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일과 공자 기일2009.5.12 봄의 생동하는 움직임은 전통적인 종교력에 잘 나타난다. 기독교의 부활절이나 불교의 석가탄신일은 그 교리의 차이를 떠나 봄의 축제와 연관시키지 않는다면 이들 의례가 해당 지역에 정착되는 과정을 설명하기란 쉽지 않다. 잘 알려진 불교와 기독교 외에 유교에서도 봄은 의례로 풍성하다. 5월 4일에는 종묘대제가 봉행됐으며, 5월 11일에는 성균관에서 석전제(釋奠祭)가 거행되었다. 이러한 제례의 역사는 매우 깊은 것이지만 최근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는 것이 석전제이다. 석전제는 성균관과 향교의 사당인 문묘(文廟)에서 거행하는 제향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미 지난 3월 3일에 석전제를 거행한 향교들이 많이 있다. 원래 석전은 음력 2월과 8월에 처음으로 ‘정(丁)’자가 들어가는 날에 ..
초파일 斷想2009.5.6 초파일을 전후로 조계사에 가본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등이 지닌 아름다움과 줄지어 매달린 연등의 몽환적인 광경을. 그러나 아름다움도 상대적이란 점에서 초파일 문화에 대한 반성도 필요한 시점이다. 특히 시내를 행진하는 연등축제는 재고의 여지가 있다. 전에는 행사에 참여하는 것이 좋게도 느껴졌지만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는 행사를 해야 하는가’하는 마음이 든 다음부터는 참여하지 않고 있다. 시민들에게 불편을 주지 않고 할 수 있는 연등 축제를 강구해야 할 때다. 5월 2일은 ‘부처님 오신 날’이기에 각 사찰 마다 일제히 등불을 밝혔다. 마침 저녁에 비가 내려 아름다운 모습을 감상할 수 없었지만 필자의 기억 속에는 아련한 추억이 많이 남아 있다. 시간은 물처럼 흘러가고 있지만 추억은 ..
행복지수 유감2009.4.28 얼마 전 대학교 신입생들을 위한 수업시간. 나는 여느 때처럼 “대학에 왔다고 긴장을 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해야 사회에 나가서 성공할 수 있다”는 진부한 말을 늘어놓았다. 그런데 교실 안에 갑자기 이상한 기운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이심전심이란 게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 순간 나를 바라보고 있는 많은 아이들의 얼굴에 당혹스런 빛이 스쳐지나갔던 것이다. 학생들 가운데 상당수는 눈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또?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노력해서 바로 여기에 와있는데 더 어쩌라고? 도대체 언제가 끝이야?...” 지난 3∼4월 달에도 몇 명의 중고생들이 성적을 비관해서 목숨을 끊었다. 먼 곳의 일이 아니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도, 바로 가..
죽음을 사고 파는 장사꾼들2009.4.21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 아주 어릴 적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끝없이 이어지던 만장 행렬이 동네를 길게 휘감고 돈 다음 언덕을 넘어 이웃 마을까지 갔다가 이윽고 앞산으로 가던, 그 길고 긴 상여 길이. 할아버지의 죽음은 갑자기 며칠간의 시끌벅적한 잔치를 몰고 왔다. 아버지와 삼촌은 삼베옷을 입고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는 사람들이 올 때마다 어이고 아이고 제법 음율있는 곡을 해댔다. 마당에는 멍석이 깔리고 사람들은 화투판을 벌였다. 부엌에서는 동네 아주머니들이 연신 전이며 찌개를 끓여 문상객들에게 날랐다. 나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 자체의 의미는 모른 채 그냥 사람들이 많은 것이 좋아 아이들과 함께 놀기에 바빴다. 모든 동네 사람들이 ..