나 의지와 지성과 사랑이 하나로서 현존할 뿐만 아니라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이 세 가지 기능이 구별될 수밖에 없다. 인간의 의식 안에서 분화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인들의 경지에 이르면 이 세 가지 의식의 기능이 하나로 통합되어 사는 것을 관찰할 수 있는데, 웬만한 영성가들도 찰나적이긴 하나 ‘은총의 시간에’ 그것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다만 항상 지속하기 어렵고 대부분 차가운 의식의 시간에 쫓겨 내려와 분리될 뿐이다. 한국 가톨릭의 영성가였던 고 방유룡신부는 “자유는 의지의 동작이니 의지는 자유..
공의회의 아들이 도회지 교회를 이끌다2009.2.24 2009년 2월 20일 낮 12시 10분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추기경의 유해를 실은 운구차가 회사 앞길을 지나가고 있다. 덮개 없는 경찰차가 선두에서 길을 인도하고, 그 뒤를 이어 검은 색 리무진이 천천히 움직이고 있다. 아주 천천히, 1960년대 이후 한국천주교회를 이끌었던 큰 인물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하듯이 말이다. 차가운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는 길가에는 방금 장례미사에 참석했던 수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며 떠나는 분을 배웅하고 있다. 지난 닷새 동안 있었던 일은 내 생각의 폭을 넘어서는 것이었다. 출퇴근하면서 마주친 조문행렬은 성당에서 나와서 가톨릭회관을 끼고 돌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앞길로 뻗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